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십 트루퍼스 Starship troopers》 로버트 A. 하인라인| 강수백 역| 행복한책읽기| 2003.06.20(1959) | 456p동명의 영화(폴 버호벤, 1997)를 이미 본 터라, 그다지 손이 가지는 않았던 책인데…… ‘원작을 망친 영화’라는 지인의 혹평에 끌려 원작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망쳤다’ 혹평했던 그 영화도 꽤 괜찮게 보았기 때문에)
하인라인이 1959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강화복(powered suit, 스타크래프트의 마린을 생각하면 되겠다)’이라는 설정 하나만으로도 SF 장르의 고전이 될 가치가 있겠지만,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한 것은 역시 ‘군대’였다.
나는 군대를 참 싫어했다.
내가 동의한 적 없는 의무를 위해, 내 의사와 무관하게 가야 했던 군대에서 나는 꽤 많은 것을 잃었다. 그랬기에, 제대 후 가끔씩 들었던 ‘군인 같다’는 말이 내게는 참 아이러니였다. 해병대 출신이냐는 말도 들어보았으니 뭐. (도대체 내 어디가?)
조니 리코라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성장소설이라 할 <스타십 트루퍼스>는 주인공 리코가 하인라인이 생각하는 이상적 군인으로 성장해가는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영화를 만든 폴 버호벤도 하인라인이 말하는 군인상(像)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라 할 영화를 보면, 폴 버호벤은 하인라인의 군인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97년 당시 기술력의 한계 내지, 감독의 의도로 사용하지 않았을 ‘강화복’ 컨셉은 그렇다 쳐도 하인라인이 이상적 군대로 그렸던 지구방위군 장교에게 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 군복을 입힌 것 하나만 보아도. 폴 버호벤은 하인라인이 만든 군대 사회를 ‘군국주의’로 본 것이 틀림없다. 그것의 조롱을 위한 장치들이 영화 속에는 너무도 적나라하니까.
흥미로운 것은 하인라인이나 폴 버호벤 모두 해군에 복무한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하인라인은 장교, 버호벤은 사병 출신이라는 것이 다르겠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의 해군이라는 차이는 있겠지만, 군대 문화라는 건 대동소이한 계급 구조만큼이나 어느 나라나 비슷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내내 나 또한 내 군생활을 여러 차례 떠올렸으니.
<스타십 트루퍼스>의 시대 배경인 미래 사회는 명예롭게 군생활을 마친 이들만이 참정권을 가진다. 그렇기에 지원자만 군 입대가 가능한 모병제다. 이는, 그리스나 로마 시대의 ‘시민’을 떠올리게 한다. 공자가 주나라를 이상적 사회로 삼아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했다면, 하인라인은 고대 시민의 개념을 확장해 스타십 트루퍼스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역자인 강수백 씨는 하인라인이 비판받았던 ‘군국주의’나 ‘파시즘’보다는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 미국적 개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사상)’이나 우익적 아나키즘의 영향을 짙게 함유한 일종의 엘리트주의라 이 소설의 세계관을 보고 있더라.
소설에 한정하지 않고, 하인라인을 ‘주의’나 ‘사상’으로 묶는 것은 사실 무의미해 보인다. 혁명에 대해서도 소설(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1966)을 썼고, 히피적 삶을 예찬(낯선 땅 이방인, 1961)하기도 한 사람 아니던가. 논쟁적 주제를 특유의 장광설에 담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SF적 설정들 사이에 녹여내는 것이 하인라인의 글쓰기인데, 이런 이의 세계관을 기존의 주의나 사상으로 설명하려 하면 작품에 따라 모순이 중첩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파시스트들의 유토피아를 그린 하인라인의 고전’이라 본 사람(Kenneth Turan)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하인라인이 그린 군대 사회는 ‘해군 사관이 꿈꾸는 유토피아 군대’였다.
지원자만 받아 정예병만을 남기는 고도의 훈련 기간은 모든 장교의 꿈 아닐까? 명령받은 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고도로 훈련된 사병 집단. 어떤 장교가 그런 부대의 지휘관 자리를 마다할까.
