弄走殘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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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탐구] 좌백, 《천마군림》, 2003/1/31-2/8

개인적으로는 굉장한 집탐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내 글이 아니라 그 기간 집탐란에 모였던 이들과의 시간이 굉장했다. 자칫 난장판이 될까 봐 엄청 긴장한 채 일주일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있었는데, 좌백 님과 사적으로 호형호제하는 분의 글인 걸 모르고 '이분을 막아야 해! 왜 일케 위험한 발언을 하시는 거야-!'했던 기억이 난다. ㅋㄷ),
이 글을 뺀 이유는 하나였다.

세 번째 글에 무협의 장편화를 반대하며 날을 세웠는데, 2007년에 여기 올리려고 다시 보니 한마디 한마디가 내 목을 찌르는 칼 끝으로 느껴졌다. -_-;
독자였던 과거의 내가 글 쓰는 현재의 나를 마구 몰아붙인다고 느꼈달까.
개미 백만 마리가 달려들어 온몸을 물어뜯는 거 같더라.
과거의 내가 휘두른 칼에 목이 달아나지 않으려면 눈 크게 뜨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사족처럼 붙은 네 번째 글은 어떻게든 단점을 지적해야 한다는 당시의 조급증이 보여 실실 웃게 된다. 아니라고 말은 했으면서도 단점을 까야 멋진 비평이 된다고 생각했달까? ㅎㅎ)


[천마군림 (6권까지 출간 중) ㅣ좌백| 청어람| 2003.02.20-2003.07.12]

1. 천마군림의 의의

신무협과 구무협의 구분, 서로의 우열관계의 확정 등이 이제는 무의미한 구분이라는 것은 아래 강국진 님의 집탐글에 대한 댓글에서 잠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구무협의 이러저러한 특징들…… 물론 나열할 수 있습니다.
모든 미인은 주인공만 좋아하고, 위기만 닥치면 기연을 만나고, 무공은 끝없이 업그레이드되고, 강호의 정세는 왜 그리 획일적인지……, 이런 게 모두 단점이죠.

하지만 장점은 없을까요? 박스무협 시절엔 대중문학의 온갖 실험들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박스무협만 연구해도 대중문학의 코드들을 논문으로 나열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우선, 상상력의 대잔치였죠. 신무협이 갖고 있던 리얼리티의 한계가 박스무협엔 없었습니다.  
자유로운 상상력의 연속이었죠. 스토리 전개가 굉장히 빨랐지요. 장면 전환이 커트 커트로 이어지며 급박했습니다. 기발한 설정들이 대단히 많았지요. 한 설정 히트 치면 모방작들이 뚜루루…… 이런 것이 문제였지만요. ㅡㅡ
말기에 공장무협이 출현하며 질이 화악 떨어지고 무협계를 말아먹었지만, 박스무협에 대해서는 아련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어쨌건 저의 십대를 함께 보낸 친구니까요.  
 
통신무협에서 새롭다 하는 설정들…… 대부분 박스무협에서 다 실험했던 것들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런 것 아닐까요?
신무협도 사실 우연성을 배제한 리얼리티라는 껍질을 벗겨 보면 박스무협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료 조사와 실제성의 보완 때문에 전체의 스케일과 속도가 박스무협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숱하지요.  
 
좌백 님이 말씀하신 대로 무협은 무협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 구분은 하나의 의의를 지닐 뿐, 구무협적 요소가 과거로의 퇴행이나 신무협적 요소가 진정 무협다운 무협이라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이제 좌백 님의 그간의 작품을 둘러보죠.
대도오, 생사박, 야광충, 금강불괴, 독행표, 혈기린외전, 금전표, 무혼, 구룡쟁패, 그리고 지금 집필 중인 천마군림이 있지요.
 
신무협의 구분 준거가 되다시피 한 대도오와 생사박을 기점으로 좌백 님의 작품이 모두 신무협 스타일의 연속일까요?
신무협을 굳이 특징짓는다면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내면 묘사, 리얼리즘을 강조한 현실성 있는 전개, 고증에 철저한 중국대륙의 지형과 역사의 사실적 설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사건들의 조합이 인과성과 개연성의 뒷받침으로 보다 사실적이면서, 장면의 분할과 스케일은 오히려 작아졌다 할 수 있지요.  
 
