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소설 작법 20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by 신독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하다 우연히 '반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가지'와 '녹스의 추리소설 10계'를 찾았다.
레이먼드 챈들러가 쓴 글도 본 적 있지만, 추리소설가나 미스터리 작가들은 해당 장르를 쓸 때 작가로서 지켜야 할 규범이나 규칙들에 대해 많은 논쟁을 거친 모양이더라.

한국무협의 경우에도 이와 같은 담론은 있었다.
외국처럼 단편 발표를 위한 잡지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통신 시절 발아한 각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작가들과 독자들이 모여 활발한 토론을 했으니.
(통신에서 인터넷으로 커뮤니티가 이동하며 대부분의 쓸 만한 담론은 실종되거나 표류하고 있지만.)

하지만, 'OO의 무협소설 10계' 같은 건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음... 왜 없을까?
요즘이야 '키치무협'이라 분류할 글들이 너무 많고, 3세대 초반 판타지 장르와 이종교배가 이루어진 후부터는 무협 독자들이 '이건 아니다' 생각하는 설정들까지 무협에 침투한 지 오래이긴 하다.
사실 무협의 주독자층이 완전히 세대교체되면서부터는, '무협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규범 자체를 독자에게 재교육해야 하는 실정에 이르렀다 봐야 한다. 그들은 대개 무협 장르의 규범이나 규칙 자체를 모르면서 무협을 본다. 그런 것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은 무협을 보면서 성장하고 있으니 탓할 수도 없다.
판이 바뀌어 순종과 혼혈종이 마구 뒤섞여 있으니 뭐.
(그렇다고 현재 나오는 모든 무협이 규범이나 규칙을 지키고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글들의 상당수가 규범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장르의 '규범(가치 판단의 기준)'이나 '규칙(게임의 룰)'이라 말하면 혹자는 "그런 게 왜 필요해?" 할 지도 모르지만, 특정 장르의 팬이라면 누구에게나 장르의 규범과 규칙은 내재화되어 있다. 그래서 마니아인 거니까.
부모의 복수를 위해 10여 년간 무공을 닦아 출도한 강호의 신성이 막상 부모의 원수를 만나자 죽이지 않고 용서한다고 치자.
대부분의 무협 독자는 원수를 용서하는 장면이 어지간히 잘 쓰인 것이라 해도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얘, 뭐야?'하게 된다.
무협의 세계에서 부모를 죽인 자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반드시 죽여야 할 자다.
이런 것이 무협 장르에 내재화된 당연한 규범이고 규칙이다.
이러한 규칙을 고민 없는 상태로 손쉽게 어긴다면 그것은 이미 무협이 아니다. 한마디로 '볼 맛이 안 나는 것'이다.

판타지를 처음 쓸 때, 제일 고민한 것도 이것이었다.
나는 글을 쓰게 된 이후에야 한국의 창작 판타지를 읽었다.
그때까지 읽은 소설들 중에 판타지 장르가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대여점에서 유통되는 판타지는 거의 읽어 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독자로서 판타지의 규범과 규칙도 모르면서 창작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니, 나로서는 꽤나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다. ㅎ
두 질쯤 써 보니 판타지 장르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 생기더라.
독자로서 읽을 때야 장르의 규범이나 규칙은 몇 종만 읽어도 감이 오기 마련이지만, 작가로서 글을 쓰게 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작가는 자신이 창작한 이야기에 독자가 어떻게 반응할 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반전의 포인트나 절정의 국면으로 배치한 장면이 해당 장르에 내재화된 규범이나 규칙을 개무시해서 독자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신한다면?
독자는 당연히, 그 글과 그 작가를 개무시하게 된다.
'얘는 판타지가 뭔지 모르네.'
일케 되는 거다.
그런 꼴을 안 당하려면, 단순히 해당 장르의 규범이나 규칙을 파악함을 넘어 작가 스스로 '이 장르는 이런 것이다'라는 명제를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두에 흘린 '반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가지'나 '녹스의 추리소설 10계'는 독자를 위한 규칙이 아니다. 해당 장르의 마니아이자 작가로서도 출사표를 던진 이들을 위한 규칙이며 규범이니.
시간이 좀 더 지나고 여유가 생기면, '무협소설 20계' 같은 걸 만들어 봐도 재미있겠다. 작가들끼리 트랙백을 걸거나 반론이 오간다면 꽤나 생산적인 작업이 될 듯도 한데.
지금이야 뭐, 바쁘다. =.=


[참고]

I. 반 다인의 추리소설 작법 20칙

- 1928년 <아메리칸 매거진>에 발표되었다가 다시 <살인사건 옴니버스>에 수록되었다. 당시로서는 선풍을 일으킨 주장이었으나, 지금은 이 중 3항, 7항, 16항, 19항 등이 수정 또는 완화되었다.

