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천괴성 天魁星 》 유잔양 柳殘陽 by 신독

[천괴성 1,2 ㅣ유잔양 저| 좌백 감수ㅣ 시공사| 2001.07.25]

대개의 중국무협 번역이 그렇듯 이 책도 역자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감수를 본 좌백 님만 나오신다.
그래도 유잔양에 대한 좌백 님 소개가 워낙 자세하기 때문에 나처럼 이것저것 시시콜콜한 것이 궁금한 독자에겐 만족도가 꽤 높은 책이다.

1

유잔양은 1941년생으로 산동성 출신이나 아홉 살 때 대만으로 건너가 자랐다. 본명은 고견기(高見幾). 아버지는 장성까지 오른 군인이다.
고교를 졸업하던 1961년, <<수라칠절(修羅七絶)>>, 당시에는 <<옥면수라(玉面修羅)>>라는 제목으로 데뷔했고, 이후 81종의 작품을 남겼다.

이 책은 그의 31번째 작품인데, 우리나라에는 70년대에 조약빙(曺若氷)이 쓴 <<취접자홍(聚蝶紫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단다.

흔히 무협은 무와 협이 중심축이라 말하지만, 유잔양에게는 협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협객보다는 의리, 정의보다는 힘이 강조되는 흑도의 세계라 좌백 님 소개에 나온다.

유잔양은 중국무협 비평하시는 분들이 ‘신파 무협’이라 부르는 60년대 대만 무협 융성기의 작가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로 대접받았지만, 중국에서는 김용, 양우생, 고룡보다 한 수 아래로 꼽히는 와룡생도 이때 활동했다.

유잔양은 이 당시 활동했던 중무 작가들 중에도 ‘철혈강호파’로 분류되는 작가인데, 환상보다는 현실, 성인동화로써의 무협보다는 스릴러로 무협을 쓴 작가라 한다.
당시 활동했던 와룡생이나 제갈청운과는 확실한 대척점에 선 작가였달까.
소년 협객의 환상적인 협객행이 아니라 흑도 무림인의 현실적인 무협을 썼다는 점에서는 우리나라 창작 2세대 작가들과도 공통점이 많은 작가라 하겠다.


2

주인공인 구인의 별호가 이 글의 제목인 ‘천괴성’인데, 글의 플롯은 사실상 아주 단순하다.
우연히 위기에 빠진 굴무기를 구해 준 구인은 그와의 의리를 지키다 자신의 가정이 파괴당한다. 원수들에게 납치된 아내를 구하기 위해 친구들을 모아 팔충사라는 원수의 집단을 깨부순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이 글의 줄거리는 이것이 전부다.

두 권인 <<천괴성>>을 읽는 내내 나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한국 무협 작가들 중 창작 2세대의 말미에 등장한 작가, 황기록이다.
기록 형님이 유잔양의 글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유잔양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겠고.
만약 읽지 않았다면 기록 형님은 유잔양의 81종 글을 모두 구해 읽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세대와 나라가 다른 두 작가의 글은 색깔이 비슷하다.
강호를 보는 강호관이 이렇게나 기록 형님과 비슷할 수가.
고집스러운 사실성을 추구하는 것도, 흑도 무림만의 거친 매력을 드러내는 작풍도 둘은 너무나 닮았다.

그래서 독서를 하는 내내 나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숨이 넘어갈 만큼 오랫동안 잠수하느라 영 만나지 못했던 기록 형과 얘기하는 것 같아서.

유잔양의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된 글은 이 글 외에는 <<독고구검(박영창 역, 세계, 1993)>>이 유일한 것 같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대개의 중무 작가들처럼 와룡생이 쓴 책으로 나온 게 또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3

<환상>과 <현실>은 중국 신파 무협 내부의 조류만은 아니다.

와룡생으로 대별되던 우리나라의 번역무협시대에서 창작 1세대로 넘어갈 때도, 답답한 만만디의 중무가 너무 많이 보아 질려 버린 <환상>이었다면 빠른 흐름으로 치고 나가던 창작 1세대의 박스 무협은 새롭고 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현실적 <환상>이었다.

박스 무협의 반동으로 등장해 신무협의 기치를 날렸던 2세대 무협의 등장은 두 말할 나위 없이 <환상>에 대한 <현실>의 역습이었다.

그리고 등장한 신무협판타지, 3세대 무협은 <현실>에 대한 <환상>의 통타였다.

아직은 나 스스로 정리가 안 되었지만, 한국에 무협이 들어올 당시 김용이나 양우생이 아닌 와룡생이 북두가 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제일 먼저 소개된 탓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도 중무가 소개된 적은 있었다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전 사회에 무협의 바람을 일으킨 사람은 분명히 와룡생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무협 자체가 <환상>이었던 같다.
지풍과 장풍이 난무하고, 기진이수와 절벽 기연이 너무나 신비로운 판타지를 제공했달까.

하드보일드풍이 강조된 신무협의 사실성이 3세대의 광풍에 그렇게 휘청거렸던 것도 어쩌면 무협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판타지였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환상>과 <현실>을 어떻게 조화하는가.
양쪽에서 어느 곳에 균형점을 어떻게 맞추는가가 점점 위축되어가는 3세대 무협의 해법은 아닐까나.

