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성과 문장, 그리고 예술 by 신독

<장르성>에 대해 댓글을 쓰다, 문득 떠올라 이런 말을 했다.
"어째서 예술이 아니라 하면서도 문장을 강조할 수 있는지, 문장을 강조하면서도 '지금 예술 하냐?'고 비판할 수 있는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에 대해 글로 정리해 놓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다.

댓글로 단 저 말은 비평단에서 활동할 때 시작된 고민의 결론쯤 되는 말인데, 그 궤적은 아래의 두 글에 담겨 있다.



<장르성>, 장르소설의 성격 내지 성향으로 풀이될 이것이 문피아의 토론마당에서 진행되었던 이 토론의 핵심 논제였다.
이 중, 발제처럼 처음 올렸던 1번 글은 비평단에서 활동하던 2004년에 초안을 잡았다.
2005년 당시... 은거 고수들이 나타나시며 활발한 토론이 기대되었는데, 하필 그때쯤 '대여점 논란-이북과 유료 연재를 둘러싸고 촉발된, 하지만 새로울 것은 전혀 없었던'이 불거져 토론마당의 흐름이 완전히 이쪽으로 넘어갔다. 거기에 개인적인 문제까지 터져 더는 이 토론을 진행하지 못했다. 핵심이 되어야 할 <장르성>에 대해서는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고서.

처음 무협을 쓰기 시작한 2003년 무렵에는 <상업성>에 대해 정말 무지했다. (또는, <시장성>에. <상업성>은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시장성>은 해당 시기의 시장이 요구하는 단기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쓰고 싶어 썼고 엄청 헤매기는 했지만 당시의 내가 쓸 수 있었던 최대한을 쓴 《위령촉루》는 시장에서 참패했다. 함께 데뷔했던 고무림 신춘무협 당선자 5인의 글들 중, 아마도 가장 안 팔렸을 것이다.
그전까지 소설 쓰기에 대해 공부를 해 본 적도 없었고, 습작 한 번 안 해 본 터에... 덜컥 상은 받아 놓고서 '죽'을 쓴 셈.

참말 고민스럽더라.
이 바닥은 기본이 '판매량'이고, 작가 의식이나 작품성은 기본이 어느 정도 충족된 이후에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팔지도 못하며 쓰고 싶은 글만 쓴다면, 그건 예술가지 장르 작가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상업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공부도 하고, 책들도 분석하다... 결국 '장르성'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상업성'과 '장르성'은 때로 혼용되기도 한다.
이는, 내가 처음 객관적 비평의 항목으로 정리했던 개념들을 봐도 그대로 드러난다.

◎장르성 (몰입도, 독창성)
◎작품성 (문학성, 완성도)
◎상업성 (가독성, 감성도)

이 항목을 정리해 토론마당에 올린 글에는 여러 댓글들이 달렸는데, 그중 한 분의 댓글에 무릎을 쳤다.
죽지랑 님의 항목들이 그것이다.

◎작품성 [문장력(Writing), 구성력(Story Telling)]
◎독창성 [창조성(Creativity), 기발함(Uniqueness)]
◎상업성 [몰입도(Immersion), 호소력(Appealing)] *취향, 연령, 성별 구분
◎문학성 [철학(philosophy), 감명(Impression)]
◎완성도 [문체(Style), 배경지식(Schema)]

안타깝게도, 이후 토론을 진행하지 못하여 이 항목들을 더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내 경우, '작품성'과 '상업성' 둘만 항목으로 꼽았다가 후에 '장르성'을 추가한 후, 세부 항목이 필요한 듯해(변수가 너무 적으면 평가의 변별력이 떨어진다) 여섯 가지의 항목을 선별했다.
죽지랑 님은 이에 '장르성'이라는 항목을 빼고, '독창성', '문학성', '완성도'를 추가하신 후에 열 가지 세부 평가 항목을 선별하셨다.
내 것의 세부 항목을 주 항목으로 끌어올리고, 정리되지 않은 나만의 용어를 정확한 용어로 표현하신 후, 몇 가지 세부항목을 더 추가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항목도 완전히 정리된 것으로는 볼 수 없어 토론하여 조율할 것이 많았다.
특히 주항목과 세부 항목의 관계가 그러했다. 예를 들어 '구성력' 같은 경우, 작품성뿐 아니라 완성도에도 포함할 수 있고, 때로는 독창성에도 포함시킬 수 있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세부 항목들이 모두 수평적인 평가 기준으로 적합하냐는 문제도 있다. 왜냐하면, '문체(Style)'의 경우, '문장력'과 '구성력', '기발함', '호소력', '철학', '감명' 등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열 가지 세부 항목 자체는 소설을 평가하는 객관적 잣대로써 전혀 손색이 없다.

