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치악산 by 신독

9일(토)에 결혼식이 있어 원주에 가게 되었다.
원주 가는 김에 치악산에 인사드리자 싶어, 영석형을 꼬드겨 성공했고... 형수님께는 미운 털이 조금 박힌 듯. ㅎ
가는 김에 종주를 할까 했는데, 8시간 종주를 하기에는 아직 체력이 부족한 듯.
발목도 8시간 산행이 한계임이 분명해졌고. 쩝.
향로봉을 눈앞에 두고 곧은치로 내려왔다. 치악산 주능선의 딱 반을 탄 셈.

1. 산행기록

ㅇ 일자 : 2009년 5월 10일, 《혈리표》의 작가 이영석 형과 2인 산행.
ㅇ 날씨 : 맑았으나 전망은 그다지 좋지 않았음.
ㅇ 총시간 : 8시간 (06:00 - 14:00)
ㅇ 경유지 : 구룡사 - 세렴폭포 - 사다리병창 - 비로봉 - 곧은치 - 행구동


2. 치악산 개념도


3. 산행 메모

한자로는 稚岳山인데, 뀡 치稚다. 치악산의 주봉 중 하나인 남대봉 밑의 상원사에 꿩의 보은 설화가 있는데, 이로 인해 치악산이라 불린단다.
산꾼들 사이에서는... '치를 떨고 간다'고 치악산이라고도 하는데... 1000미터가 넘는 봉우리들이 십여 킬로미터에 이르도록 능선을 이루고 있는 탓이다. 최고봉인 비로봉(1,288m)과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의 높이를 봐도 알 수 있듯 만만한 산이 아닌 것이다.
이 주능선길을 하루에 종주 주파할까 했는데, 몇 가지 실수를 했다. ㅎ

전날, 결혼식장에 갔던 우리는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었다.
게다가 위생 봉지에 음식을 싸 '저녁거리'를 장만하는 알뜰함까지 발휘했다.
원주시 태장 2동에 있는 결혼식장에서 구룡사까지 원주 시내버스(41-1)로 이동한 후, 민박을 잡고(3만원) 뒹굴대며 이바구 나누다 뷔페에서 싸 온 과다 칼로리의 음식들로 또 배를 채우자... 소화가 되지 않았다. 우리답지 않게 너무 많이 먹었던 것. ㅎ

게다가... 둘 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다. 잠자리에는 꽤 일찍 들었음에도.
나는 피곤하면 코를 곤다. 나이 먹으며 점점 소리가 커지고 있는 모양이다. (나야 내 코 고는 소리를 못 들어 봤으니 얼마나 심한지 모르고 있지만. -_-a)
영석형은 피곤하면 이를 간다. -..-
그래서 내가 잠이 들면 코를 골아 영석형이 깨고... 영석형이 잠이 들면 이를 갈아 내가 깼다. -..-
결국 둘 다 깊은 잠은 못 자고 말았다. ㅎ
4시에 기상해서 준비해 간 버너와 코펠로 라면을 3개(영석형이 3개 싸왔더라. 그래서 다 먹었다)나 먹었더니... 6시에 입산했을 무렵에는 전날 먹은 성찬과 아침으로 먹은 라면으로 인해 너무 배가 불렀다. 쩝.

기차로 원주까지 갔기 때문에 작업을 위해 넷북을 가지고 간 것도 실수.
1킬로그램밖에 안 나가기는 하지만, 가방 무게를 늘이는데 이 녀석이 톡톡히 기여했다.
다음 장기산행 갈 때는 넷북 놓고 가야겠다. -..-

결과적으로... 쉬엄쉬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 찍고 사다리병창의 병맛 나는 계단길을 다 올라 비로봉에 도착하니 3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아흐.

비로봉의 정상에는 위와 같은 돌탑이 세 개 있다.
누군가 돌을 날라 세 개 모두 홀로 쌓았다더라. 그분은 무엇을 기원했을까나.

비로봉에서 바라본 부곡리 방향이다.
아직 연녹색이 남은 나뭇잎들이 융단처럼 보인다. 뛰어내리면 사뿐히 받아줄 것처럼.
이런 능선을 내려다보노라면 패러글라이딩의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기분 죽여주겠지.
비로봉에서 전날 가져 온 떡과 방울토마토, 사이다로 요기를 하고 충분히 쉰 후, 10시 반 쯤에 향로봉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쉬엄쉬엄 가며 능선길의 파릇파릇한 새순들을 즐기다 보니 비로봉이 점점 멀어진다.
세 개의 돌탑은 멀리서까지 보이더라.


향로봉으로 향하는 능선길에는 산죽이 특히 많다.
햇빛에 반짝이는 댓잎의 진초록 빛깔은 겨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치악산이야 본래 가을의 단풍이 절경이라 '적악산'으로도 불렸지만, 겨울의 풍광이 특히 빼어나다. 높이가 있는 산이기 때문에 설경과 상고대가 유명해 예전부터 산꾼들에게 사랑받은 산이다.

