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아니, 이렇게 다 밝히면 뭘 어쩌라고? - 《칼에 지다》, 아사다 지로 by 신독

《칼에 지다 (상, 하) Mibu Gishi-Den》, 아사다 지로| 양윤옥 역| 북하우스| 2004.12.09 (2000) | 462p, 455p

내 친조부님은 전라남도 벌교에서 나고 자라신 분이다. 워낙 일찍 세상을 뜨셨기에 뵌 적은 없으나, 할머님 살아생전 드시던 밥상에는 언제나 양념을 살짝 입힌 꼬막이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조부께서 일가를 일구신 곳은 벌교가 아니라 순천. 백조부님 일가 또한 순천에 모여 사셨다 들었으니, 친가 쪽의 내 윗세대 남자들은 죄다 순천 사내들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사춘기가 올 무렵 부친과도 떨어져 자란 나에게 남도 사내들의 이미지를 심어 준 이들은 내 6촌 종형님들이었다. (촌수로는 형님들이나 연세는 내 부친과 비슷하시다.)

술에 약하셔 대대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를 물려주지 못하신 조부님과는 달리, 백조부님은 수염도 장하고 말술을 즐긴 호걸이셨다 한다. 그래서인지 그 형님들도 주량이 말술이다.

막걸리에 취한 남도 사내들의 이야기는 끊어지는 법이 없다. 본래 남도 사내들이란 살갑고도 구성진 이야기꾼들인지라,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옛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하게 되는 법이다.

자식뻘 동생인 나는 귀가 쨍쨍 울리도록 목청 좋은 그 형님들 이야기들이 좋으면서도 싫었다. 듣다보면 아아 감탄을 토하면서 휘말려들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것이 그 형님들 말발이신데, 속내를 깊이 갈무리하고 사는 충청도 기질을 어머니께 물려받은 내게는 그 형님들의 구성진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적나라한 폭로가 어딘가 불편하더라.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가 꼭 그랬다.
사나이 가슴에 묻고 사는 속내를 이렇게 질펀하고도 질척하게 다 까발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더냐.
책장을 들여다보다 뿌옇게 시야가 흐려지는 통에 몇 번이나 고개를 젖혀 천장을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이 작가, 어쩌면 전라도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익숙하다 할 신선조, ‘신센구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소설이란 작가에게 최고의 놀이라고 아사다 지로도 이야기했지만, 과거를 되살려 책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고, 온갖 자료 찾아가며 자신이 새롭게 창조한 인물들에게 그 설정을 덧입히는 것은 정말 최고의 즐거움을 주는 작업일 것이다.

신센구미는 일본인들에게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의 격변에 역행하고자 했던, 그러나 가치 있는 고집을 부렸던 <무사도>의 표상쯤 되는 존재이다.
역사의 패배자들이었기에 흔적도 없이 묻혔던 그 존재는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바 료타로에 의해 대중에 알려졌고, 곧 열광적인 지지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대중 문화 상품의 모티브로 쓰였다.
본래 마지막을 예감하면서도 질주하는 사내들이란,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짙게 뿌리기 마련이다.
신센구미의 매력 또한 패배를 알면서도 끝까지 깃발을 놓지 않았던 무사의 고집에 기인한다.

일본에서야 이제 워낙 잘 알려진 존재이다 보니,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재미가 없었을 이 제재에 아사다 지로는 아주 색다른, 그러나 지극히 아사다 지로다운 인물을 내세웠다.

요시무라 간이치로.

이 사람은, 역사가 시모자와 칸이 신센구미의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신센구미 시말기》에 단 몇 줄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을 조명하는 아사다 지로의 솜씨는 꽤나 모험적이었지만, 그 효과는 놀랍도록 뛰어나다.
간간이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등장하는 장면이 3인칭으로 나오지만, 상하 두 권인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러 인물들의 1인칭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신센구미의 생존자들과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언론인인지 작가인지 모를 존재가 인터뷰한 내용을 구술한 형식으로 쓴 것이다.
인터뷰어는 한 사람, 두 사람을 거치며 조금씩 요시무라 간이치로에 대해 파악하게 되고 그가 느낄 감정은 그대로 독자가 느낄 수밖에 없다.
말발 좋은 노인네들이 잔뜩 나와 구성지면서도 비루한, 성이 나면서도 서글픈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는 것이니.