문장력(Writing), 구성력(Story Telling), 창조성(Creativity),
기발함(Uniqueness), 몰입도(Immersion), 호소력(Appealing),
철학(philosophy), 감명(Impression), 문체(Style), 배경지식(Schema)

이 중, <상업성>을 평가하는 특정 항목으로 무엇이 있을까?
죽지랑 님은 '몰입도'와 '호소력'을 꼽으셨지만, '창조성'과 '기발함' 또한 관계가 크다. 이 항목에는 누락되어 있지만, 내가 꼽았던 '가독성-쉽게 읽힐 것' 또한 포함시켜야 한다.
<작품성>은 '문장력'과 '구성력'만 포함하셨지만, '창조성'과 '기발함' 또한 관련이 있다. '철학'과 '감명', '문체' 또한 이에 포함될 수 있다.
마지막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인 <장르성>이다.
<장르성>은 장르를 장르답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은 바로 '배경지식'이다. 무협을 무협답게, 판타지를 판타지답게, 로맨스를 로맨스답게 쓰기 위해서는 그 장르의 팬들이 즐기고 그 장르를 특정화된 장르로 만든 특유의 그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을 모두 묶어 '배경지식'이라 불러 보자.
또한, '창조성'과 '기발함' 또한 장르 독자들이 크게 반기는 요소다. 공식화된 틀거리를 벗어나는 기발함과 창조적 해석이야말로 수많은 장르 소설을 읽은 닳고 닳은 중고독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몰입도'와 '호소력' 또한 마찬가지다.
정신없이 글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장르 문학만의 강점이니만큼 '몰입도'는 빠질 수 없는 변수다.
말초적 자극을 추구한다 하여 비판도 받지만, 감성적 '호소력' 또한 장르에서 배제할 수 없는 요소다.
이때,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세부 항목이 바로 '문체(Style)'이다.
위에 언급한 대로 이 항목은 '문장력', '구성력', '기발함', '호소력', '철학', '감명' 등과 모두 연관이 있다.
해서, '문체'를 따로 분리해 놓고 다시 정리해 보자.
내가 처음 꼽았던 세 항목을 죽지랑 님의 세부 항목으로 해석한 것이다.

상업성 - 몰입도, 호소력, 창조성, 기발함, 가독성
작품성 - 문장력, 구성력, 창조성, 기발함, 철학, 감명
장르성 - 배경지식, 창조성, 기발함, 몰입도, 호소력

* 문체

문체(Style)란, 아주 좁게 정의하면 작가가 언어를 선택하고 질서화하여 배열하는 그 작가만의 개성적인 방법 혹은 문장의 개성적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소설에 쓰인 언어를 '내용'과 '형식'으로 분류한다면, '내용'은 정보 혹은 의미 전달로 볼 수 있고, '형식'은 독자의 감정적 자극을 좌우하는 미적 자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형식'이 바로 문체다.
작가를 작가답게 특정짓는 것, 이 작품은 그의 글이구나고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문체다. 그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가정신의 응집이랄까?
위에 밑줄 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문체'는 상업성과 작품성 장르성에 모두 깊은 관련이 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어째서 예술이 아니라 하면서도 문장을 강조할 수 있는지, 문장을 강조하면서도 '지금 예술 하냐?'고 비판할 수 있는지..."

예술과 작품성을 나란히 등치시킬 수는 없지만,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은 모두 동의할 것이다.

작품성을 추구하는 작가라면, 문장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상업성을 추구하는 작가도 더 높은 경지를 원한다면 문장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문장에 대한 고민 없이는 '호소력'과 '기발함'을 이야기의 몰입도만으로 승부해야 하므로.

본래 '장르성'과 '상업성'은 혼용되는 말이다. 위의 항목에서도 무려 네 가지의 세부 항목을 공유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장르문학 자체가 '상업성'을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보다 많이 팔고 싶다면, 보다 장르문학다운 장르소설을 쓰고 싶다면, 문장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장르는 예술이 아니라 하면서도 문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장르소설가라 생각하는 작가라면 문장을 강조하면서도 '지금 예술하냐?'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이다.


덧글

  • 다라나 2009/04/07 22:01 #

    글의 요지하고는 상관없지만 세월이 지나고 거리를 두고 보니까 저 항목들 모두 작가 입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평가는 독자가 해야 하는데 말야. ㅡ.ㅡ;;
  • 신독 2009/04/07 22:12 #

    ㅎㅎ
    그래서 형이 포스팅한 상중하 평가 방법에 즉각 동의한 거지.
    이 항목들은 너무 복잡할 뿐 아니라, 직관적이지가 않거든. 비평란 공지에 죽지랑 님 항목을 걸어놨지만,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잖아.

    하지만, 작가 입장인 것도 아니야. 저런 걸 의식하며 글을 쓰는 사람은 없어.
    굳이 따지자면 <비평가 입장>이라 보는 게 맞겠지.
    그러나... 제대로 된 비평가라면, 굳이 이런 항목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멋들어진 글을 쓸 수 있어.
    정해진 항목이란 건 오히려 상상력을 제약하거든.
    결국, 독자를 위한 항목도 아니고 비평가를 위한 항목도 아니야. 작가를 위한 항목도 아니지.

    그래도 개인적인 의의는 있어.
    이걸 고민하며 내 나름의 장르관을 세운 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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