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씨의 공허한 문제 제기(적어도 현재로써는) by 신독

김규항 씨가 한겨레신문에 다시 칼럼을 썼다.
난감한 풍경

1년 전 두 사람이 벌였던 그 논쟁과 여전히 같은 선상에 서 있는 글이다.
어떠한 비난성 어휘도 쓰이지 않았고, 하고픈 말을 차분하고도 논리적으로 전개한 글이지만, 진중권 씨가 이 글에 차분히 대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김규항 씨는 진중권 씨가 '토론'을 '싸움'으로 만들고 있다 말했지만, 이 글의 바탕을 이루는 대전제가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음은 놓치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 김규항 씨가 이것을 모를 리 없다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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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씨는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을 자본주의 체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에 따라 크게 넷으로 나누었다. (사실, 이 넷의 구분이 과연 타당한가에서부터 모든 논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1. 보수주의(자본주의 체제를 신봉하는 태도, 한나라당)
2. 자유주의(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되 시민의 상식은 유지하려는 태도, 민주당 참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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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민주의(자본주의를 반대하되 체제 안에서 개선하려는 태도, 민노당 진보신당)
4. 사회주의(자본주의를 반대하며 체제 자체를 변혁시키려는 태도, 아직 운동 조직의 상태)


이 넷의 구분을, 다시 둘로 나누는 것에서 여러 반발이 생겨나고 있다.
김규항 씨는 1과 2를 우리 사회의 '우파', 3과 4를 우리 사회의 '좌파'로 보기 때문이다. (3과 4만을 '진보'라 부르기도 한다.)
김규항 씨의 이 구분에 따르면 진중권 씨는 '좌파'이며, '사민주의'자다.
그러나 김규항 씨는 진중권 씨를 '좌파 사민주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진보신당 당적의(이제는 과거이지만)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다. 이제는 '자유주의'자라 부르겠고(민주당이나 참여당과 같은 선상의). 김규항 씨는 사실상 진중권 씨에게 "너는 우파"라고 말한 셈이다.

4에서 3으로, 또는 4에서 2로 사상적 태도를 바꾼 이들은 4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변절자'들이다.
4에서 3이 '개량적 선택'으로 용인될 수 있을 정도라면, 4에서 2의 변화는 '좌파'에서 '우파'로 간 '명백한 변절'이다.
진중권 씨를 2의 '자유주의자'로 부름으로써, 김규항 씨는 진중권 씨를 '우파'로 간 '변절자'로 단정한 셈이다.
진중권 씨가 1년 전 "칼침을 맞았다"고 진보신당 게시판에 글을 남긴 것은, 김규항 씨의 단정을 명확하게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김규항 씨는 진중권 씨를 '자유주의자'라 표현한 것은, "(진중권 씨가)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당원들, 특히 자신보다 급진적인 당원들의 정체성을 존중하며 정당한 비판과 토론을 하는 게 아니라 매우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진중권 씨는 진보신당 내의 의견그룹인 <전진>의 한 내부용 문건을 검토(‘검열’이라는 말이 좀더 어울리겠지만)한 후 '전진은 사회주의자들'이라 판정하고, 나가거나 해체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진중권 씨가 3의 위치(사민주의)에 있긴 했으나, 4(사회주의)의 사람들을 배타적이고 폭력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3이 아니라 2(자유주의)라는 것.

김규항 씨는 스스로 "자본주의 체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로 1,2,3,4의 구분을 했다 표현했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드러나듯 이 넷의 구분 안에는 "사회주의를 바라보는 사회적 태도"가 담겨 있기도 하다.
위처럼 도식화하면 이런 식이다.

1. 보수주의(사회주의를 억압하는 태도, 한나라당)
2. 자유주의(사회주의를 반대하되 시민의 상식은 유지하려는 태도, 민주당 참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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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민주의(사회주의를 지지하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회주의적 개선을 꾀하려는 태도, 민노당 진보신당)
4. 사회주의(사회주의에 찬성하여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변혁시키려는 태도, 아직 운동 조직의 상태)


이 구분에 따른 김규항 씨는, 진중권 씨를 사회주의자들에게 배타적이고 폭력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에 '우파'이며 '자유주의자'로 본 셈이다.
진중권 씨를 '좌파'가 아닌 '우파'로, '사민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로 보는 것이 과연 객관적일까? 사회주의에 대한 태도로 사상적 구획을 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연 적실성을 가질까?
비판적 지지와 진보정당의 정체성에 대한 김규항 씨의 진지한 글에 진중권 씨가 논리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딱지 치기'로 희화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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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씨가 '보수와 진보'에서 '보수주의-자유주의-사민주의-사회주의'의 네 지형으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 정당화되려면, 21세기 한국사회 안에서 '사회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변혁하려고 하는지, 그 구체적인 실천 형태는 무엇인지를 먼저 테제화해야만 한다. 1980년대식의 구닥다리 사유가 아니라 2010년대의 현대적 가치가 '사회주의' 안에 담겨 있음을 말이다.

계급의 문제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문제의식' 수준의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를 몰랐기에 깃발이 내려진 것이 아니지 않은가. 대안 없는 문제제기는 여전히 공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