그들에 의해 드러나는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신센구미하면 떠오를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내이되, 실은 가족을 부양하는 것을 최고의 ‘의’로 아는 이상한(그 시대의 무사도를 생각하면) 무사이기도 했다.

아사다 지로는 가족을 돌볼 줄 아는, 그리고 그것을 최고의 인의仁義로 받들고 사는 특이한 사무라이를 그려냄으로써, 현대를 사는 가장들에게 위로의 찬가를 보냈던 것이다.
이 책이 일본에 발표되었을 때, 중년 남성들이 편지까지 보내며 열렬히 호응했다고 하니(나라를 불문하고 남자들이란 본래 이런 짓을 안 하는 존재들이다), 이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뒤흔드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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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이자 대단한 글발의 소유자인 가인 님은 아사다 지로를 가리켜 ‘솔직한 글을 쓰는, 그러나 대단히 청승맞은’ 작가라 평하더라.
《프리즌 호텔》을 볼 때만 해도, 아사다 지로의 ‘청승’이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이제는 가인 님의 말씀에 절대 공감한다. 아사다 지로는 정말 청승맞다. -_-

야쿠자 출신이기도 한 아사다 지로는 마초에 대해 잘 아는 작가이다.
그 허세와, 그 겉멋과, 그 속내까지도.
문제는……, 마초란 약한 속내를 갖고 있어도 좀처럼 이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라는 것. 않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
그런데 아사다 지로는 마초라면 마땅히 감추고 넘어가야 할, 남자라면 굳이 밝히지 않아야 할, 그 깊고 깊은 비루한 속내를 남김없이 투두둑, 다 까발려 버린다.

어쩌라고……. =.=

중년의 남자가 소설책을 보다 콧물 질질 흘리며 눈물까지 툭툭 떨어뜨린다면, 아이고, 그것은 같은 남자로서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극일 것이다.
아사다 지로는…… 이 책으로 아마 수많은 참극의 희생자들을 양산했으리라.

그러나.
작가로서는 역시 최고의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독자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며 들었다 놓았다 마음대로 헝클어 버리는 작가를, 어떤 독자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당신은 너무 청승맞아.

꾹 참으며 사는 남자의 속내를 이렇게 다 까발려 놓으면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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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안신 2009/03/17 09:10 # 답글

    아사다지로보다 독이님의 감상글이 더 좋으네요.
    독이님은 날이 갈수록 글 더 맛갈스러워지세요;;
    (일반소설에도 한번 도전해보세요;;)
  • 신독 2009/03/17 10:05 #

    정말? 날이 갈수록 맛깔스러워진다니, 그런 듣기 좋은 칭찬을. ㅎㅎ
    감상글이야 대상이 되는 작품이 좋으면 감상도 절로 흥이 나니까 그렇겠지 뭐. ^^;a

    * 그래도 아사다 지로는 청승맞아. 이 작가의 정체성은 남자에게는 오직 이 두 글자, '청승'이면 족해. -..-
  • 다라나 2009/03/17 15:53 # 답글

    허, 안신 님도 저와 같은 느낌이셨군요. 독이의 감상글이 갑자기 두 배 정도 공력이 늘어난 느낌이에요.
  • 신독 2009/03/17 16:11 #

    아니, 형까지 왜 그래? -..-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는 이들끼리 서로 띄워준다'고 비웃는다구. =.=