탐정소설은 일종의 지적인 게임이다. 스포츠 경기 종목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추리소설을 쓰는데 있어서는 극히 명확한 규칙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들 규칙은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으나 강한 구속력을 가진다. 고결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탐정소설가라고 한다면 모름지기 이 규칙은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의 양심에서 우러나는 신조이다.

1) 수수께끼를 해결함에 있어 독자에게 작중의 탐정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모든 단서는 명확하게 기술되어야 한다.
2) 작중의 범인이 탐정에게 적당히 행하는 속임수나 술책이 아닌 한, 독자를 속이는 기술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3) 이야기 중에 연애적인 흥미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요컨대 범인을 재판장에 보내려는 것이지, 사랑에 빠진 남녀를 예식장에 보내려는 것이 아니다.

4) 탐정 자신 또는 수사당국의 직원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구리로 만든 돈을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서 금화라고 속이는 것과 같다. 명백한 사기행위이다. (탐정이나 수사요원이 아닌 일반인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관여 또는 협조했는데 알고 보니 범인이었다는 것은 괜찮다. 범인이 혐의를 다른 사람에게 가게 하기 위하여, 또는 수사과정을 방해하기 위하여 이런 수를 쓰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규칙은 아가사 크리스티가 두 번이나 위반했다.)

5) 범인은 이론적 추리를 통해서 판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연, 암호, 무동기의 자백 등에 의한 결정은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고생하여 범인을 찾게 하였다가, 이것이 잘 안되니까 실은 내 손 안에 모든 단서가 있었다고 놀려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장난이다.

6) 반드시 탐정이 등장해야 한다. 탐정이라 하는 한, 탐정 일을 해야 한다. 탐정 일을 한다 함은 모든 단서를 수합하고 이것에 의해 범인을 추적, 결정 짓는 것이다. 이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해답편만 따로 보는 것이 낫다.

7) 추리소설에는 반드시 시체가 있어야 한다. 살인이 아닌 범죄를 다루는 것은 좋지 않다. 살인보다 가벼운 죄를 가지고 수백 페이지의 책을 읽게 할 수는 없다. 독자의 노고는 보상되어야 한다.

8) 범죄의 수수께끼는 엄격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풀어져야 한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점을 친다든가 심령술, 최면술 등을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독자는 이성적 추리력이 있는 탐정과 머리 싸움을 해야 승산이 있는 것이지, 영계와 경쟁을 한다면 처음부터 승산이 없다.

9) 탐정소설 중의 탐정, 즉 추리의 주역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탐정이 여럿이라면 독자의 흥미가 분산되고 논리의 체계가 흐트러진다.

10) 범인은 소설 중에서 어느 정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래서 독자가 관심을 가지게 되어야지 전혀 관심이 없던 인물이어서는 안된다.

11) 작가는 심부름이나 하는 하인을 범인으로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논점이 약해지고 사건이 쉬워진다. 범인은 좀처럼 혐의를 두기 어려울 만큼 상당한 지위에 있는 인물인 것이 좋다.

12) 범죄가 있든 없든 범인은 한 사람이어야 한다. 원조자 등 기타의 공범자가 있는 것은 무방하나 범행의 책임을 지는 자는 한 사람이어서 독자의 의심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도록 해야 한다.

13) 비밀결사, 카모라당, 마피아당 등을 탐정소설에 등장시켜서는 안된다. 상당히 절묘한 범행이라고 감탄하고 있는데 배후에 그토록 절묘한 조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냥 있음직한 사건이 되어 버려서 흥미가 반으로 줄어든다. 탐정소설의 범인에게는 십중팔구 도주의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인데, 배후에 그런 조직이 있다면 도망치는 것은 당연하고 쉬운 것이 되어 버린다. 웬만큼 자존심이 있는 범인이라면 그런 배후조직의 도움이 없이 일대일로 탐정과 대결하고 싶을 것이다.