그런데 하인라인의 장교 양성에 대한 생각이 또 흥미롭다.
스타십 트루퍼스의 장교들은 모두 사병 출신이다. 어떤 나라의 어떤 군대든 장교는 따로 양성하기 마련인데, 하인라인은 사병이나 하사관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장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자신이 해군 장교였음에도 말이지.
군대에는 본래 장교 집단과 하사관 집단 간의 묘한 갈등과 알력이 존재한다. 이는 사병 집단도 마찬가지다. 명백한 명령 체계가 존재함에도 군대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는 경험치 - 전투력과 전투경험 - 때문에, 이 갈등은 군대 안에 신입과 고참이 있는 한,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하인라인은 이 계급 간 갈등을 전 간부가 사병을 거치는 제도로 바꿔 소설 속에서 아예 없애 버렸다.
장교들이 사병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들을 능가하는 전투력을 담지하고 있으며, 하사관들과 유기적인 호흡이 상시 가능한, 그야말로 패밀리화된 막강한 군대.
이건 정말이지…… 꿈에서나 가능한, 있을 수 없는 군대다. ㅎ
우리나라 군대를 생각하면, 할리우드 군인 영화에서 매번 강조하는 ‘명예’와 ‘충성’을 징병제로 강제 조달된 사병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애국심이 흘러 넘쳐, 혹은 내 가족을 내가 지킨다는 수수한 마음에 스스로 지원하는 모병제로 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렇다고 모병제가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군에 지원하고, 그들을 사회에서는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군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모병제인 미국의 군대가 그리도 명예를 아는 집단이라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평화로웠을 것이다)
더구나 하인라인은 군 내부의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내부의 경쟁심과 진급을 둘러싼 파워 게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군대를 만들었으니.
그럼에도 이 소설 속의 군대는 사실…… 매력적이다.
중세의 기사도를 확장한 ‘명예’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목숨마저 맡길 수 있는 믿음직한 상관과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는 동료로 둘러싸여 있는 군대라니. 이런 군대라면 명예롭게 전사할 용의마저 있다. ㅎ
문득, 궁금해진다.
‘파시스트들의 유토피아’를 그린 하인라인이 혁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았을지.
다음에 볼 이 작가의 책은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 되겠구나.




덧글
shaind 2009/09/28 09:58 # 답글
영화가 원작을 망친 게 아니라, 영화가 원작을 "구원"했죠.
신독 2009/09/28 10:07 #
역시 이 작품에 대한 평은 극도로 갈리나 보군요. 군국주의 예찬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이라 봐야 한다는 말도 본 적 있습니다.
shaind 2009/09/28 10:18 #
원작은 군국주의의 "유토피아"죠. 영화는 그걸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서 "구원"했고. 군국주의 비판이라는 건 영화 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블루드림 2009/09/28 11:20 # 답글
영화는 소설의 고도의 까..라고 생각합니다.소설에 나오는 군대가 멋지긴 멋진데 현실은 시궁창이니... 특히
한국군은 말할 것도 없이 말이죠^^ 어쨌든 잘 읽고 갑니다.
신독 2009/09/28 19:57 #
감사합니다 ^^
MrNoThink 2009/09/28 13:06 # 답글
shaind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영화가 소설을 구원했지요. 딱 군 흥보 영상물 같은 촌스러움과 우스꽝스러움을 과장해서 군국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신독 2009/09/28 20:03 #
영화가 보여 준 풍자의 맛은 저도 즐겼습니다만, 스토리의 힘이나 재미로는 영화가 소설을 따르지 못하더군요. 평가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갈리겠지만, 영화가 원작을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생각하고 있습니다.소설의 테마를 '군국주의 찬양'으로 본다면, 영화가 '구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더 '높게' 보기는 힘들달까요?
무엇보다... 영화는 소설보다 재미가 없거든요. ㅎ
게드 2009/09/28 17:07 # 답글
뭐랄까, 군의 알력이란게 행사될 수 없는 점이.. 내용 중 자주 언급되는데, 항상 장교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이유가 거의 최전선에 위치하며, 전투하고 지휘하다가 죽어서.. 라는거죠..