쉬엄쉬엄 가다 조금씩 속도를 높이기도 했으나, 위에 든 몇 가지 요인과... 한여름 같은 뙤약볕 때문에 갈증 또한 심해 물을 많이도 마셨고, 결국 왼쪽 발목에 조금씩 무리가 오더라.
복합골절로 망가진 발목은 오른쪽이지만, 그 때문에 10여 년 동안 내 몸무게를 견디며 무리를 한 건 왼쪽 발목이다.
다친 후, 발목의 운동 방향 또한 약간씩 달라져... 걸을 때 왼쪽 발목은 심한 내전(발을 디딜 때 발목이 안쪽으로 돈다. 그래서 발목 안쪽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거의 회전하지 않는 오른쪽 발목은 약한 외전을 한다.

지금까지 몇 차례의 종주산행을 해 본 결과로는 예닐곱시간을 걸으면 왼쪽 발목의 안쪽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다.
8시간 정도가, 지금 내 발목으로는 다음날 후유증이 안 생기는 최대한인 듯.
이 정도 발목으로는 2박 3일씩 산을 타는 것은 무리다.
지리산 종주 때, 발목을 꽉 잡아주는 새 등산화가 필요할 것 같다. 보행속도도 더 높여야 할 듯하고.
지금 신는 레드 페이스 통가죽 등산화는 발목을 잡아주는 것이 좀 약하니 캠프라인 중등산화를 노려야 할 듯. +_+

향로봉을 눈앞에 둔 곧은치에 도착했을 때 오후 1시더라.
이미 입산한 지 7시간이 경과한 것.
날이 더워 물도 다 떨어져 가... 아쉽긴 했지만 종주를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곧은치에서 관음사가 있는 행구동 방향으로 하산했다.
나는 곧은치계곡이 구룡사계곡보다 마음에 들더라.
인적이 많지 않아 좋았고, 폭우가 내리면 입산이 통제될 만큼 규모도 큰 계곡이라 물이 많았다.
하산 중에 양말을 벗고 탁족을 했는데... 역시 큰 산의 물은 냉기도 다르더라. 어찌나 차가운지 1분도 버티지 못하였다.

행구동에서 8번 버스를 타고 원주 시내에서 조금 헤매다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터미널 앞에서 시원한 물냉면으로 열기를 식힌 후, 둘 다 잠이 모자라다고 투덜대며 작별을 고했다.
영석형은 춘천으로, 나는 서울로.
서울로 돌아오는 2시간 30분 내내 잤는데, 영석형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버스에서도 코를 골았나 몰라. ㅎ)

오랜만에 나보다 체력 좋은 이와 산을 타 부담없이 즐기다 왔다.
마음을 씻고 결의를 높인 채.
이제 한동안은 바쁘게 작업을 해야 한다.
강남 7산이나 쉬엄쉬엄 돌아다니자.

* 원주에서 치악산 곳곳으로 다닐 때의 대중교통편은 원주시청 홈페이지의 교통정보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덧글

  • 아자자 2009/05/11 09:10 # 삭제

    소심이가 원주 근처에 산다고 했었는데..-_-;
    요즘 뭐 하나 연락이 안되더라..ㅋ
  • 신독 2009/05/11 09:51 #

    원주 살기는 하시지만, 요즘에는 어디 산에 들어가서 나무 캐실 때일 걸요? 그럴 땐, 외부 연락 전혀 안 되잖아요.
    산에서는 책과 동영상 재생기만 벗삼는다고 하셨죠. ㅎㅎ
  • 물망아 2009/05/14 02:36 # 삭제

    치악산 참 좋아하는데...
    산을 좋아는 하지만 오르지는 않습니다.
    오르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에 깃들 듯 계속 머물다 오지요.
    저는 치악은 봄이 참 좋던데...
    어느 계곡(이름은 기억지 못합니다.)의 봄눈 녹는 소리가, 그 녹은 물소리가 참 좋아서...
    오래 못 간 지금에도 물소리는, 봄눈 녹은 물소리는 치악이 특별하다 말하곤 합니다.
  • 신독 2009/05/14 09:25 #

    자연이야 좋아하는 사람 마음대로 좋아하면 그만이지요.
    오랜만입니다. :)

    봄눈 녹는 소리라... 예쁜 추억을 갖고 계시네요.
    말씀하신 그곳은 아마도 구룡사계곡일 겁니다. 치악산에서 제일 큰 계곡이고, 제일 많이 찾는 계곡이죠. 지금이야 대대적으로 길을 정비해 계곡물에 발 담그는 것도 그리 쉽지 않지만, 몇 년 전에는 민박 바로 근처에 계곡물이 지천으로 흐르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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