야광충과 금강불괴는 오히려 박스무협의 회고와 반성이라는 측면이 두드러졌었지요. 야광충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금강불괴라는 박스무협 단골 소재의 반성이라 할까요.  
 
독행표는 이러한 반성이 슬며시 향수로 표현된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출발부터가 다분히 박스무협적이었죠. 우연히 주인공이 기인들을 만나 무공을 전수받게 됩니다. 그 속에서 자기 입지를 구축하고 인연의 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었지요. 그 2부라고 할 만한 금전표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졌습니다.  
 
혈기린외전은 얼마 전 드디어 3부가 완결되었지요. 주인공 왕일의 뒤틀린 삶에서 무림제일 고수 혈기린 2세가 되기까지의 일대기였죠. 참으로 스케일이 방대하고 사실적이었으며 야심찬 기획이었습니다. 협객이라는 의미에 대한 재조명이었죠. 무협이라는 이름대로 무와 협이  무협 소설의 근간입니다. 그 협에 대한 반성을 해 보겠다는 기획이었죠.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던 마무리이기도 합니다. 왕일이 과연 협의 의미를 알게 되었는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협에 대한 반성과 재조명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국무협사에 한 획을 그은 작업이라고 감히 평가합니다.  
 
구룡쟁패는 무협의 한국화를 시도한 작품이었죠. 조선의 왜란 직전이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었습니다. 역사 소설의 시도랄까요? 그래서 다분히 극사실적인 무공의 설정이 이어졌지요.  
아직 미완인 상태인지라 그 시도의 평가를 내릴 수는 없습니다.  
 
무혼은 개인적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할 수 없군요.  
 
자, 지금까지 본 좌백 님의 작품을 본다면…… 과연 무엇이 신무협이고 무엇이 구무협인지요.
그런 구분을 딱딱 내릴 수 있을까요?
좌백 님의 작품은 어느 곳이나 소위 구무협적인 설정이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좌백 님이 구무협적인 작품을 쓴다 라는 비판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이른바 구무협적인 요소가 무협소설에 어울리는 요소인가, 무협 소설에 해악적인 전근대적 요소가 아닌가 하는 구체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겠지요.  
저는 전술했다시피 그런 구무협적인 요소들도 개연성만 갖추고 있고 인과성만 충분하다면 소설의 완성도에 아무 해악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절벽신과 절세미장부에 짜증냈던 이유는 그러한 설정이 말이 안 되는 전개를 가질 때였죠. 까닭 없이 무조건 주인공에게 몸을 바치는 여인네와 절벽에서 떨어지기만 하면 기연을 얻는 주인공에 짜증난 거지, 반할 만해서 반하고, 절벽 기연이 고개 끄덕일 만큼 설득력이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이유로 천마군림은 무척 흥미 있습니다.  
시작부터가 그렇죠.  
마교 천하 운운 하고 정세를 먼저 설명해주는 박스무협 기법 그대로입니다. 전 그 서문을 보고 웃었죠. 아, 박스무협에 대한 본격적인 향수의 작품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흥미진진해졌죠. 도대체 어떻게 박스무협의 요소들을 갖고 개연성 있는 무협을 만들 것인가 하고요.  
 
호접몽 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좌백 님이 마흔이 되기 전, 스스로 그은 구무협, 신무협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양자를 화해시키는 작업을 천마군림을 통해 시도한다고요.  
무릎을 쳤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하고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이 긴 글은 사실 호접몽님이 말씀하신 한 부분을 제 나름대로 해석한 글입니다. 그리고 제가 바라보는 천마군림의 의의이기도 합니다.
 
칼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구상 중입니다.


2. 성장을 통해 본 작가의 변화

봉옥 님의 글을 보고 댓글을 달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습니다.  
작가에게 주인공이란 자신의 투사일 경우가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이 많이 반영될 것이라고요.  
 
좌백 님의 무협 소설을 제가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글의 전편에 흐르는 아웃사이더의 비장함 때문이었죠.  
무협계란 사실 기성 문단에서 삼류로 대접받는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영향이었을까요? 박스무협에서도 그런 감정을 많이 느껴가며 보았지요. 소외된 삶의 주인공이 결국은 천하를 제패한다는 내용은 그래서 진부함에도 많은 서민의 가슴을 달래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결국 사회에 대한 불만을 완화시키는 완충제 역할을 무협이 담당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80년대, 암흑시대 아닙니까? 정치적으로 대단히 억압적인 시대였죠. 그 때, 무협은 사회에 어떤 기능을 했을까요? 욕구의 배설구이며 불만의 완화제였다면 과도한 해석일까요?
 
