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Books of Blood》클라이브 바커| 정탄 역| 끌림| 2008.07.16 (1984) | 464p클라이브 바커(1952- )의 이 책은 1984년에 단편집으로 출판되었다. 단편집의 한계상 처음부터 주목을 받지는 않았으나, 공포소설로 명성을 날린 스티븐 킹이 “그는 호러의 미래다”라 추천사를 날림으로써 일약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공포 영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헬레이저》와 《캔디맨》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가 창조한 세계의 원형은 전 3권인 이 단편집 《피의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2000년에 씨앤씨미디어에서 두 권이 번역 출판되었는데, 지금은 헌책방에서도 찾기 힘들다.
끌림에서 나온 이 번역본은 2000년판의 1권에 실린 단편 전부와 2권에 실렸던 단편들 중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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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공포 장르 체험은 흑백텔레비전 속의 구미호였다.
1977년에 시작된 <전설의 고향>은 한혜숙의 구미호 전설을 탄생시켰고, 다음해에는 보다 젊고 보다 여우를 닮은 여배우가 전설의 대열에 합류했다. 바로 장미희다.
그녀가 천년호로 열연한 그 구미호를 온 가족과 함께 보며…… 미지의 존재가 주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톡톡히 경험했다.
첫 체험을 뛰어난 배우 덕분에 정말 제대로 한 셈이다.
그러다 중학교 때의 재미있는 경험 덕분에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는 ‘허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2 때, 학교에서 강화도로 캠핑을 갔다. 텐트를 치고 취침 점호를 할 무렵, 반 아이들 몇몇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를 찾았다. 귀신이 나왔단다. 선생님을 찾지 못하자, 반장인 나를 찾았던 것.
반신반의하며 아이들을 따라갔는데……, 텐트를 친 공터 외곽을 보고 기함할 뻔했다. 허공에 희끄무레한 게 둥둥 떠 있는 거라. 꼭 소복 입은 귀신이 허공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절로 침이 말랐다.
애들은 ‘네가 가 봐’라며 등을 떠미는데, 나는 센 척하느라 무서운 걸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서 꽤…… 센 놈이었다. -_-a)
하필 랜턴도 안 가져온 터라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껌껌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그 희끄무레한 귀신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알았다. 그것은 관목의 가지에 걸린 때 묻은 광목천이었다. 그렇게 무섭고 등골을 오싹하게 했던 것이 더러운 천 쪼가리임을 알게 되자, 왠지 무지하게 허무하더라.
긴장이 풀리며 주저앉을 것 같았지만 또 센 척하느라 광목천을 빙빙 돌리며 아이들에게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공포 영화나 소설, 만화 등을 꽤 즐기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무서운 맛은 영영 잃고 말았다.
질 줄 뻔히 아는 싸움을 도저히 피할 수 없어 맞닥뜨려야 하거나, 이후의 과정을 알고 있는 고통을 기다릴 때가 더 무섭더라.
그래서 공포물은 ‘현실’이 아닌 이상, 더는 나를 무섭게 하지 못했다. 물론, 놀라게 하거나 역하게는 만들었지만.
무섭지 않으면서도 공포물을 계속 즐긴 이유는 하나였다.
공포물의 이면에는 <금기의 파괴>라는 오묘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극렬하게.
주변에 책을 좋아하면서도 공포물을 안 보는 대개의 분들은 이유가 둘 중 하나더라. 무서워하거나 싫어한다.
싫어하는 것은 무서워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공포물이 그 소재를 다루는 방식, 엽기적 살인이나 징그러운 존재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도덕적 바운더리가 단단한 사람일수록 공포물은 혐오의 대상이기 쉽다.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금기를 깨는 것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세상에 적당히 맞춰 사는 것이 편함을 알기에 상식적인 삶을 살지만, 내 안에는 금기의 파괴를 즐기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 공포물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분들이더라.
나 같은 사람들에게 클라이브 바커는 정말 귀한 존재다.
이 책은 특히나 그렇다.
바커를 띄워 준 스티븐 킹이나 일가를 이루었다 평가해야 할 딘 쿤츠는 모두 공포소설로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미지의 존재를 다루는 솜씨에 있어서만은 클라이브 바커에 한참 못 미친다. 저 윗세대의 에드거 앨런 포우와 비견된달까.
세상을 바라보는 바커의 눈은 무척 독특하다.
그야말로 ‘작가의 눈’을 가진 사람이다.
묘사를 이루는 그의 문장력은 정평이 나 있는데, 인물과 상황 포착에 능할 뿐 아니라 빼어나게 독특하다. 이는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눈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솜씨다.
그의 단편들은 언제나 고요한 일상에서 출발한다.
디테일하게 그려진 일상과 그 안에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생생해질 무렵, 독자의 눈을 모으는 도발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 스릴러물의 냄새를 풍기다 조금씩 조금씩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환상을 주입한다.
그가 제공한 스릴러가 판타지임을 깨달을 때쯤엔, 이미 독자는 그가 만든 공포의 세계에 깊이 발을 들여놓은 후다. 그 세계에서는 판타지조차 이미 현실로 존재한다.
바커가 이 책으로 <영국 판타지 문학상>과 <세계 판타지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환상을 다루는 데 정말 능란하다.
판타지를 쓰는 사람이라면, 공포물을 싫어하더라도 꼭 한 번 보라고 권하고 싶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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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모두 아홉 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1. 피의 책 The Books of Blood
2.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 The Midnight Meat Train
3. 야터링과 잭 The Yattering and Jack
4. 피그 블러드 블루스 Pig Blood Blues
5. 섹스, 죽음 그리고 별빛 Sex, Death and Starshine
6. 언덕에, 두 도시 In the Hills, the Cities
7. 드레드 Dread
8. 로헤드 렉스 Rawhead Rex
9. 스케이프고트 Scape-goats
하나하나 보석 같은 단편들이라 꼭꼭 씹어 읽는 내내 무척이나 행복했다.
번역의 강을 건너고도 그의 문장이 주는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을 바라보는 깊은 눈은 내면에 숨겨진 공포를 헤집어 탁월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
끌림에서 이 책의 다음 권을 꼭 냈으면 싶다.
역자의 바람대로 외전 형식으로 모든 단편을 번역하기를 소망한다.




덧글
둔저 2009/04/08 17:41 # 답글
저의 공포의 시작은 유치원때 본 '영구와 땡칠이' 극장판이었던 것 같습니다.....왜냐하면 1탄에서 귀신들이 나왔거든요 [먼산]
진짜 공포의 시작은 초딩시절 읽은 어린이용 공포책 같습니다. 그왜 귀신이야기 같은거 모아놓은 책이요.
하지만 진짜 최강은 초딩때 본 드라마 M이 아닐까 싶습니다.
흐드드드드드...
.....뭔가 외국유명 호러소설 포스팅에 M 댓글을 달려니 기분이 오묘하네요.
흠좀무
신독 2009/04/08 18:12 #
M은 당시 시청률이 50프로에 육박했던가 그럴 겁니다.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정말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주인공도 무려 심은하였고, 소재 또한 당시로서는 꽤 참신했거든요.
다시 리메이크한다던데... 심은하역을 누가 맡을지 궁금하네요. 청순하면서도 악마적 이미지를 풍길 수 있는 배우여야 할 텐데 누가 맡더라도 부담될 겁니다. 그때는 아직 전설이 되기 전이었지만, 그녀는 무려 심은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