14) 살인방법과 이에 대한 수사방법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한다. 공상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은 탐정소설에서의 살인일 수 없다. 만약에 환상적인 세계에서의 범행이고 수사가 된다면 이는 모험소설이 되어 버린다.

15) 사건의 진상은 통찰력 있는 독자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 되어야 한다. 환언하면 사건의 종말을 알고 다음에 다시 읽어 본다면 모든 단서는 분명히 제시되었고 모든 증거는 범인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충분한 납득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탐정과 같은 정도의 지능을 가진 독자라면 최종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수께끼를 혼자서 풀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실제로 혼자서 풀어보는 독자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6) 추리소설에는 장황한 서술적 묘사, 지엽적인 일에 관한 문학적인 설명, 정교한 성격분석, 분위기에 대한 도취 등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것들은 사건의 기록과 그 추리를 위하여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줄거리의 진행을 산만하게 하고 관심을 딴 곳으로 유도해 버리는 것이 된다. 탐정소설의 주 목적은 사건의 설명, 분석, 해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진실성을 묘사하는 데 필요한 정도의 자연묘사, 성격묘사가 있는 것으로 족하다.

17) 탐정소설에서는 직업적 범죄자가 범인인 것은 좋지 않다. 강도나 절도에 의한 범죄는 경찰의 관할이지 탐정가나 재치있는 아마추어 탐정이 다룰 범죄는 아니다. 교회의 중진이라든가, 자선가로 소문난 귀부인이 저지르는 범죄 같은 것이라야 흥미가 있다.

18) 사고 또는 자살이었다고 결말을 지어서는 안된다. 애써서 추리를 해왔는데 알고 보니 사고로 죽은 것에 불과하다라면 독자를 조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19) 탐정소설에서 살인의 동기는 모두가 개인적인 것이라야 한다. 국제적인 음모나 정치적인 동기에 의한 살인은 소설의 장르로는 스파이 또는 비밀요원 장르에 속한다. 탐정소설에서는 개인적인 것을 다루어, 어떤 형태로든 독자 자신의 억압된 감정과 욕망의 탈출구가 되는 것이라야 한다.

20) 끝으로 나의 신조를 20항으로 끝내기 위하여 자존심이 없는 작가라면 써먹을 지도 모르는 수법을 열거하려 한다. 이들은 너무나 많이 써먹은 것이라서 범죄문학의 애호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들을 사용한다는 것은 작가의 무능함과 독창력의 부족을 폭로하는 것이 되고 있다.

a. 범죄현장에 남아 있는 담뱃갑과 혐의자가 애용하는 담배의 종류가 일치한다는 것으로 범인임을 짐작하는 것.
b. 최면술 같은 것으로 범인을 억압하여 범인이 자백하게 하는 것.
c. 지문의 위조.
d. 대용품에 의한 알리바이 조작.
e. 개가 짖지 않았다고 잘 아는 사람에 의한 범죄로 보는 것.
 f. 무고한 쌍동이 또는 근친자를 진범으로 체포하고 결말을 짓는 것.
g. 피하주사와 맹독.
h. 경찰이 들어간 다음에 일어나는 밀실에서의 살인.
 i. 유죄판정을 위한 언어의 연쇄반응 테스트
 j. 최종적으로 탐정에 의해서만 해독되는 암호 또는 약호.



II. 녹스의 추리소설 작법 10계

- 녹스는 1888년 영국 국교인 청교도 주교의 가문에서 태어났다. 영국 국교의 주교를 역임하고 1917년에는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1919년에 옥스포드 대학 사제에 취임한 성직자였다. 저명한 수필가인 그는 추리소설로도 유명하여, 1925년에 발표한 <육교살인사건 The Via-duct Murder>은 완벽한 퍼즐형 추리소설로 유명하다. 그는 반 다인이 <추리소설 작법 20칙>을 발표한 다음 해인 1929년에 <1928년의 영국추리소설 걸작집>을 발간하면서 그 서문에 이 10계를 발표했다. 영국 추리소설의 연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추리소설 걸작집>은 그 다음 해에 한 번 더 출판되고는 중단되었지만 초판의 서문과 그 중의 10계는 오늘날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1> 범인은 이야기의 초기에 등장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의 움직임을 미리부터 독자가 알고 있어서는 안된다.
독자가 알지도 못하고 수상하다고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인물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한다면 공정한 게임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음의 움직임이 독자에게 알려져서는 안 된다는 부분은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아가사 크리스티는 이 규칙을 위반해가면서 훌륭한 작품을 몇 편 쓰기도 했다.
이 점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추리작가들은 진범에게 이상한 행동을 시켜 독자의 판단을 흐려서는 안된다.