좌백 님의 글에선 그런 80년대의 암흑기의 냄새가 났었지요. 그래서 좋아했습니다.  
이제 좌백 님이 글을 쓴 지 10여 년이 되가는군요.  
가정도 가지셨고, 어느새 불혹의 나이가 되어 갑니다.  
좌백 님의 그동안의 변화는 어땠을까요?
이 글에서는 좌백 님 글 주인공들의 변화를 보며 좌백 님의 변화를 추측해 보겠습니다. ^_^
 
초기작인 대도오와 생사박, 주인공 대도오와 흑저는 조금 다른 인물이지요.  
저는 생사박이 먼저 구상된 글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흑저 얘기를 하지요.  
 
흑저는 소림사에서 자신의 몸에 맞는 박투술을 개발하다 인명을 상하게 하고 파문됩니다.  
절근단맥에 처해지죠. 비틀어진 조막손과 망가진 경맥을 가지고 흑저는 자신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박투술을 개량해 갑니다.  
참으로 처절한 아웃사이더죠. 자신이 속해 있던 조직에서 버림받고 사회에 혼자 내동댕이쳐져 그래도 꿈틀대고 눈 부릅떠 자신의 길을 가려 합니다. 흑저…… 참 많이 좋아한 인물입니다.  
흑저는 조막손을 보완하기 위해 정교한 장갑을 손에 넣지요. 그러나 흑저의 박투가 완벽해진 것은 그 장갑을 벗어 던질 수 있을 때였습니다. 비틀어지고 망가진 몸이지만, 자신의 것만 가지고도 당당히 일어서는 자. 흑저입니다.  
 
대도오 역시 비사회적 인물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따르는 인물들에게 "나만 따르면 산다!"라고 말하고 그를 목숨 걸고 지키려는 인물입니다. 이 매력적인 반항아의 모습에서 조금은 단단해진 좌백 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나를 거부하면, 나도 거부한다. 난 내 갈 길을 가겠다. 상관마라 같은 패기와 당당함과 자존심이 느껴지지요. 그 글을 읽으며 매봉옥을 꿈꾸었습니다. 나도 나를 끌어주는 대도오가 있었으면, 매봉옥처럼 훨훨 날아올라 창공을 제압하게 되었으면.  
하지만 대도오가 되면 더 좋겠지요. ^_^
 
그 다음에 우리가 볼 인물이 야광충입니다. 야광충은 낮에 활동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인물입니다. 피를 마셔야만 해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야광충은 그 운명을 거부합니다.  
그러던 그가 주위 사람들이 위기에 처하자 피를 마십니다. 자신이 저주했던 흡혈귀가 되었지만 자신이 보호해야 할 사람들은 지키고야 말죠.  

한국 남자가 서른 살이 넘으면 많은 책임감이 생깁니다. 부모님은 나이 드시고 부양을 받으셔야 할 연세가 되십니다. 자신의 가족도 생기지요. 살다 보면 자신의 신념을 꺾어야 할 때도 생깁니다. 세상과 타협하는 자신에 절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야광충은 이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피를 마시지 않아도 해를 볼 수 있게끔 스스로를 단련하고 그를 어릴 때부터 음모의 도구로 삼았던 로부 옹고트의 마수를 스스로 박살 냅니다. 야광충은 결국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틀어질 뻔한 운명을 바로 잡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을 위해 희생했던 자신의 삶마저 원상태로 되돌리죠.  
후련했습니다. 삼십대 남자의 신념 지키기. ^------^l익.
 
