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혐오자 Cop Hater》에드 맥베인| 김재윤 역| 황금가지| 2004.10.15 (1956) | 300p 추리소설의 반발로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이 탄생한 후, 필름 누와르의 모태가 된 이 장르는 여러 작가들을 탄생시켰다.
그중의 한 명인 에드 맥베인(1926-2005)은 탐정들이 주인공이었던 이 장르에 여태까지 들러리로만 등장하던 ‘경찰’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작가이다. 히치콕의 걸작, 《새》의 시나리오도 그의 작품.
1956년에 발표된 이 책은 <87번 관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이 번역본이 출판된 2004년까지 54번째 작품을 냈다고 한다. 에드 맥베인은 2005년에 후두암으로 사망했으니,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글쟁이의 로망을 당당히 실천한 작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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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에 미스터리 장르를 소개했다 할 수 있는 <동서추리문고>에서 《경관 혐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바 있다.
처음에는 귀에 익숙한 제목 때문에 버릇처럼 다시 재간된 <동서미스터리북스> 판본을 선택했다가 얼른 손에서 놓았다.
70년대에 번역된 이 시리즈는 일본판의 중역본인 데다…… 번역 상태가 심하게 안습이다. 재간을 하며 원고를 다시 손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리즈로 소개된 작가와 작품의 존재만 체크하는 게 제일 낫다. 소위…… 그 DMB 시리즈로 나온 《말타의 매》를 보고 너무 후회했던 기억이 나 얼른 덮고, 제일 최근에 번역된 황금가지의 판본으로 읽었다.
이 판본은 1984년의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처음 작품을 낸 후 30여 년이 흐른 뒤의 ‘작가의 말’이 번역되어 있다.
그때까지 탐정이 주인공으로 주도하던 이 장르에 경찰을 주인공으로 삼아 패러다임의 전환을 성공시킨 작가답게(에드 맥베인 이전에도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펄프 픽션은 있었다 한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패러다임이 변했다 느낄 만큼 강렬한 재미를 선사한 것은 이 시리즈가 최초인 모양이다), 사전 조사를 꽤 철저하게 했더라. 경찰의 삶과 수사 방식에 대해 직접 취재를 하며 경찰서까지 여러 번 방문한 모양이다. 전화까지 매일 걸었다 하니, 뭐.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시리즈의 무대가 되는 도시는 맥베인이 조사한 ‘뉴욕’이 아니라 <가상의 도시>다.
에드 맥베인은 상당히 겸손하게 이 선택에 대해 ‘급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참으로 장르적이면서도 영리한 전략이었다.
이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이른바 당시 경찰의 ‘과학적 수사 기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DNA 분석 기법이 발견되기 전이라, 혈액형이나 혈흔, 지문, 머리카락 굵기를 이용한 나이 추정 등 당대의 최신 수사기법이 모두 나온다.
도시에 대한 소개도 자세하기 짝이 없어, 열성을 가진 독자라면 지도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구상 하에 쓰인 글이다.
형사들의 수사나 취조 방식도 사실적으로 다루었고, 검시나 탄도 분석 보고서의 양식까지 사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형사들의 일상과 그들의 삶에 대한 시선도 대단히 디테일하다. 그야말로 ‘사실적’이다.
그런데 왜 굳이 <가상의 도시>였을까?
범죄 미스터리물인 《여름은 간다》의 시놉시스를 다듬으며, 내가 제일 난감함을 느꼈던 것은 이야기를 끌고 나갈 한 축이 되어야 할 인물인 ‘형사’였다.
이 인물에 현실감을 부여하지 못하면, 이 글은 실패한다.
하지만, 이 인물에 진정 대한민국의 형사로서 리얼리티를 부여하면…… 글의 장르적 재미가 확 떨어진다. 취재를 해 본 후, 이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우리 영화 《와일드카드》나 《강력3반》을 보신 분이라면 알 것이다. 이 영화들은 대한민국 형사들의 삶을 직접 취재한 후 탄생한 그야말로 ‘리얼’한 영화다.
하지만…… 관객을 휘어잡고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이른바 ‘장르적 재미’는 확실히 떨어진다. -_-a
이유는 하나다.
대한민국 경찰, 형사들의 삶은 드라마 CSI의 과학수사관들처럼 멋지지도 않고, 그들처럼 범죄자들에 대해 확고한 우위를 갖고 있지도 않다. 과학수사와 일선 현장의 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고, 여전히 우리나라의 형사는 발바닥으로 뛰어야 하는 직업이다. 그것도 여러 제약 속에서.
멋지게 그려 주고 싶지만…… 멋진 구석이 없다. 너무 힘들게 일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리얼하면 리얼할수록 극의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방비도시》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FBI처럼 관할의 한계를 넘나들 수 있는 ‘광역수사대’를 등장시켰지만, 영화 속 형사들의 삶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심했다. 그들은 전혀 형사 같지 않았다.