2> 말할 필요도 없이 추리소설에는 초자연적인 마력을 동원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수법을 써먹는다는 것은 몰래 숨겨놓은 모터를 이용해서 보트 레이스에 이기는 것과 같다.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에게는 이러한 문제점이 있다. 브라운 신부는 걸핏하면 범죄가 마력에 의한 것이라고 해서 독자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그가 추리소설의 규칙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글을 쓰거나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위해서 그런 방법을 동원한 것은 아니다. 그의 수수께끼에는 풀어볼 만한 요소가 많고 의심해야 하는 용의자도 충분하며 스릴도 있기 때문이다.

3> 비밀의 방이나 통로는 하나면 족하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사건의 무대가 되는 건물에 비밀장치가 있다고 해서 별 이상한 것이 없을 때 사용하라는 말이다. 밀른(A.A.Milne)의 <붉은집의 비밀>에도 이러한 장치가 있는데, 설명이 공정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현대 건물에 그런 비밀장치가 있다고 한다면 막대한 건축비가 들뿐만 아니라 소문도 크게 날 것이므로 추리소설의 무대가 되기는 어렵다.

4> 아직 발견되지 않은 독물과 긴 설명을 필요로 하는 과학적인 장치 등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인체에 상상 외의 작용을 하는 독극물은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은 쓰지 말아야 한다. 공정한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리맨의 손다이크 박사 시리즈에는 자주 나오는 일이다. 그 독약의 의학적인 결함은 작은 것이지만 강의를 듣는 것 같은 긴 설명에서 오는 결함은 매우 큰 것이다.

5> 중국인을 중요한 인물로 등장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왜 이것이 규칙의 하나가 될까? 명확한 설명을 하기는 쉽지 않으나 우리 서양인들 사이에는 "중국인들은 머리가 좋지만 도덕적으로 뒤지는 사람이 많다"는 편견이 뿌리깊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관찰한 것만을 말하겠는데 "친구의 길게 찢어진 눈"이라는 묘사가 나온다면 아예 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좋지 않은 작품일 것이 분명하다. 밀튼(John Milton)의 <멤워드의 네 비극>만은 예외이다.

6> 탐정이 우연히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든가 근거 없는 직감이 적중했다는 등의 전개는 피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좀 지나친 말일지 모르겠지만 탐정이 영감, 직감 등의 도움을 받더라도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는 반드시 그 진실성을 성실히 검토하게 하라는 것이다. 실제 수사에서는 영감이 번개처럼 떠올라 사건의 진상을 잡을 수 있겠지만 추리소설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탐정의 직감만으로 잃어버린 유서를 대형 벽시계 속에서 찾아냈다면 졸렬한 방법이 된다. 그러나 탐정이 범인의 입장에 서서 유서를 감출 수 있는 장소를 떠올려 벽시계를 뒤지게 되었다면 있을 수 있는 일이 된다. 진상의 해명에 있어서 탐정은 자신이 생각한 사건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모든 일에 대한 정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7> 추리소설에서는 탐정 자신이 범인이어서는 안된다.
단 이 규칙은 탐정이 진짜 탐정임을 작가 자신이 보증하는 경우에 한해서 적용된다. 크리스티의 <침니가의 비밀>에서와 같이 범인이 탐정으로 위장하여 많은 엉터리 증거를 조작하여 다른 등장인물을 속이는 플롯은 그런 대로 괜찮다.

8> 탐정이 단서를 발견했을 때는 이를 곧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
아무리 미숙한 작가라도 다음과 같이 써서는 안된다.
"위대한 명탐정 삐록 홀즈는 갑자기 몸을 구부려 지면에서 뭔가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을 친구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고 혼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이것은 수수께끼 작성법으로는 비논리적이다. 독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단서로 해야 할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이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 독자의 추리력에 도전하여야 하며 그때에도 독자가 수수께끼를 풀지 못했을 때 역량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다.

