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걷는 건 참 어렵다 by 신독

10여 년 전에 산에서 떨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보행법에 신경 쓴 적은 없었다.
도봉산에서 한창 산 배울 때, 산꾼 할배들께서 가르쳐 주신 산행용 보행법-평지에서 걸을 때와 산에서 걸을 땐, 걷는 방법이 약간 다르다. 11자 걸음이나 호랑이 걸음<발을 몸의 중심선에 1자로 디디는 일선보식>, 급경사를 오를 때 사용하는 'Rest step', 알파인 스틱을 사용하는 보행법 등이 있다. 요런 건 '등산 보행법'으로 검색하면 알찬 정보들이 사방에 돌아다닌다-만으로 충분했으니.

복합골절로 정강이와 발목이 부서진 후엔, 걸음마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부러진 오른쪽 발목은 밖으로 열린 채 굳어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석 달 넘게 반깁스와 수술을 반복한 오른쪽 다리는 근육이 다 풀어져 툭 치면 살덩이가 흔들거리곤 했으니.
그땐 균형을 의식할 만한 여유도 없었다.
목발을 안 짚고 걷기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목발을 떼고서도 절름거리지 않기까지는 또 그만한 시간이 걸렸으니까.
자전거를 타며 근력 보충하고, 어정쩡하게나마 걸으며 느꼈던 건 신발의 중요성이었다.
그전까지 대충 신고 다녔던 신발들을 신고는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발목이 아프거나 발이 아파 금방 절뚝였으니.
일 때문에 구두를 신는 날이 내게는 고역이었다. 다들 좋다 하는 명품 구두도 망가진 내 발목을 보호해 주진 못했으니까.
그나마 신을 수 있었던 건, 쿠션 기능이 잘 갖추어진 기능성 러닝화였다. 그걸 신어야 1시간이라도 발의 통증을 안 느끼며 걸을 수 있었다.

퇴원 후 1년쯤 지났을 때야 만족할 만한 속도로 걸을 수 있었고, 산도 조금씩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치기 전처럼, 오랫동안 빠른 속도로 걸을 수는 없었다. 달리는 것은 당연히 상상도 못했다.
나는 그때 제대로 걷거나 달리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 걸을 수 있게 된 게 어디냐' 자위하며.
오른발목이 5도쯤 밖으로 열린 채 굳어, 평지나 산에서 내내 유지했던 11자 보행이 불가능했다.
왼발은 그대로 정면을 바라보며, 오른발은 밖으로 약간 열린 채. 그대로 걸어다니고 산을 탔다.

그렇게 9년쯤 지나자... 글쟁이 된 후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몸무게가 불어났다. 다치기 전보다 10kg쯤.
균형을 잃었는데도 그대로 방치해 두었던 몸에 여기저기 탈이 나기 시작했다.
하중을 견디는 데 주로 사용했던 왼쪽 무릎에 이상이 생긴 것. 산을 타다 무릎을 굽히지 못해 기듯이 내려올 정도였다.
조금만 오래 걸어도, 오른쪽 고관절에 모래알이라도 끼인 듯 아팠다.
3시간 이상은 산행도 못하고, 평지에서도 몇 시간만 걸으면 고관절이 아팠다.

그때쯤 내게 '제대로 살라' 말했던 이가 있었다.
그 사람이 말한 건 그런 뜻이 아니었겠지만, 내겐 사는 것과 몸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균형을 잃어 망가진 몸을 제대로 고쳐 보자 독하게 마음먹었다. 나는 그때 참 떨리는 마음으로 그 결심을 했다. 몸이 망가져 본 사람만이 그 마음을 알 것이다. 한 번 포기한 길을 다시 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9년 전 포기했던 11자 보행을 다시 시작했다. 저녁이면 자전거 타고 밤길을 걸었다. 조금씩 탁탁 뛰어 보기도 했다.
스스로 길을 찾아야만 제대로 된 길을 알려 주는 이가 나타나는 걸까.
6, 7년간 친하게 지냈던 지인이 요가를 제대로 배운 이란 건 그때야 알았다. 그의 도움을 참 많이도 받았다. 그가 툭툭 알려 주는 길을 따라 내 몸은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쯤 또 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로 다운힐을 하던 중, 전복 사고가 나고 말았다. 이번엔 오른 팔목 분쇄골절이었다.
그리고 나는 꽤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하기로 한 일을 남겨 둘 수는 없었다.
그건 내 스스로 나를 모욕하는 짓이니까.

그 후 2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내 몸은 불균형하다. 오른 발목과 골반이 뒤틀려 있으니, 척추에도 아마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은 달릴 수 있다. 최고 스피드를 내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사고 나기 전과 비슷한 시간 동안 산행할 수 있다. 능선 종주를 하며 몇 굽이의 봉우리를 다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다.

아직 '제대로' 걷지는 못한다. '제대로' 사는 것 같지도 않다.
사실 이제는 의미가 없는 일이다. 굳이 '제대로'를 고수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저 몸에 익은 습관이 된 느낌이다.
걷고 뛰고, 미진한 부분을 점검하고, 이유를 생각하고, 대안을 떠올려 보고.

가을이다.
남겨둔 일들을 치우기 시작할 때.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