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사회파 추리소설의 걸작, 《점과 선》 by 신독

《점과 선点と線》 마쓰모토 세이초(1909-1992) 저 | 강영길 역 | 동서문화사 | 2003/01/01(중판, 초판은 1977/12/01, 원작은 1958년 발표) | 페이지 540

* <제로의 초점>에 관한 중대한 스포일러가 담긴 글이니, 아직 책을 보지 않으신 분은 아래에 접어놓은 부분을 클릭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이야기 하나만 담겨 있는 줄 알았는데, ‘점과 선(1957-1958, 연재 후 단행본 출판)’과 ‘제로의 초점(1958-1960, 연재 후 단행본 출판)’ 두 이야기가 한 권으로 엮인 책이었다.

추리소설에는 영 정을 붙이지 못했으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나 이사카 코타로 역시 일본 추리문단의 한 흐름인 ‘사회파’ 출신들 아니던가. 혹시 하는 기대감으로 ‘사회파’를 열었다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이 책을 보기로 했는데... 여러 모로 내 취향을 파악하다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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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을 전공했기에 시사 문제에 접근하는 내 마인드는 ‘해당 시사 문제의 사회적 배경’쪽으로 향하는 편이다. 개인의 심리를 넘어 이해당사자들 간의 사회적 관계나 구조적 문제까지 관심이 간달까.

그 때문인지, 마쓰모토 세이초의 글은 독서를 하는 내내 무척이나 친근하고 편했다.
같은 사건을 대했다면, <점과 선>에서 사건을 푸는 두 형사들처럼 나도 생각하고 조사를 해나갔을 테니까. 사고 과정이 동일하다고 느낀 최초의 작가라 하겠다.

<점과 선>이나 <제로의 초점> 모두 ‘알리바이 파괴’ 장르의 대가라는 F.W.크로프츠(Crofts)의 영향을 받았다는데, 크로프츠의 글은 본 적이 없어 개인적인 비교는 못하겠더라.

<점과 선>은 ‘행동’보다는 ‘추리’ 자체에 집중한 글이기 때문에, 범인의 알리바이를 파헤치는 과정부터 범행의 사회적 배경을 밝혀내는 결말까지, 플롯이 화자인 형사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순수한 ‘추리’의 문학이라 하겠다.

<점과 선>을 읽고야 알았다.
나는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풀리는 플롯보다는 ‘행동’이 가미된 플롯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몸 쓰기 좋아하는 내 취향쯤으로 이해하는 중이다.)

<제로의 초점>은 사건을 풀어가는 화자가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라 희생자의 미망인이라는 점이 특이한데, <점과 선>에 비한다면 ‘완결성’에 있어서 감점 요인이 몇 있다.
그러나 그 감점 요인들 또한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공감이 많이 가니, 아무래도 그는 나와 상당히 비슷한 감성을 가진 작가였던가 보다.

사회과학 전공자들은 흔히 사회현상 '자체'에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해당 사회현상의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에서는 뒤틀리거나 불공정한 감정을 가지는 수가 왕왕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제로의 초점>를 쓸 당시, 일본의 전후 사회문제였던 ‘양공주’라는 사회현상에 깊은 슬픔과 안타까움, 연민을 가졌던 모양이다.

<제로의 초점>의 범인을 언급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클릭하지 마시길.
그 때문인지, 그의 안타까움과 연민은 연속살인사건의 범인인 무로따 부인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희생자의 미망인인 데이꼬의 감정은 소설 속에서 놓치고 말았더라.
남편을 죽인 무로따 부인에게 소설 속의 데이꼬는 조금의 적개심도 가지지 않는다.
무로따 부인이 범인일 거라 의심을 품는 순간에도, 그 의심을 무로따 사장의 증언을 통해 확인하는 그 순간에도.
데이꼬는 남편을 죽인 무로따 부인을 조금도 증오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녀의 처지를 동정까지 하게 한다.
사회현상에 대한 연민이 집중된 무로따 부인에게만 애정을 쏟은 나머지, 정작 가장 불행한 처지에 떨어지게 된 연속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에게는 등을 돌린 격이랄까.


이 명백한 실수(알면서도 밀어붙였을 가능성도 있겠다)까지 이해가 가는 걸 보면, 마쓰모토 세이초에게 꽤 많이 공감하고 있다 봐야겠지.

그러나 사회 현상과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작은 사건에서 출발해, 사건의 동기를 밝혀내며 중요한 사회 현상을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플롯은 대단하다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추리소설계를 근본부터 뒤흔든 저력이 바로 이 점에 있었으리라.
이 정도면 두 작품 모두 세월을 뛰어넘는 ‘걸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추리소설 중에서도 ‘사회파’ 추리문학은 앞으로도 계속 읽을 수 있을 듯하다.
감정을 끊고 머리라도 움직여야 할 때에는 더우기.

덧글

  • 제로 2012/03/02 10:38 # 삭제

    사회현상 자체에 분노하거나 슬퍼하는 경향때문에 당사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감정을 가지는경우가 왕왕있다는
    부분에서 동감했습니다. 어쨌든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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