9> 탐정의 우둔한 친구, 즉 왓슨 역의 사나이는 그가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을 숨김없이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그의 지능은 일반 독자들보다 조금 낮아야 한다.
이 규칙은 완벽을 기하기 위한 것이고 추리소설의 본질상 왓슨 역이 꼭 있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왓슨 역이 등장할 때는 그 비중은 권투선수의 스파링 파트너 정도여야 한다. 작품을 다 읽은 독자가 "작가한테는 졌지만, 왓슨 같은 멍청이는 아니니까 다행이군" 류의 반응을 보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10>쌍둥이 또는 쌍둥이라 할 만큼 닮은 사람을 등장시킬 때에는 그 존재 이유를 충분히 독자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이런 종류의 트릭은 독자를 속여먹기에는 안성맞춤이지만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이 규칙을 더 보충하는 뜻에서 추가한다면, 범인에게는 보통 사람 이상의 변장술이 있어서는 안된다. 범인인 사람이 무대에 선 경험이 있어서 변장술에 뛰어났다는 예비지식을 독자에게 주었을 때에는 별문제이다.
벤틀리의 <트렌트 최후의 사건>에서는 이 문제를 잘 처리했다.

덧글

  • 녹슨 2010/08/29 15:23 #

    문학 작법 10계라기보다는 퀴즈대회 진행룰 같은 느낌이네요.
    추리소설에 대한 위 조항들은 옛날 이야기인 것 같아요.
    좀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도 누구는 예외이다 어떤 글은 예외지만 명작이다, 뭐 이러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작법 10계, 와 같은 아이디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작가마다 고유의 10계를 만들수도 있겠지만요.

    많은 독자들이 글을 접하기 전에 장르에 대한 기대를 품게 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 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이 처음 수십페이지를 글의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보내길 원하는 독자는 드물테지요.

    로버트 맥기의 글에서 본 이야기인데 "셰익스피어는 <햄릿>이라는 작품명을 사용한 적이 없다. 그가 붙인 제목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비극>이었다. 그는 코미디들에도 역시 <헛소동>이나 <끝이 좋으면 다 좋아>같은 제목을 붙여놓아, 어느날 오후 글로브 극장에 찾아오는 엘리자베스 여왕시대 당시의 관객들이 이미 심리적으로 울거나 웃을 준비를 하게 만들었다. - 중략 - 일단 관객들에게 그들이 좋아하는 장르를 기대하게끔 해놓고 나면 작가는 약속한대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 만약에 작가가 규칙들을 빠뜨리거나 잘못 사용해서 장르를 혼란시켜 놓으면, 독자는 그것을 즉시 알아차리고 작가의 작업에 대해 험담을 퍼붓게 된다.

    히치콕은 예술과 대중적인 성공 사이에 갈등이 있을 필요가 없듯이, 예술과 예술 영화 사이에도 특별한 관계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장르의 규칙이 예술성을 파괴하지는 않는다는 취지의 글이었는데, 장르의 규칙에 대한 의견은 제 생각과 달라서 안 퍼옵니다. ㅎ
  • 신독 2010/08/29 15:38 #

    20세기 초반의 규칙들이기도 하고,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징이기도 하겠죠. ^^
    추리소설의 반동으로 하드보일드가 나왔고 그것이 발전해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스릴러가 탄생했지만, '스릴러 작법 10계' 같은 건 저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ㅎ

    하지만, 무협은 현실의 과거 세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환상이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엄밀히 지켜야 할 규칙들이 꽤 있는 편이죠. 요즘이야 그런 것들 자체를 무시하는 독자와 작가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지키지 않았을 때, 무협 장르 고유의 정체성에서 이탈해 책을 덮게 만들기도 하니... 정리를 한다면 꽤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겁니다.
  • 하지은 2010/08/29 20:12 #

    작법이라고 하셔서 이런 것 말씀하시는 줄 알았어요.
    http://fangal.org/xe/57407
    찬찬히 다 읽어봤는데 이것도 상당히 좋았어요.
    오라버니께서 무협 단편을 보셨다니 새삼 부끄럽네요...
  • 신독 2010/08/29 20:52 #

    링크한 글도 무척 좋구나. (작가의 얼굴들은 안습이지만 말이지. 작가들은 나라가 달라도 비슷한 듯.)

    *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무협을 쓸 때는, '겸손'은 미덕이 아니란다. 자신의 글에 대해 오만한 작가일수록 무협 맛이 나는 글을 쓴달까? 사람이든, 인생 자체든, 싸우는 사람들을 그리는 장르라 더 그래. 오만해지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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