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민망한 《동양무도연구》 by 신독

《동양무도연구》 이진수, 한양대학교출판부, 2004/2/23, 548P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다.

'무도'는 일본의 용어이고, 무를 바라보는 그들의 세계관이 압축적으로 표현된 용어이니까. 동양이라 명명하긴 했지만, 정확히는 한중일 삼국의 '무武'를 논하는 용어로써, '무도'는 적합하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나.

그래도 한 가닥 기대를 접지 않았던 것은, 이 책의 저자 이진수 교수(한양대 체육대학)가 일본의 쯔꾸바 대학에서 <신라 화랑의 체육에 관한 연구>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중일 삼국의 무를 바라보는 세계관 비교가 근사하게 담긴 책이지 않을까 기대가 생기더라.

그런데 목차를 훑어보니, 전체 19장 중 한국의 무예는 5개 장, 중국의 우슈에는 2개 장만 할애했더라. 나머지 12개 장은 일본의 부도(ぶ-どう, 武道)에 관한 글들이다.

이 정도 구성으로 '동양'을 논하기에는 민망하다 할 수 있겠지만, 노학자(출생년도는 책에 없어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 년도가 1967년이니, 최소한 1940년대 생일 것이다)가 그간 썼던 논문을 모아놓은 것으로 이해한다면야 뭐,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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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를 화랑 관련 논문으로 받은 분답게, 화랑세기를 기반으로 한 1, 2장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그러나 '수박희'를 다룬 3장부터 실망 시작, 5장인 '조선의 권법에 관해'를 보다 긴 한숨을 토하고 말았다.

기술된 형식으로 보아 학술지 등에 기고했던 논문의 총합으로 보이는데, 언제 어느 곳에 발표했던 논문인지 책에는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3장은 문헌연구를 통해 수박의 실체로 접근한 글인데... 수박이 실재하는 한국의 전통무예라는 '강력한 희망'에서 출발한 연역적 연구일 뿐이다. 귀납적 연구를 통해 증명된 적이 없는 '희망'을 어떻게 문헌연구의 대전제로 사용할 수가 있단 말인지.
4장 또한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의 정리일 뿐이고, 5장은 무예제보번역속집이나 무예도보통지의 권법을 소개한 것인데... 무예도보통지에 내가권이 수록되어 있고, 이것이 한국의 수박과 관련이 있다는 대목(194쪽)에서는 절로 한숨이 나오더라.

그나마 1장에 화랑들이 바라보는 '무'에 대한 세계관이 그럴 듯하게 수록되어 있었으니, 다행이랄 수밖에.

그러나... 중국의 우슈(武術)를 다룬 18장과 19장을 보면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18장은 태극권의 기원에 관해, 19장은 역근경의 실제 저자에 대한 글이었지만, 두 논문 모두 각론에 그칠 뿐, 우슈 전반을 이루는 세계관을 다룬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타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ㅎ

게다가 18장의 결론은 양식 태극권(이진수 교수는 '양씨 태극권'이라 했지만)이 태극권의 기원이라는 것인데, 이 또한 태극권은 춤을 추듯 부드러워야 한다는 연역적 대전제를 관철한 결과이다.
 
일본의 부도(武道)를 다룬 12개 장도... 8개 장은 이진수 교수 본인의 논문이 아니라 그의 스승인 와다나베 교수가 쓴 <무도의 명저>를 번역한 것이었다.
번역이 창작보다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지만, 표지에 '이진수 지음'이라 분명히 적혀 있는 것이 너무도 무색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 여덟 개의 장으로 나뉜 번역은 제대로 된 번역이라 보기 힘들다.
한중일 삼국이 같은 한자 문화권인 것은 사실이지만, 작금의 번역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명사가 아닌 이상, 해당국의 언어로 음을 표기함이 원칙이다.
일본어의 한글 표기법은 문교부 권장 표기법과 실제 출판물에서 사용하는 표기가 많이 달라 중국어 표기법보다 더 어지러운 상태라 하겠지만,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온 학자치고는 너무도 무성의한 번역이라 생각한다. 한자를 그대로 쓰고 음은 아예 달지도 않았으니.
관련 학자들만 돌려보는 세미나용이라면 몰라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식 출판물을 낼 때는 당연히 한자의 해당 국가 언어를 한글로 표기해야 한다.

그래도 일본의 무도를 다룬 이 12개의 장은 한국과 중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더 본격적인 세계관을 다루고 있어 만족스럽게 읽었다. 1999년에 나온 저자의 <일본 무도 연구>와 함께 본다면, 일본의 무도 이론에 대해서는 만족할 만한 일독을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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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무도 연구>라 명명하기에는 조금 민망스러운 편집이고, 비교연구서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 할 수 있지만, 그 출발점으로 생각한다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 책이 '2004 문화관광부 추천우수학술도서'로 지정되어 정부가 구입해 각 도서관에 기증할 정도의 책이라고는 도저히 인정 못하겠다.
한 권의 연구서로써 그 완결성도, 그 정확성도, 번역의 충실도까지 어느 하나 만족스럽지가 않으니.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독자 중 한 명으로서, 관련학계의 분발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