    하긴, 뭐.
    모르는 사람이 어찌 보건 상관할 내가 아니지. ㅋ

    아사다 지로야 원래 좋아하는 작가인 데다, 이 글 보면서는 본문에 언급한 것처럼, '참극의 희생자'가 되었거든. 아... 전철이나 버스에서 이 책 봤으면 증말 무안했을 거시야. -..-
  • 다라나 2009/03/17 23:56 # 답글

    그게 아니고, 안신 님 댓글 보기 전에 너 감상글 보면서 괄목상대란 말이 생각났어. 사실은 아사다 지로가 이런 감상을 끌어낼 정도의 힘을 지닌 작가인가 보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안신 님 댓글을 보니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느낀 것 같아서 짧게 쓴 거야.
  • 신독 2009/03/18 00:23 #

    응. 아사다 지로는 적어도 나에게는 그 정도 힘을 지닌 작가가 맞아. 청승맞긴 하지만, 나랑 코드가 잘 맞나 봐. (그렇게 보면, 나도 '청승'의 기질이 있는 모양이야. 역시 천상 전라도 분인 아버지 피 때문일까나? -_-)
  • 2009/03/18 00:08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신독 2009/03/18 00:32 #

    진짜 오랜만에 여기서 보네요. ㅋ

    예전부터 건조하다는 말 참 많이 들었죠. 말씀하신 것처럼 여간해서는 작은 불꽃도 피지 않고요. 생각해 보면, 20대 초의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는 너무 잘 운다고 '수도꼭지'라 부르며 선배들이 걱정했으니까요. 빵에 간 선배가 저한테만 따로 편지를 보냈을 정도였죠. '너 걱정된다'고요.
    근데, 이런저런 부침을 겪다 보니 결국엔 바싹 말라 버렸어요. ㅎㅎ

    하지만 바싹 마른 제게도 습기를 쥐어 짜거나, 불길이 옮겨붙는 건 아직도 있으니 참 신기하죠.
    이렇게 계속 감상글을 정리하는 이유도 사실은 그것 때문이예요.
    말 그대로 저를 찾는 '궤적'이죠.
    뭐,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원래 결과 따지며 사는 편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하기로 한 건 다 했어.
    마지막에는 그거 하나면 저는 족합니다. ㅎ
  • 음 실컷울어본 사람 2009/04/05 21:07 # 삭제 답글

    캬 정말 이책을 저를 처음으로 울리는 책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감상글을 보면서 그 책보면서 울던때가 기억나더군요 . 이책의 작가 날 울리게한

    작가 아사다 지로는 이십대를 야쿠자로 보내면서'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라는 문장을 읽고 소설가의 꿈을 가지는데요. 음 감성적인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도 첫 단편에서 가족

    애를 나타내는데요. 이소설도 마찬가지로 감동을 점점 달짝 지근하게 다가가죠 나중에는 이책의

    달콤함에 해어 나오지 못합니다. 결국 전 울어버리게 되는데요. 두남자 아사다 지로와 그를 대신하여

    표현된 요시마라 간이치로는 가족애를 보여줍니다. 오로지 가족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서 살고 죽는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위해 탈번하고 마지막 부분의 전투에서 심한 부상을 입고 친구인 오노가

    의 집에 가서 너덜 너덜한 칼로 자살하는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일본은 역사는

    엄청 잔인한 역사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이 잔인함 속에서 가족을 살리는 한남자의 역사이다.

    이 이야기 중에서 명장면을 꼽자면 하권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편하게 죽어라며 받은 명검 '야스사다'

    를 아들에게 피묻지 않은 깨끗한 검을 주기 위해 고통스럽게 자신과 같이 너덜너덜해진 검으로 자살

    합니다. 이책은 앞에나온 이러한 이유들 그리고 더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그 이유들 때문에 ....

    일생일대의 책, 절대 잊지못하게할 책 이 되었습니다.

    정말 당신 말대로 아사다 지로는 '청승'이었습니다.
  • 신독 2009/04/06 08:51 #

    호, '청승'에 동의하시는 분이로군요.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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