군국주의가 이상향은 아닐지라도, 필요한 경우는 있다고 봅니다..
신독 2009/09/28 20:10 #
인류가 전쟁을 모르는 종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군대야 당연히 필요하겠죠.
진 2009/09/29 16:50 # 답글
영화는 CG가 좀 어설프게 보여서 그런지 한 B급 정도?군대 선전이 꽤 선동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어느 정도 이 작품을 엘리트주의와 책임있는 자만이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뭐 그런 메시지가 있는 걸로 봤었는데 ...
지금은 모르겠지만 예전에 미 해군(특히 해군 장교들)을 신사라고 하는 둥
해군들이 명예를 중시한다는 말을 초딩 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독 2009/09/30 09:30 #
해군에 대한 영미권 소설을 보다 재미있었던 건, 상관의 명에 복명할 때 '옛써'라고 안 한다는 거져. 꼭 '아이아이, 써'라고 합니다. 영국 해군에서 유래한 것 같은데, 기원은 아직 모르겠고요. SF 소설에서는 우주선을 해군으로 보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언뜻 생각하면 공군일 것도 같은데 말이죠. 이 소설도 그랬겠지만, 우주선이 나오는 영화에서는 역시나 '아이아이, 써'라고 대답하더군요.* 왠지 동문서답 분위기인데요? -_-a
젠터 2009/10/17 00:51 # 삭제 답글
이 소설의 안티테제라고 하는 홀드먼의 명작 '영원한 전쟁'을 강력 추천합니다.버호벤이 어릴 때 경험 때문에 나찌 싫어하는 건 알지만 홀드먼까지 읽었다면 영화 그렇게는 못 만들었지도 모르겠네요.
그러고 보니 리들리 스코트가 영화화한다고 하는군요. 버호벤과 어떻게 비교될지 흥미롭습니다.
신독 2009/10/18 12:57 #
역자 소개에도 그 책이 있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읽어야지 꼽아두었답니다. :)호오, 리들리 스코트가 영화화한다니, 기대해 봐야겠군요. 감사합니다. ^ ^
교고쿠도 2009/11/16 16:35 # 삭제 답글
지금 현재를 사는 시점에서 전체주의 적인 면에 반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대요 ^-^;;앞서 인류가 행해왔던 전체주의의 단면들이 군국주의, 파시즘 으로 변태되어 나쁜방향으로만 기억되서 그런것 같습니다.,...
내가 사는 현재가 물론 중요하겠지만 멀리 내다본다면 인류는 언젠가는 큰 틀은 전체주의 적인 시스템으로 가지 않을까요?
국가간의 경계가 없어지고 'human race' 로써 나아가려면 말이죠..
하인라인의 수많은 저서를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읽어본 제 느낌은요 이 사람의 성향의 밑바탕은
말해보자면 '자유의지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선택하고 나아가지만, 그 자유 의지로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을 그 자신이 짊어지는 것. 그게 바로 로버트 하인라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정치적 사상, 바로 “자유주의” 라고 생각되네요...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한 작품만 읽어보고 이 책은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선전책이다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좀
안타깝습니다.
신독 2009/11/16 23:26 #
동감합니다.그렇다고 군국주의 자체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이 책으로 인해 하인라인이 군국주의자로 분류될 수는 없겠지요. 위에 말씀하신 분들도 이 텍스트에 한해서만 말씀하신 것으로 보고요.
책읽은이 2009/12/02 01:25 # 삭제 답글
저는 오히려 이 책에서 시민권에 대해 말할때 충격을 받았는데. 저만 그렇게 느꼈나요?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것을 군대에서 배웠기에 시민권행사(투표)할 때 전체를 위해 투표한다.
음. 저는 그 부분에서 뭔가 머리를 한대 맞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민권을 행사하는 시민이 매우 적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십트루퍼스의 배경이 되는 사회는 나름 유토피아 적이니깐요.
신독 2009/12/02 12:47 #
고대의 시민사회를 그대로 미래화시켰달까요?이 글에 덧글을 다신 분들은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로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