에드 맥베인의 전략은 그래서 영리하다.
그는 실제 존재하는 도시 ‘뉴욕’ 대신, 이름도 밝히지 않은 ‘가공의 도시’를 창출해 자신이 조사한 사실을 토대로 자신이 그리고픈 경찰력의 움직임을 가공의 ‘환상’ 안에서 너무도 ‘현실’적으로 창출했다.
환상 속에서 움직임으로써 글쓰기의 자유도를 획득했고, 그 안에서도 현실감을 줌으로써 환상을 현실처럼 만들어 버렸다.
이런 것이 바로 ‘장르적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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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 그중에서도 형사들만 연이어 살해되는 뜨거운 여름.
형사 카렐라와 부시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끈다.
이 두 사람은 일상생활까지 자세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글을 이끄는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세 번째로 살인자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이는 여태까지 수사의 한 축을 담당하던 부시다.
이 사건은 이 글에서 매우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핵심 사건이자, 독자의 감정선을 최대한 건드릴 수 있는 막강한 설정이었다.
생각해 보라. 이제까지 주인공 중 하나인 줄 알았던, 독자가 호감을 느끼고 있던 형사가 살해당한 것이다.
살인자에 대한 독자의 분노가 폭발하며, 어서 그놈의 정체와 의도를 밝혀 내기를 카렐라에게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장면 이후를 다룬 맥베인의 솜씨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글의 반전과 전체적인 논리를 위해 그렇게 썼다는 것은 알겠지만, 독자의 기대에 정면으로 반한다.
동료이자 파트너이고(형사에게 파트너란 마누라 이상이다. 총칼 앞에서 등을 맡기는 존재인 것이다), 친구이기도 한 부시의 죽음에 대한 카렐라의 내면이 너무나 단조롭다. 제대로 묘사가 되지도 않았고. 부시의 미망인을 만나며 성적인 자극마저 받는다.
이것이 50년대 하드보일드 출판사에서 신인급 작가들에게 요구한 ‘상업성’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창작 1세대 무협 작가들은 출판사가 요구하는 상업적 컨셉의 선이 따로 있었다. 그 유명한 절벽신과 춘약 남발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어쨌든, 바로 이 점 때문에 독자의 감정을 크게 뒤흔들어 명작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도 오를 수 있던 이 작품은 아쉽게도 하드보일드 장르의 명작 정도로 남고 말았다.
팜므 파탈의 등장은 이 책에도 여전한데, 4, 50년대 미국의 마초들이 좋아한 여성상은 역시나 ‘섹시한 나쁜 여자’였던 모양이다. ㅎ
독서 후의 만족도가 지극히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여름은 간다》의 구상을 보완하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고, 그 점에서는 정말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역시…… 지금 내가 고민하는 것은, 앞서 존재한 작가들이 이미 고민했던 것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경험했다.
본래,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파고 또 파 골격만 앙상히 남기면 이야기의 구조란, 거기서 거기일 뿐이니.
어느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완전히 새롭게 느껴지도록 그 이야기를 하느냐가 있을 뿐이다.




덧글
안신 2009/04/03 15:29 # 답글
이 책은 여러번 빌렸다가 끝내 보지 못하고 반납한 책인데, 다시 빌려서 봐야겠네요.(다른 책을 보다가 시간이 없으면 밀리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랬지요)
근데, 이런 저런 취재도 했다니....부럽습니다.
저도 여러번 취재같은 걸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성격이 이러다보니 모르는곳에 가서 무작정 물어보고 할 주제가 되지 않아 못해봤는데, 언제 한번 노하우 전수를 부탁드립니다. -_-;;;
(갑자기 웬 존댓말;;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분위기상;;; ==__==;;)
신독 2009/04/03 16:26 #
==_==a그래도 나는 일관성 있게 편하게 말할 거야. ㅎㅎ
(아는 분이 있어. 워낙 바쁜 직업인 데다... 이러저러한 사람이 청탁성 부탁을 많이 하는 자리라, 자주 묻기는 나도 조심스럽지만 말이지. 근데, 이야기 만드는 사람들이 취재원을 갖게 되는 노하우는 사실 별 게 아니더라. [이바구로 들었엄] 모르는 사람이라도... 무데뽀 정신과 진심으로 무장한 채 돌격하는 거야. -_-a 헌팅이나 사실 비슷하지.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면에서. 이 글 때문에 정신병원을 취재해야 하는데... 일단, 진료를 받아야 할 테니... 아주 난감한 상태라공. 치료할 필요있다 그럼 어째? -_-;;)
안신 2009/04/04 11:27 #
쿨럭쿨럭;;;정신병원 취재라니, 멋지군요!!! >_<
혹시 병동에 갈 일 생기심 초대장 보내주셈;;;; --__--;;;
ps.
그나저나 헌팅정신이 필요하다니, 취재랑 저랑은 영영 인연없겠군요. ㅇ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