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hàjiàngmiàn, 자장면이라 쓰고 짜장면이라 읽는다 by 신독

'표준어 강박증'에 걸린 후로는, 표준어에 저촉(?)되는 맞춤법의 사용을 '비겁하게' 피하고 사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표준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어휘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다.
'찾길 바라'를 '찾았으면 좋겠어', 내지 '찾기를'이라 쓴다.
글맛은 영 달라지지만, '바래'는 틀린 말이니까.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바라'라고 쓰면 개미가 등줄기를 기어가는 듯 어색하다. 차라리 안 쓰고 말지.
그러나 다른 말로 바꿔 써도 때때로 께름하다.
나름의 대체어를 사용할 때마다 배신이라도 하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달까.
거의 말버릇이었는데도 이제는 '주구장창'을 안 쓴다. 틀린 말이니까.
그렇다고 맞는 말이라는 '주야장천'을 쓰긴 싫더라. '줄창'을 그나마 쓰곤 했는데, 이것도 사실 북한어라 표준어는 아니라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줄곧의 잘못'이라 또박또박 쓰여 있다. ㅎ
여태 엄마로 알고 자랐는데, 갑자기 엉뚱한 여자가 나타나 진짜 엄마라고 안방 차지한 기분이랄까.

나만 그런 게 아닌 건, '자장면 VS 짜장면' 논쟁을 봐도 알 수 있다.
언중의 과격하기까지 한 요구는 '자장면'을 유포한 언론도 알고 있는지라 작년에 SBS가 꽤 설득력 있는 다큐까지 제작한 바 있다.
SBS뉴스가 편집한 짧은 동영상을 ☞ 링크한다.

그러나 이 다큐의 논조 때문에 국립국어연구원이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올봄에 '짜장면'도 표준어가 되었다는 소문이 잠시 돌았지만, 낭설로 밝혀진 것처럼.

다큐에서는 현재 표준어로 쓰이는 '자장면炸醬麵'이 예전 사전에는 '酢(초)醬麵'으로 되어 있고, 이것은 '짜장면'과 완전히 다른 음식 아니냐며 결정적 증거처럼 말하고 있지만... 자장면의 한자라 거론되었던 한자어에는 '炒(초)醬麵'도 있다.
요리의 방법을 나타내기도 하는 저 한자들의 뜻이나, 요리 자체의 유래를 보아도 우리가 먹는 '짜장면'의 한자어는 '炸(작)醬麵'이 맞다는 게 정설로 안다.

때문에, 다큐의 논지보다는 국립국어연구원이 따르는 구닥다리 중국어 표기법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이다.
우리나라에 중국어 병음의 표기법이 제안된 것은 1983년의 '최영애-김용옥 중국어 표기법'이 최초다. 된발음을 왕창 구사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현재의 표준어 '자장면'의 근간이 되는 표기법은, 1986년 1월 7일 당시 문교부가 제공한 ‘중국어의 주음 부호(注音符號)와 한글 대조표’에 기원하는데, 국민 정서 교정을 생각해 된발음을 지양한 다분히 '전통'스러운 표기법이다. 현지 발음과는 완벽히 동떨어진.

우리나라의 중국어 전공자들이라고 그 '병맛'을 왜 몰랐겠는가.
공식 표기법의 '병맛'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중국어 표기법'을 제안했고, 그 수정과 보완에 힘써 왔다.
엄익상(1996), 임동석(1998), 심소희(1999), 전광진(1999), 정원기(1999), 김영만(2000), 김태성(2000), 맹주억(2000), 임동석(2000), 배재석(2002), 엄익상(2002), 장호득(2003), 정희원(2004), 김희성(2007, 2008), 도혜숙·배은한·장호득(2007), 강혜근(2008), 배은한(2008), 서미령(2008), 신아사(2008)...
요새는 국립국어연구원 또한 표기법은 어떻게 바꾸어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라던 권위적 태도에서 벗어나 표기법 수정의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더라.

그렇다면, 현재의 공식 중국어 표기법이 바뀌면, '짜장면'이 표준어가 될 수 있을까.

병음은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현한 것이다.
현재의 표준어 '자장면'은 중국어 '炸醬'과 우리말 '면'의 결합으로 보고 있다. (국립국어연구원 측 설명)
문제의 '炸醬'을 병음으로 표기하면 이렇다.

zhàjiàng

다큐에도 나오듯 권설음인 [zh]를 현재의 공식 표기법으로는 'ㅈ'으로 읽는다. 그러니, '자장'.
그렇다면 된발음 잔뜩 나오는 '최영애-김용옥 중국어 표기법'은 어떨까?
근데 [zh]는 CK시스템에서도 'ㅈ'으로 읽는다. 그래서 '자지앙'.

그렇다면, 1996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중국어 표기법을 수정하였고, 서울의 새 중국어 명칭인 '수이(首爾: 소우얼)'을 최초로 제안한 엄익상 씨의 안은 어떨까? (중국어 표기법이 수정된다면 이분의 안을 따를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본다.)
근데, 엄익상 씨 안 또한... [zh]를 'ㅈ'으로 읽는다. 그래서... '자지앙'.
역시 된소리 발음을 잔뜩 끌어들인 임동석 씨 안 또한 대동소이. '자장'.

다큐에서 박재동 화백은 왜 [zh]를 'ㅈ'으로 표기하냐며 울분을 토하셨지만...
우리 귀에 'ㅈ'과 'ㅉ'의 중간쯤으로 들리는 [zh]는 'ㅈ'으로 표기하는 게 맞다고 학계는 보는 모양이다.
그러니, 현재의 병맛 중국어 표기법이 현실음에 가까운 표기법으로 수정되어 다수의 표준어가 새롭게 바뀐다 해도... 여전히 '짜장면'의 표준어는 '자장면'일 것이다.

언중이 '짜장면'으로 쓰니, 표준어도 '짜장면'으로 쓰라는 말이 국어연구원에 먹힐 것 같지는 않다.
원칙이 되는 병맛 표기법을 괜찮다 평가 받는 수정안으로 바꾸는 것 정도가 국어연구원의 최선이겠지.
하지만, 그걸 바꿔도 자장면은 걍 '자장면'.

이쯤되면 나 같은 표준어 강박증 환자는 어쩔 수가 없다.
소심하고 또 비겁하지만...
'자장면'이라 쓰고 [짜장면]이라 읽는 수밖에.

짜장 짜증 나.

* 짜장 : 부사어. '과연 정말로'. 예) 그는 짜장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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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하지은 2010/09/15 17:45 #

    주구장창이 표준어가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네요 -_-;
  • 신독 2010/09/15 18:01 #

    뭐,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중 표준어 아닌 게 어디 한둘이겠냐.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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