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골든 슬럼버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by 이사카 코타로 by 신독

《골든 슬럼버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이사카 코타로| 김소영 역| 웅진지식하우스| 2008.06.04 (2007)| 528p

차례를 보자마자 반가웠다. “이사코 코타로네.”
<1부 사건의 시작, 2부 사건의 시청자, 3부 사건 20년 뒤, 4부 사건, 5부 사건 석 달 뒤>로 구성되어 있었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구성이 아니라 3부에 사건 20년 뒤의 미래를 끼어 넣은 구성인데, 이런 구성은 그가 단편 <피쉬 스토리>에서 이미 시도해 본 것이라 이번엔 어찌 풀었을지 기대가 되었다. 감각적인 문장뿐 아니라 플롯으로도 여운을 안겨 줄 수 있는 작가임을 잘 알기에 곧바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3부까지 읽으며 - 차례로는 3부지만, 분량이나 내용으로는 3부까지가 서문이라 봐야 한다 - 대단한 자신감을 느꼈다.
이 책의 중심 사건은 일본의 신임 총리 암살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 암살을 모티브로 일본적인 해석을 가한 것인데, 《마왕》에서도 관심을 표현했던 ‘국가 권력’을 겨누고 있다는 점이 이사카 코타로답다. 엔터테인먼트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작가의 관심은 쉽게 다루기 어려운, 심각하고도 무거운 주제에 닿아 있는 것이다.

총리가 암살당한 시점, 각기 다른 두 장소에서 사건을 대하는 이들이 1, 2부에 등장하는데 모두 다 주인공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3부는 이 사건의 20년 뒤에 한 논픽션 작가가 암살 사건의 정치, 사회적 의미와 사건 관계자들의 후일담을 르포처럼 서술한 것이다.
100여 쪽 가깝게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으며 외곽에서 씨만 뿌린 셈인데, 상업적 고려를 하는 작가라면 어지간한 자신감으로는 시도하기 힘든 구성이다. 게다가 뿌린 씨앗을 일일이 싹을 틔워 제대로 수확하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기도 하니 위험성도 적지 않다.

책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4부에 와서야 드디어 주인공 아오야기 마사하루가 등장한다. 일본판 오스왈드의 역할을 맡은 아오야기는 전직 택배 기사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음모 세력에 의해 희생양으로 준비된 이다.
작가의 인터뷰 - 책에도 실려 있으면 좋았을 - 에도 나오듯, 보통 사람이 거대한 힘에 의해 쫓기는 이야기는 할리우드에서 이미 여러 번 검증된 히트 스토리다. 이사카 코타로는 <다이 하드>와 <도망자>, <본 아이덴티티>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추격자 혹은 도망자의 스토리를 구상하게 되면, 등장인물들은 필연적으로 두 편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이 양편에 속하지 않는 인물들은 결국 국외자가 되어 사건에서 소외되고 만다.
《골든 슬럼버》는 쫓기는 자가 주인공이고 쫓는 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 음모자’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쫓기는 자의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오야기를 쫓는 경찰이나, 정체가 불분명한 권력 기관의 하수인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한쪽 인물들만을 부각시킨 것은 탁월한 선택일 수도, 위험한 모험일 수도 있다.

아오야기를 사건 현장으로 데려오는 모리타 신고와 쫓기는 와중 아오야기가 도움을 청하러 가는 오노 가즈오, 텔레비전에서 아오야기를 보고 그의 무죄를 믿으며 어떻게든 돕고자 하는 히구치 하루코는 모두 같은 대학의 동아리 친구들이다. 이 중 히구치 하루코는 아오야기의 헤어진 옛 애인.
이들과, 이들과 관계있는 이들이 아오야기의 도주를 돕는다. 책의 제목으로도 쓰인 비틀즈의 ‘Golden Slumbers’는 이들의 옛 우정과 따뜻했던 과거에 대한 회상의 상징으로 쓰이며 소설의 여러 곳에 등장한다.

쫓고 쫓기는 이야기는 원래 긴박감이 높은 데다 이사코 코타로가 1, 2, 3부에서 미리 깐 복선들이 여기저기 등장하며 이 글은 굉장한 몰입도를 자랑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읽었다.
그렇게 한창 이야기에 빠져 읽던 중, 한 인물의 등장 때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센다이에 시큐리티 포드라는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는 계기를 제공했던 연쇄살인범 미우라. 가즈오를 구하다 체포된 아오야기를 탈출시키고, 그에게 은신처와 피난 방법을 가르쳐 주는데, 이 미우라는 이전에 아오야기와 어떤 연관도 없었던 인물이다.
살인범인 자신과 같은 부류-국가 권력에 쫓기는-라 호기심에 주시하다, 자신과 싸웠던 경찰이 체포한 것을 보고 구해주었다 말하지만, 어째 좀 어색하더라.
여태 씨줄과 날줄로 치밀하게 짜여 온 그물망에 갑자기 구멍이 뚫리는 느낌이었달까. 물론, 미우라는 2부의 무대가 되는 병원에서 ‘중학생’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복선의 하나로 볼 수도 있지만, 도망 중인 연쇄살인범이 총리암살범을 돕는다는 설정은 뭔가 석연치 않았다.

