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 by 신독

대개의 사람들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맞춤법을 중시하고 오탈자나 비문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알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건 사실 딱히 장르소설가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울나라 문학계의 거성이라 할 작가 - 그의 단편집, <매잡이>를 본 후 '나 같은 사람은 소설 못 쓰겠구나'라는 열패감을 심어 주었던 그분 - 역시 맞춤법에 신경 쓰기 이전에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라 말씀하셨다 들었다. 그분의 초고를 본 적은 없으니 본래의 문장이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본 그분 책들을 생각하면 '그분이 그런 말씀을?'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장르쪽만 보자면, 상업적 성공뿐 아니라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는 작가들도 맞춤법에는 신경을 안 쓴다 공공연히 말하는 분들이 꽤 많이 있다. 맞춤법에 신경을 쓰는 순간 글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서는 맞춤법이나 오탈자, 비문에는 신경을 끄는 편이랄까.

나는 그분들의 생각이 틀렸다 말한 적은 없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타당한 면도 있다 생각하기에.
다만, 문장에 대한 내 생각은 그분들과는 다르다.
원고를 곧바로 출판사에 넘겨 책의 형태로 독자와 만나는 작가들이 아니라면, 인터넷 연재시 독자들과 글로 조우할 때 최소한 퇴고 한 번 정도는 하는 게 도리라 생각하고 있다. 몰라서 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알면서 틀리는 건 성의 부족이고, 존심 상하는 노릇 아닌가.
공짜로 보는 독자이니 그 정도는 감수하라 말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장르 출판사들의 교정 수준이 영 아닌 현실을 생각하면,  연재된 원고의 오류는 대부분 출판본에 그대로 옮겨지게 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부분이 있다.
오탈자 많고, 비문투성이인 원고를 교정 보는 출판사 편집진의 기분 말이다. 그저, 아는 편집자들의 말만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던 편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떤 기분인지 요즘 직접 경험하고 있다.
중국무협 번역 원고의 윤문을 하는 중인데... 원고의 수준이 초벌 번역 내지 개판 날림 번역 수준이다.
분명히 우리말 우리글인데...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_-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중국어 원본을 보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짐작도 안 되는 문장들이 수두룩하다. -_-;
지금 내가 윤문을 하는 것인지 번역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 -_-;;
원본을 최대한 보지 않으려 바동거려 보았지만, 맥락을 파악해 의미를 짐작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계속 원본을 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_-;;;
더 안습인 것은... 비문이라 해도 번역 원고 문장의 잔상이 남기 때문에, 그 문장을 다듬는 것은 직접 쓰는 것만큼이나 신경을 곤두세우는 작업이라는 사실. -_-;;;;
하아... 어째서 그 한자를 글케 해석할 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글케 문장의 의미를 180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말인가... OTL

한글을 읽으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기분은 오랜만에 느껴 보았다.
독자로서 보았다면, 진작에 던져 버렸을 글이지만 윤문을 해야 하니 이 박박 갈며 보는 중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숨이 턱턱 막힌다. 도대체 어떻게 번역을 했기에 평범한 단어들을 모아 이따위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인가!
심지어 심장도 오그라든다. 가슴이 답답하다.
자판 두드리며 오랜만에 욕지기도 내뱉어 본다.
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지사지!

앞으로 내 담당 편집자에게 정말이지 잘해 줘야겠다.
비문 교정...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덧글

  • 하지은 2009/02/24 23:39 #

    맞춤법과 문장과 띄어쓰기 하나까지 무지하게 신경 쓰는 저로서는 그런 분들을 납득할 수가 없는... 맞춤법에 신경을 쓰는 순간 글이 나가지 않는다니 왜 변명으로 들릴까요. 그냥 차라리 신경 쓰기 싫다고 하든가...
  • 신독 2009/02/25 00:44 #

    웹상에서 네 글을 처음 보았을 때, 그래서 깜짝 놀랐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너무 잘 지켜서.

    고무림 때부터 여러 성향의 작가들과 말이나 글을 섞어 본 내 결론은, 문장이나 오탈자 문제는 결국 작가 자신의 선택이야. 자신의 선택에 그만한 책임만 지면 그뿐이지.

    나는 맞춤법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는 싫어하지 않아. 그건 그의 자유거든.
    '소설을 쓰며 맞춤법에 신경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말하는 걸 싫어하지.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한 이들을 비웃을 자유까지 있는 건 아니니까.

    근데 맞춤법을 중시하지 않는 대개의 작가들이 그런 식으로 말해. 자기 생각을 그렇게 일반화시키곤 하지. 그게 일반화인지 모르는 건지, 자기 합리화를 위해 아예 일반화를 적극 유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하지은 2009/02/25 02:00 #

    네. 저도 그런 말을 싫어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 신독 2009/02/25 07:41 #

    바로 앞의 사람에게 면전에서 '바보'라 욕하는 셈인데, 안타깝게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달까? 뭐, 모르는 게 죄는 아니니 내 앞에서만 그러지 않으면 걍 맘대로 사셈 하는 편.
  • 둔저 2009/02/24 23:46 #

    어둠의 다크와 운명의 데스티니인가요.
    [퍽]
  • 신독 2009/02/25 00:30 #

    ㅎㅎ
    어둠과 암흑이 뛰어 몰려 데스티니하니 운명이어라.
    ...식이랍니다. 흙. ㅠ.ㅠ
  • 2009/02/25 14:33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신독 2009/02/25 15:20 #

    그런 거로 죄송할 것까지야. 마음에 두지 않고 있으니 염려 말기를. ^-^
    너도 건강 유의하렴. 슬슬 그럴 나이가 되어가고 있어. ㅎㅎ
  • 다라나 2009/02/25 15:17 #

    맞춤법에 신경쓰다 보면 이야기가 안 나가서 신경쓰지 않는다까지만 얘기하는 사람은 아마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거야. 자기 생각이야 어떻든 사실을 얘기한 거니까.

    근데 '그러므로 맞춤법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놈은 글 쓸 필요가 없는 놈이지. 그런 놈이 너무 많아 문제지. 좆같은 새끼들. ㅡ.ㅡ

    그나저나 졸지에 번역하게 생겼네. 고생이 많다.
  • 신독 2009/02/25 15:33 #

    ㅎㅎ 과연 형이로세.

    이거... 진도가 영 안 나가 문제야. 요샌 웬만한 일로는 화도 나지 않는데, 입에서 그냥 육두문자가 튀어나오더군. 뇌에서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조건반사처럼 튀어나왔달까? 신기한 경험이었어. ㅡ.ㅡ
    시간만 충분하다면, 꼼꼼하게 윤문해 줄 가치가 충분한 글인데... 아쉬운 일이야. 중국의 그 작가에게는 참 안 된 일이지, 뭐.

    이거만 끝나면 연락하리다. 의논할 일도 많고, 보고도 싶네.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