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협정 by 신독

소슬의 《벽안금조碧眼金雕(1965)》.
1970년대에 와룡생 필명으로, 《벽안금붕碧眼金鵬》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던 글이다.

2권을 쓰며 천산파와 곤륜파, 공동파를 한꺼번에 다루게 되었는데, 소슬의 이 글이 딱 이들 문파들을 다룬 중무라는 게 기억 났다.
소슬의 기풍이라면 천산파의 무공에 관련해 도움받을 것이 있을 듯했다. 나름 익숙한 곤륜파라면 몰라도 천산파는 어째 딱 와닿는 이미지가 없었던 터라.
검색을 해보니, 1994년에 《검명사해, 박영창 역》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더라.
헌책방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있었다.

검색을 하던 중, 1세대 무협팬(중국무협 번역본을 실시간으로 읽으셨던 분들)들이 만드신 사이트를 몇 개 찾았다.
그 중 한 곳에서 참으로 우연스럽게도 무우수 형님의 예전 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무쪽에서는 쓰신 별호가 다르시지만 특유의 문장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ㅎㅎ
오랜만에 무슈 형님의 유려하며 도도한 글들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전화 살리면 연락드려야겠네.

링크를 따라가 보다, 역시 1세대 무협팬 중 한 분이 직접 번역 중이신 <벽안금조> 번역본을 구경할 수 있었다.
4장까지 번역하셨던데, 교정만 약간 하면 곧바로 출판을 해도 될 정도인 좋은 번역이었다.
번역 분량이 너무 적어, 필요한 천산파 대신 곤륜파 무공만 맛보기로 볼 수 있어 아쉬웠지만.
천재 소년이 위기와 중첩된 기연을 연달아 겪으며 단번에 절정고수로 성장해 가는 플롯이었는데, '비극협정悲劇俠情'이라 표현되는 정한情恨을 다루기도 하는 글이다.

<곤륜>의 작가 봉가도 선배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정한'의 감성을 여러 인물을 통해 그려낸 바 있다. <무림객잔>의 보비연 또한 그랬고.
나는 본래 이 중국적 정한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와룡생은 여자들한테 질질 끌려다니는 남주를 만들기 일쑤였고, 김용 또한 장무기를 그런 식으로 그렸다.
(비극협정의 절대고수라는 왕도려 원작의 영화 <와호장룡>을 볼 때는 윤발이형의 카리스마 덕분에 그래도 답답하지 않았지만. 원작 소설은 아직 못 보았다.)

부산의 호접 형님은 제대로 된 사랑 이야기가 없어 한국무협이 재미없다고 한탄하신 바 있지만, 이 중국적 정한은(우리나라도 전통적 가치로 따지면 이쪽이긴 하겠다. 그렇다고 조선 사내들이 중국인 식으로 질질 끌려다니지는 않았던 듯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겐 '짜증 유발'의 대상이었다.

근데,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게 된 것.
역시 마초의 인생은 '비극협정'이 맞더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