취향 때문으로 볼 수도 있는 이 작은 구멍 때문에, 내 몰입은 깨지기 시작했고 이는 다른 인물들에게도 연결되었다.
먼저 기쿠치 마사카도.
이 사람은 아오야기의 옛 연인 히구치의 친구 히라노의 애인이다. 감시 시스템인 시큐리티 포드를 청소하는 일을 한다. 아오야기와는 생면부지의 인물인데, 히구치가 히라노에게 부탁하고 히라노가 기쿠치에게 부탁해서 자그마치 총리 암살범으로 쫓기는 자를 돕는다. 여자 친구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 주는 인물이라 1부에서 밑밥을 뿌리기는 했지만, 어째 어색하더라. 내 애인의 친구가 자신의 옛 애인을, 그것도 내 직업을 걸고 도와 달라 청한다면, 선뜻 “맡겨 주세요”라고 할까? 글쎄.

그리고 호도가야 야스시. 이 인물은 2부의 무대인 병원에 등장했던 속칭 나일론 환자인데, 아오야기의 탈출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아오야기와의 만남도 우연, 그를 그렇게까지 돕는 이유는 막연이다. 범죄를 위해 준비했던 경로를 생판 모르는 총리 암살범을 위해 제공한다는 것은 어딘가 영 어색했다. 도대체 왜?

이런 어색함은 다른 인물들에게서도 조금씩 발견되는데, 불꽃놀이로 경찰의 시야를 돌리는 중차대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도로키는 10여 년 전 아오야기와 그의 친구들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인연밖에는 없다. 히구치의 요청으로 아오야기를 돕는데, 고개가 갸웃하더라. 내가 10여 년 전 알바를 했던 인쇄소 사장님이 내가 살인범으로 쫓기고 있다면, 과연 나를 선뜻 도울까? 갸웃.

@

《사신 치바》를 비롯해 《피쉬 스토리》, 《마왕》 등에서 이사카 코타로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슬쩍슬쩍 판타지적 요소를 현실 안에 집어넣고는 했다. 낯선 느낌과 함께 글의 매력을 상승시키는 작용을 톡톡히 한.

그러나 이 글 《골든 슬럼버》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리얼한 세상을 배경으로 삼았고 인물들 중에도 모리타만이 초반에 약간 판타지의 냄새를 풍겼지만, 그조차 사실이 아님을 곧 드러낸다.
그래서일까. 인물 간의 관계가 묘하게 불안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전의 작품들에서 인물 간의 관계에 묘한 개연성을 부여하던 판타지적 요소가 거세되며, 현실에 발가벗겨진 작가의 의도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말았다.

물론, 《골든 슬럼버》는 일본 서점대상과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수상하며 독자와 평자 모두에게서 호평 받은 수작이다. 미스터리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꽉 짜인 구성이 빛을 발하는 좋은 소설이다.
그러나 이사카 코타로에게 평균 이상의 기대를 갖고 있던 나에게는, 《마왕》을 밀어내고 이사카 코타로의 대표작으로 꼽아 줄 만한 글은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를 인물 속에 완전히 녹이지 못했다.
다른 인물들 -예컨대, 옛 애인으로 등장하는 히구치는 가정을 갖고 있는 유부녀이면서도 딸과 자신의 안전까지 걸고 아오야기를 돕는다. 미우라로 인해 알게 된 성형외과 의사도 정도 이상으로 아오야기를 돕는다- 은 이해해 준다 해도, 연쇄살인마 미우라와 호도가야가 아오야기를 돕는 이유만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어야 했다. 국가 권력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어둠의 인물들이 갖는 동질감. 이 정도로는 개연성에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아오야기의 탈출을 위해 각각의 인물들에게 역할을 부여했고 작가가 부여한 역할대로 등장인물들이 움직이는데, 인물들에게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현실적 이유를 주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작품들에는 행위의 이유를 '현실적'으로 제시할 이유가 없었다. 그 이야기들에는 모두 판타지적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래야만 했다. 현실을 무대로 현실적 사건을 제시하고서는 인물들의 관계에만 판타지를 남겨 둔 거랄까?

아쉬워라. 좀 더 열광할 수 있었는데. 쩝.

@

그래도 오랜만에 이사카 코타로의 글을 읽어 즐거웠다.
조밀하게 글을 쓰는 그의 조직적 사고와 감수성이 번뜩이는 힘 있는 문장을 좋아하기에.

글의 여기저기에서 독자의 감정을 깊이 건드리는 촉매로 쓰인 비틀즈의 노래도 좋았다. 해체된 그룹을 다시 모으려 했으나 결국엔 실패하고 만 폴 메카트니의 쓸쓸함이 잔뜩 묻어난다.
누구에게나 빛나던 한때가 있기 마련이다. 그 한때는 비록 당시에는 고통스러웠을지 몰라도 추억하는 현재에는 언제나 그립기 마련이다. 아름답지 않은 과거일지라도 그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는 언제나 아름답다. 인간은 고통마저 탈색시킨 채 과거를 추억하는 존재이니까.


Golden slumbers -  The Beatles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
Sleep pretty darling do not cry
And I will sing a lullaby
Golden slumbers fill your eyes
Smiles awake you when you rise
Sleep pretty darling do not cry
And I will sing a lullaby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
Sleep pretty darling do not cry
And I will sing a lullaby

트랙백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TrackbackURL : http://shindok.egloos.com/tb/2250646 [도움말]

덧글

덧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