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조리 단상 by 신독

'비조리'라는 말은 이제는 쓰이지 않게 된 은어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라 어원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같은 대상을 '삐리', '좆삐리'라 불렀다. 더 윗 세대는 '날라리'라고도 했고. 본래는 한 단계 아래 애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날라리'가 오늘날의 '일진'을 부르는 말로 대체되며, '삐리'가 쓰이기 시작한 듯하다. 그때는 '일진 애'들을 '날라리'라고 불렀으니까.

ㅇ 삐리 : 남사당패에서, 각 재주의 선임자 밑에서 재주를 배우는 초보자. 숙달이 되기 전까지 여장(女裝)을 하였다.
ㅇ 날라리 : 언행이 어설프고 들떠서 미덥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기둥서방’을 낮잡아 이르는 말.

*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위와 같은 뜻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은어가 아니라 널리 쓰이는 비속어로 꽤나 유명한 말이 이 말들을 대체했다.
더 노골적이고도 적나라한 비하의 의미로 '좆밥'이라고 부르더라.

이 어휘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시절이 달라져도 한결 같은데,

'건달 흉내를 내지만 건달은 못 되는 따라지 인생'
'일진 따라다니며 빵 사다 바치면서 어깨 힘 주는 애들'
'노는 아이들 흉내를 내며 거들먹대는데 실속은 전혀 없는 애들'

을 가리킨다.

언젠가부터 진보 진영측에서 '수구'를 비하하기 시작하며 '수구꼴통', '수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요즘 많이 쓰이는 '입진보'는 그에 대한 '수꼴' 쪽의 반격이고.
비속어나 욕설이란 본래 '배설'뿐 아니라 '공격', '비하', '모욕'의 의미를 함께 지닌다.
'수꼴'에 대한 '입진보' 반격은 진보 진영쪽에서는 전혀 할 말이 없다. 먼저 지저분한 어휘를 써서 공격하기 시작했으니, 반격 좀 받는다고 할 말이 뭐 있겠나.

본래 '비조리'나 '날라리', '(좆)삐리', '좆밥'은 언제나 한 단계 위의 진짜들과 대비시켜 상대를 모욕, 비하하는 말들이다.
'건달'이나 '일진'이 그 비교의 대상이 되는 진짜들인데, 요즘은 의미가 확대되어 비교의 의미가 아니라 보통명사격의 욕설처럼 사용하기도 하는 모양이더라.

비교 대상이 되는 진짜들은 싸울 때 입으로 떠들지 않는다.
영업집에 몰려가 행패나 난동을 부리고는 자기들끼리 술집에 몰려앉아 자축을 하며, "우리가 발려 버렸어!" 자랑하는 건 예전부터 '좆밥' 애들이나 하던 짓이다.
진짜는 그냥 말없이 찌르고 간다.

진지한 논쟁의 장에서 비속어나 욕설을 보는 건 그래서 한심스러운 일이다.
진짜들은 본래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다. 논리의 칼로 상대의 논리를 잘라 버릴 뿐.
오늘날 정치 논쟁의 격이 떨어진 것은 먼저 비속어나 욕설로 공격했던 진보 진영 쪽의 책임이다. 풍자나 비판의 칼에 똥을 묻혀 휘두른 격이니.
똥냄새 자욱한 논쟁의 장에서 더는 똥냄새를 못 맡는 이들만이 똥냄새 나는 칼을 서로에게 휘두른달까.
이래서야 누가 그 싸움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 어느 밸리로 보내야 하나 두리번거렸으나 마땅한 밸리가 없네요. -_-a 비속어나 비하어 또한 표준국어대사전의 등재 대상이니 일단은 '인문사회' 밸리로 보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