제목 굴리기 by 신독

2004년 가을에 200쪽 가량 문피아에 연재했던 글이 있다. (아... 벌써 이게 7년 된 글이로구나. ㅎ)
당시엔 '현대물은 출판 불가'라는 이상한 출판 룰(지금은 반대로 현대물이 대세라니...ㅋㅋ 이런 게 아이러니)이 있었던 데다, 이미 '죽작가'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을 때여서, 출판사에 내 고집을 피울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출판은 다른 글로 하고 '너는 나중에'하며 미뤄둔 글이다.

이 녀석 또한 제목 정할 때, 무진장 고생했는데... 연재 당시의 제목은 <블러디안 랩소디>였다. (아... 오그라든다. -_-a)
가끔씩 버린 자식 쓰다듬는 것처럼 이 녀석 보며, '멋지게 포장해 다시 선보일게' 다짐했더랬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설정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이 녀석의 시놉시스는 처음과는 거의 180도 달라진 메모로 채워져 갔다.

원래는 북한산에서 이계 출신 뱀파이어를 만나 쥔공이 물리는 설정. 현대 뱀파이어 판타지쯤? 
야간에 모토사이클로 300km/s 질주를 하기도 하고, 신을 몸에 받은 여자애와 연애도 하고, 인간 사회에 섞여 사는 한국 요괴들과 충돌도 하게 되는 그런 야그였다.
이걸 쓸 때쯤, 한국 신화나 설화들에 관심이 많아서 설정을 그런 식으로 짰더랬다. 

근데 시간이 좀 지나니, 주인공만 외래종(?)인 게 영 맘에 안 차더라.
그래서 주인공을 토종(?)으로 바꾸었다.
설정에 균형이 잡히며, 신선한 매력 또한 풍겨 마음에 들던 차...

이런저런 일로 잠수 타고, 시간이 후다닥 흐른 현재.
이걸 출판할 만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요새 다들 그게 그거다 보니, 그나마 참신한 현대물 쪽 매상이 괜찮나 보더라.
(뭐, 이것도 현대물 나름이지만. 현대물이면 다 팔리는 건 절대 아니다. 플롯이 영 심심한 건 여전히 죽 쑨다. ㅎ)

문제는 제목. -_-a
핵심 코드가 '호랑이'였는데, 아무리 굴려도 떠오르는 게 없는 거라. ㅎ

그러던 며칠 전, 최근작으로 서부를 무대로 글을 쓴 모 작가와 홍대에서 만났다. 
제목 센스 정말 훌륭한 작가인데... 왜 나를 의논 상대로 택했단 말이더냐... ㅜ.ㅠ
시심은 없으나 이해는 하는 편이라, 밤 깊도록 그 친구 제목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아쉽게도 방향성을 정할 만한 가제만 만들고 결정을 보지는 못했다. 시도 썼던 친구니, 심상을 구체화시킨 정도로 만족하라 위로했는데...

그 친구 제목의 핵심은 재미있게도 '사자'였다. 나는 호랑이였는데. ㅎ
가끔씩 그 친구 제목을 버릇처럼 굴리던 중...
오늘 목멱정사에서 담배 피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자도 동물이니까... '운종룡풍종호(구름은 용을 쫓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를 굴려 보면 어떨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갑자기 '내 글'이 퍼뜩 머릿속에 들어왔다. 어, 이거 호랑이자너!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바람은 호랑이를 쫓는다.
...
 
이런 식으로 굴리고 굴리다... 이 속담을 찾아냈다.

범 가는 데 바람 간다

오, 이거 괜찮다! 계속 굴렸다.

범 가니 바람 운다

한참 보다 줄여 봤다.

범바/Beomba

음... 왠지 신선해 보여!

연재란 제목에는, 《범바(Beomba)》.
표제는, 《범 가니, 바람 운다》 쯤으로 하면 되겠다.

이건 사실 모두 '사자'가 핵심 코드인 모 작가의 글 제목을 함께 고민한 덕이다. 그 친구가 문장으로 제목을 짓고 싶다고 말해서, 나도 그쪽으로만 계속 생각했던 것.
상당히 만족스러운 제목이 되었으나... 왠지 모 작가에게 미안해진다.

미안해! 네 건 생각이 더 안 나더라구... 그래도 노력은 했다구... 그랬더니 내 제목 나왔어....

아... 왠지 상당히 못된 짓을 한 느낌이다. 쿨럭;

덧글

  • 2011/08/11 18:4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신독 2011/08/11 20:33 #

    밤비. 쿨럭;
    머... 의도적인 면이 없지 않으니. ㅎ
    일단, 급한 건 아니니 삭혀 봐야지. ^ ^
  • wook 2011/08/13 01:00 #

    새 책이 나오는군요. 죄송하기도 하고 축하드려요.^^
    저도 간만에 포스팅하여 인사가 띄엄띄엄입니다. ㅋ
  • 신독 2011/08/13 09:04 #

    뭐, 우리야 항상 띄엄띄엄이잖아. 난 그게 더 좋던데.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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