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별은 내 눈 속에 있고, 무림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 《고수를 찾아서》 by 신독

실크로드에 대한 자료를 찾다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띈 게 시작이었다.

《중국무림기행》 한병철 저| 성하 | 2005.07.11 | 페이지 269

나온 것은 진즉 알았으나, ‘다음에’ 하다 보니 여태 못 보았던 책이다. 새삼 반가운 마음에 책을 집어 들었고, 컬러 사진으로 생생한 10여 년 간의 중국무림여행을 흥겹게 따라다녔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 갸웃갸웃.

내가 아는 한도사 님의 글쓰기는 강건하고도 호방한 기상이 가득했는데. 이렇게 유유한 느낌이 아니었는데.
까발릴 때는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감춰야 할 것은 ‘감춥니다’ 분명히 알리는 명명백백 그 자체였는데.
책이 나올 때쯤 불혹의 경계를 넘기셨으니, 그 탓일까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읽다 오련지 노사가 좋아한다는 <以武會友>에 눈이 머물렀다.
만화 <권아>에서도 강조되었던 그 네 자를 보자, 세월이 지나 변화한 한도사 님이 어렴풋이 느껴지더라.
<마르스> 시절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는, 《고수를 찾아서》를 볼 때는 조마조마한 긴장이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운 서슬이 엿보였는데.
기억이 맞나 확인하고 싶어 책을 찾았다.


《고수를 찾아서》 한병철 저| 영언문화사 | 2003/11/30 | 페이지 406

역시 기억이 맞더라.
첫 출판작인 《독행도》의 전면에 넘치던 예기는 분명히 갈무리되어 있었지만, 《고수를 찾아서》에는 정련된 예기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과연, 무인의 글다워라.
여러 번 들춘 책이라 통독만 하고 막 덮으려는 찰나, 결어의 한 문장을 보고 손이 멈추었다.

“별은 내 눈 속에 있고, 무림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바로 며칠 전, 확인해 볼 것이 있어 《독행도》를 보았기 때문에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이 맞나 확인해 보았다.


《독행도 (칼의 역사와 무예)》 한병철 ․ 한병기 공저| 학민사 | 1997.05.15 | 페이지 256

과연.
22쪽에 이 문장이 분명히 있더라.

“하늘에는 별, 내 마음에는 검(劍)이다.”

그랬구나.
이 두 문장의 차이로 내가 느낀 변화가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6년의 차이를 두고 쓰인 이 두 개의 문장은 모두 롱펠로우의 이 시에서 나온 말들이다.

바다에는 진주가 있고,
하늘에는 별이 있다
그러나
내 마음, 내 마음,
내 마음에는
사랑이 있다

1997년 《독행도》를 낼 때만 해도 한도사 님의 마음에는 검(劍)이 가득했다.
그것은 《독행도》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진실이리라.
그래서 그는 “하늘에는 별, 내 마음에는 검(劍)이다”라고 짧고도 간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랬던 그가 6년이 지나 《고수를 찾아서》를 맺는 글에서는, 담담히 검을 놓았다 술회하였다.
모든 것을 걸고 검의 길을 독행하였으나, 그 검이 자신까지 옭매게 되자 결국 검을 잊기로 했다며.
그러나 검은 놓았으되 무武는 그럴 수 없었다 한다.
그래서 그는 이제 독행의 길이 아닌, <이무회우以武會友>의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별은 내 눈 속에 있고, 무림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며.

한참 동안 두 개의 문장을 들여다보았다.

무언가에 미쳐 본 사람, 그 무언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그것을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번뇌 속에 전전반측하다 마침내 놓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놓았으되, 외면까지는 하지 않는다. 못한다면 놓은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술을 마신 듯 멍한 눈으로 밤길을 걷다 문득 나를 떠올려 보았다.
한동안 걷다 보니, 결론이 나오더라.
나는 이러하였다.


하늘에는 별이 있고, 내 마음에는 안개가 자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