그리고 우리의 주위엔 보다 안정된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주인공들이 출현했지요.  
금강불괴의 진자앙과 표사시리즈의 용유진이 그들입니다.  
전작의 주인공들에 비해 개성이 없는 시금털털한 인물이라 하는 분도 보았고 정통무협의 우유부단성 주인공들을 보는 듯하다고 투덜대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전 그들이 참 좋았습니다.  
드디어 좌백 님은 아웃사이더로서의 자신의 고민을 털어내고 들끓어 오르는 혈기가 잠잠해져 삶을 조금씩 관조하기 시작했나 보다 했지요.
진자앙과 용유진은 갈등지향적인 인물들이 아닙니다. 상당히 조화스러운 인물들이죠.
자신의 주위와 사회에 대해 반항하기 보다는 완성된 조화를 지향하는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무진장 고집이 세죠.
좌백 님은 이 시기에 많이 유해지셨지만, 아직도 고집 센 분이 아니었을까요? ^_^
 
그리고 혈기린외전의 왕일이 있습니다.  
왕일이란 캐릭터는 이제까지의 인물들의 종합이라 할 수 있을까요?
불우한 과거에 분노해 철저한 복수를 하는 비정한 사내이지만, 그의 속마음은 무척 여린 편입니다. 누이가 죽자 그는 삶의 이유를 상실한 채, 새로운 과제인 혈기린 찾기에 자기 몸을 내던지죠. 그가 혈기린 2세로 진정 서기까지는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해서요. 물론 1,2부와 3부 사이에는 많은 시간의 간극이 있습니다.
역으로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좌백 님은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히 고민을 한 것이 아닐까 하구요.  
 
1,2부와 3부 사이에 금전표가 있습니다. 구룡쟁패가 있고 무혼이 있지요.  
3부의 연재를 시작하고 마치면서 좌백 님은 무언가 결론을 내리신 듯합니다.
무협 작가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사내로서 자신에 대해서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천마군림의 연재 속도는 경탄할 지경이지요.  
무영은 그런 좌백 님의 온전한 페르소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철저히 반사회적 인물이던 무영이 무저갱에서 사회에 대해 알게 되지요. 비로소 정에 대해 눈뜨고 자신의 앞날에 대해 밑그림을 그려 갑니다. 어느새 결혼도 했지요.  
무영은 대단히 아웃사이더적인 인물인 듯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인사이더입니다.  
그가 사회에서 배제 받은 것은 그를 동굴에서 키운 부모의 탓이었지, 그의 의지는 아니었지요. 그가 사회로 편입된 것도 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어느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천마로서 천하에 군림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좌백 님이 드디어 세상과 사회에 열린 시각으로 조화를 모색키 시작했다는 전조로 받아들여집니다. 진정한 군림이 시작되려 하는 거죠. ^_^
 
이상, 생사박에서 천마군림까지 주인공과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꼭 맞아 떨어지진 않겠지요.
제가 그렇게 보고 있다는 말일 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요?


3. 15권중 3권 완결, 천마군림에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오랜만에 객관적으로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동안 주관적이었다는 말씀은 아니지만, 좀 섬연한 칼맛을 위해 객관적인 어미(-다)를 쓰겠다는 말이지요.
 
=0=0=0=0=0=0=0=0=0=

천마군림은 현재 15권에서 22권의 분량으로 기획되어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로 무협의 장편화에 대해 반대하는 편이다.  
무협 소설이란 하룻밤에 다 읽고 담배 한 대 피며 감상을 떠올리곤 단잠에 빠지는 버릇이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장편 무협 소설치고 성공했다고 생각한 무협 소설이 없는 편인지라. (이것은 무협시장의 고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용에 대한 평가이다.)
 
예전 박스 무협 시절, 지명도 높은 작가가 가끔 두 박스 연속으로 글을 내고는 했던 기억이 있다. 12권 분량이었으니, 지금 분량으로 치면 7,8권쯤 될 듯.  
 
무협 소설의 스토리 구조로 볼 때 장편이라고 해도 이 정도 분량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그 두 박스 분량의 무협도 사실은 별개의 두 소설이라고 봐도 좋은 게 태반이니.
1부의 끝에서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처하고, 2부에서 간신히 살아나 복수를 하는 내용.  
1부와 2부가 각각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을 갖는 시리즈라 할 수 있다.  
 
한때는 박스 무협을 보며 1,2권을 안보는 때가 있었다. 웬만큼 재밌지 않으면 3권부터 보았다. 그것만 읽어도 내용파악은 가능했으니. 1권에서야 뭐……, 한 소년이 태생적 불운에 휘말리고, 혈겁을 겪고, 2권에서 기연 만나 무공 익히고 3권이나 되어야 사건이 시작되니까.  
 
