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생산자나 그 평가자들에게 강추,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20 Master Plots-And how to build them)》 by 신독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20 Master Plots-And how to build them)》, 로널드 B. 토비아스 저 | 김석만 역 | 1997(1993) | 풀빛

보통 때에도 수첩을 갖고 다니며 메모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 버릇의 단점은 명백하다.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메모했는지 잊어버린다. =.=
그렇다고 지난 수첩 정리하며 기억해야 할 메모들을 꼬박꼬박 추리는 ‘메모광’도 아니기에, ‘잊히는 건 원래 별거 아닌 거’라 생각하며 사는 편이다.

얼마 전의 경우도 비슷했다.
갑자기 필요해진 정보 하나가 있었다. 몇 년 전에 메모를 한 기억은 분명히 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이 나지 않는 거라. 아……, 내 머리도 다 되었구나. 혀 끌끌 차며 지난 수첩들을 뒤지다, 몇 년 전 ‘읽을 책’으로 메모한 이 책의 제목을 보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뭐냐, 이 가벼운 제목은? -_-a
마치 <그녀를 녹이는 열 가지 키스 기술>이나 <상사에게 인정받는 스무 가지 브리핑 기법> 같은 ‘얄팍한 냄새’ 솔솔 풍기는 제목 아니던가.
이런 책을 왜 메모했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계속 수첩을 뒤져 보던 중……, 어라? 몇 해 후, 또 이 책을 ‘읽을 책’으로 메모해 놓았더라.

처음 소설 공부할 때, 플롯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이런 제목에 혹하지는 않았을 텐데. 갸웃갸웃.
나 같이 까칠한 사람이 몇 년에 걸쳐 두 번이나 메모를 했다면, 누군가 믿을 만한 사람이 추천을 했거나, 신문 기사를 보고 메모를 했다는 것인데…….
해서, 도서관 가는 김에 이 책을 찾아 별 기대 없이 들춰 보았다.

어, 어라?
읽다 보니, 이건 뭔가. 전혀 ‘안 가벼운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 로널드 토비아스는 이야기에 사용되는 플롯들을 스무 가지의 유형으로 이론화하고, 각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자세하게 서술해 놓았다.
이 책의 가치는 파블로 피카소가 말했다고 이 책에 실려 있는 “법칙을 깨고 싶으면 먼저 법칙을 배워라”라는 말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겠다.
플롯의 가치를 ‘독자’ 혹은 ‘관객’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나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상업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야기 생산자들에게는 정말정말 쓸모가 많겠다 싶다.
투로를 다룬 묵직한 무공기서라기보다는, 실전기술만 망라한 기술교습서에 더 가깝다.
플롯이 막혀 애 먹는 작가라면, 꼭 한 번 보라 추천해 주고 싶은 책.

아, 조금 더 빨리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건 번역된 제목 탓이야, 제목 탓.
하지만 실은 제목 탓도 아니다. =.=
딘 쿤츠의 작법 책 제목은 이것보다 한술 더 뜨는데 뭐.
무려 <베스트셀러 쓰는 법>아니던가. ㅎ
메모만 하고 즉시 확인을 안 한 내 게으름 탓이다. 누굴 탓하겠는가.

이 정도면 당근 사서 플롯에 이상이 있다 판단될 때마다 보아야 할 책이다. 아, 정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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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책은 이야기 비평가나 출판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유용하다 싶다.

장르소설 쪽 기획자나 편집자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이야기에 대한 평가가 개인의 주관을 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들은 대개 그 주관을 ‘독자 대중의 눈’으로 포장할 때가 많은데, ‘독자 대중의 눈’이 그 자신의 눈과 일치한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얘기는 재미없어요.”
“이 설정은 이미 진부해요.”
“애들은 이런 이야기 안 좋아해요.”

뭐, 이런 말들 또한 분명히 필요한 조언들이긴 하다.
하지만, 트렌드의 파악이야 해당 장르의 글들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고, 기본적인 분석력만 갖고 있다면, 누구든 몇 시간은 이야기할 거리를 알고 있다.

또한, 그들이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해 줄 때 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은,

"이런 에피소드를 삽입하면 좀 더 재미있지 않겠어요?"
"이런 설정을 집어넣으면 좀 더 독자들이 좋아하겠는데."
"인물 성격이 이렇게 되면 매력이 상승하겠어요."

같은 것인데...

물론, 아이디어란 무척 중요한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아이디어는 작가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하지 않음만 못한 것이다.
아이디어의 제공이나 개입이 지나치면, 그 이야기는 작가의 것이 아니라 편집자나 기획자의 것이 되어 버린다.
남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작가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이미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편집자나 기획자의 이야기가 된 작품은 더 이상 신 나게 써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된 글은 당연히 재미 또한 없어진다.

작가는 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이 부분이 이야기의 흐름을 망가뜨리고 있는데요. 복수치고는 당한 원한에 비해 너무 지나친 감이 있어요. 통쾌함이나 공감보다는 ‘너무 심하네’ 같은 혐오감이 듭니다. 복수의 강도를 조금 떨어뜨리는 것이 옳다 싶습니다.”

이런 조언은 플롯으로 야기되는 독자의 감상을 어느 정도 ‘이론화’시켜 예상할 수 있을 때라야 해 줄 수가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바닥에는 위와 같은 지적을 해 줄 수 있는 편집자나 기획자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기획자나 편집자들이 이 책을 많이 좀 봤으면 좋겠는데.
좋은 편집자가 많아져야 좋은 이야기도 많아지는데 말이다.

덧글

  • 하지은 2011/02/11 16:07 #

    저도 제목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꼭 봐야겠네요!
  • 신독 2011/02/11 16:16 #

    이론서보다는 실전서 정도니, 네게도 도움이 될 거야. ^ ^
    주옥 같은 명언들(소설가나 영화감독의 플롯에 대한 짧은 말들)이 참 많단다.
  • 신독 2011/02/11 20:36 #

    음... 그저 예를 들려고 만든 제목들이지만...
    <그녀를 녹이는 열 가지 키스 기술>.
    <상사에게 인정받는 스무 가지 브리핑 기법>.

    얄팍하긴 하지만, '팔릴' 제목이구나, 이거. -_-a
    반성하자. =.=
  • 2011/02/13 00:0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깊은하늘 2011/04/14 12:03 # 삭제

    오~ 편집자의 조언이 멋있네요..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 신독 2011/04/24 11:59 #

    리뷰 잘 보았습니다. ^^
    참 좋은 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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