물론, 이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단상일 뿐이다.

덧글

  • 과객 2009/03/17 08:25 # 삭제

    그 밖의 유잔양의 번역된 작품은 어쩌면 대표작이라 할수 있는 단인(斷刃)이 초기 번역때는 아마도 대살성(大煞星?), 그후에 박스부협으로 혈마비검(血魔飛劍,와룡생,선우인)으로 재간되었고, 단장화(斷腸花)가 마존(魔尊)에서 동방불패2인가 독고구검2인가로 김용작품으로 번역된적이 있고 그외에 영웅호색가로 사마궁인가흔 유령작가 작품으로...번역?된적이 있습니다.그외에 생사추(生死錘)와 뇌지백(雷之魄)일부가 진청운의 무정검풍(無情劍風)으로, 그리고 성혼(聲魂,어쩌면 혈부(血斧)내용도 들어있는지...원문을 보지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이 김용이름으로 강호영웅전으로, 또는 유령작가 김삿갓이 성혼으로 번역?된적이 있습니다.그밖에 천수검(千手劍)과 대살수(大煞手)가 예전에 천수검은 제목은 잊어버렸고 대살수는 일검혈화(一劍血花)로 뒤에 용대운님의 번역으로 섬수혼령탈혼검(閃手魂鈴奪魂劍)과 황룡전기(黃龍傳奇)로 재간했습니다. 그리고 초기에 죽여검(竹與劍)과 용두노대(龍頭老大), 전부 혹은 일부가 박스무협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아리송한데 아마도 마인귀검(魔人鬼劍?)뭐 이런 비슷한 이름이었을겁니다. 마지막으로 칠해비룡기(七海飛龍記)가 더 있네요. 한가지 재미잇는 것은 유잔양의 단인이 중국사이트에도 여절령(勵絶鈴)이름이 사성산(沙成山)이름으로 된 판만 돌아다니는데...여절령판은 넷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언젠가는 유잔양의 대표작이라 할 수있는 효중웅(梟中雄)과 효패(梟覇)가 번역출판될 수 있는 무협환경이 오기를 바라는 보지만...현실적으로는 아마도 어럽겠지요.
  • 신독 2009/03/17 09:13 #

    지나시던 고수께서 한 수 가르침을 베풀어 주셨군요. 자세한 말씀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 ^)(_ _)
    <섬수혼령탈혼검>이나 <황룡전기>는 저도 보았을 텐데, 유잔양 작품이라는 기억이 없어서 이상했는데 책 검색을 해 보니 용대운 님만 나오는군요. 출판사에서 편역본을 내며 저자명을 전면에 걸지는 않았네요. 하긴, 당시의 저 같은 독자들에게 용대운 님 필명이 아니라 유잔양 석 자가 강조되었다면, 손에 잡기 망설였겠죠.

    좌백 님 소개에도 <효중웅><효패>가 유잔양 작풍의 절정이라 나와 어떤 글일까 꽤 궁금해하던 중이었습니다. 연작이라 번역 출판된다면 두 작품 모두 출판해야 할 텐데... 역시 어렵겠지요. -_-;
    시간 나면 원본을 구해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드네요. 유잔양만의 매력이 절정을 이룬 작품이라니,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 과객 2009/03/17 09:00 # 삭제

    하나 빠트린 작품이 있네요. 겁후은구(劫後恩仇)가 취련곡(翠蓮曲?)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박스판 무협이었는데...재미있었던 것은 앞부분 주인공 부인이 강간당하는 신이 있는데 너무나 야하게 번역(창작?)이 되었는데 거의 야설수준이었습니다. 아마 당시의 장사속이겠지만요.
  • 신독 2009/03/17 09:24 #

    팔릴 만한 장면이 들어 있으면 그렇게도 만들었나 보군요. 예전 출판 환경에 대해 나름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처음 듣는 일례네요.
    오래 전 작품들의 이름까지 기억하시는 걸 보면, 아마도... 중무동에 계신 고수신가 보네요. ^^; (어디까지나 감일 뿐이라 근거는 전혀 없지만요. 제가 아는 형님 중에도 그곳에 계셨던 분이 있거든요. 자신은 그곳에 가면 '중수' 정도라 겸손해 하셨지요.)

    친절하신 여러 설명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



  • 누굴까 2009/08/31 04:21 # 삭제

    보시면 아시겠지만 섬수혼령탈혼검은 역자 서문에 현대감각에
    맞게 편역을 했다고 하는데,

    원문을 읽고 뭐 그런 분들이 말하길...
    거의 `창작` 이라고 하더군요.

    여기에서 과객님을 뵐 줄은...
  • 신독 2009/08/31 12:25 #

    편역이란 게 참 그렇죠. 현대 감각에 맞게라는 말도...
    울나라 번역은 문장을 정확히 옮기기보다는, 읽을 때 매끄럽게 읽히도록 번역하는 게 추세이던가 보던데... 중국 무협 번역은 사실 설렁설렁 대충 뜻 맞춰가며 한 번역이 많을지도 모르겠네요. 원본과 번역본을 함께 본 게 몇 종 되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편역은 이것보다도 더 대충이죠, 사실. ㅎ

    (혹시 천랑성 형님? 물론 그저 예상임다. 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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