무협의 스토리는 대개 미시적 인물에서 출발해 거시적 갈등의 해결로 끝이 난다.  
대부분 거의 주인공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다니게 된다. 이렇게 쓰는 것이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방법이니까. 웬만큼 잘 쓰지 않으면 시야가 분산된 무협은 스토리만 있고 인물은 없는 실패작이 되기 쉽다. 사건 구성이 복잡하게 잘 되어 있어도 공감이 가는 인물이 없거나 입체적으로 성격을 잘 살린 인물이 없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렇게 한 사람의 뒤를 따라다니는 시간의 문제이다. 10권이 넘어가도록 한 인물의 조명만을 한다면, 아무리 스케일이 큰 무협이라도 지루하다. 그 수많은 등장인물 각각의 삶은 전혀 보이지도 않고 오직 한 사람만을 따라 다닌다. 배치된 사건은 별로 인과적이지 않아 보이기 쉽고, 4권 정도로 끝냈어도 하등 상관이 없는 주제와 내용을 뭐 하러 10여 권까지 끄나 하는 무협이 한둘이 아니다.
 
줄거리 요약하면 보통 이 정도.
주인공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고초를 겪었다. 원수도 생겼다. 무공을 익힌다. 점점 세진다. 주인공의 원수와 강호 전체의 정세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수를 갚다보니 강호 정세 전체를 뒤흔들게 된다. 강호를 평정한다. 주인공 떠난다.
 
이런 스토리를 갖고는 절대 10여 권까지 늘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10여 권이 넘으려면, 주인공 한 사람의 인생을 주욱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충돌이나 그 속의 인간 군상의 비극 같은 다면적인 내용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천마군림은 어떨까?
현재 천마군림은 31장까지 연재되었다. 4권에 돌입한 모양.  
 
세 권이라면, 15권 분량의 5분의 1.  
장편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일반적 구조를 따른다고 보았을 때 고작 발단의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스토리는?
천하의 정세는 마도의 세상이다. 31장에서 잠시 드러났지만 이 마도천하는 황권까지 좌우할 정도로 보이고, 고려가 등장하고 있으니 원이나 명나라가 시대 배경. 아니면, 가상의 왕조. 즉, 마도가 말 그대로 천하를 지배하고 있는 세상인 마도천하이다.  
정파는 완전히 지리멸렬해 있다. 천마도에 위배되어 그나마 살아남은 명숙들도 파리 목숨임이 드러났다. 정파의 마지막 명맥을 지킨 인물이 남궁운해로 나와 있으니, 마도에 대항하는 정파세력이란 아예 없다고 볼 수 있다. (혹시 어디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만)
 
주인공 무영은 동굴에서 소림과 무당의 마지막 혼을 이어받은 아이로 나온다. 무영은 늑대소년이나 타잔과는 다른 상태라 하겠다. 그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엄마 무당 장문인은 일찍 죽었지만, 아빠 소림 장문인이 그를 키웠으니.
익숙하진 않지만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고 머릿속에는 소림과 무당의 면면부절한 무공을 갖고 있는 존재가 무영이다.  
즉, 무영이야말로 멸망한 정파무림의 마지막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3권까지의 줄거리는 무영이 제강산에게 끌려와 남궁운해를 지키지 못하고 이화태양궁에서 사육되는 것이라 하겠다. 사실은 사육이 아닌 교육이 될 가능성이 비치고는 있지만, 그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교육받고 있으니 제강산에겐 여전히 혈채가 남아 있다. 비록 좋은 의도로 구속한다고 해도 자유를 빼앗은 것은 사실. 자신이 처음 접했던 친구(혹은 연인)도 빼앗았고. 제강산이 아무리 존경받을 만하다고 해도 무영에겐 적의의 대상이다. (그래서 제강산의 깊은 뜻을 안 무영이 감복했다 식으로 안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중)
 
3권까지 중 무영에 비견될 만큼 조명을 받은 인물은 제강산 정도를 들 수 있다. 이화태양종의 당대 종주로서 마도 천하를 이끈 공신이지만, 그 천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패도를 꿈꾸나 최소한의 안정은 보장한다 정도가 아닐까? 독자로 하여금 그 인물에게 공감을 일으킬 정도로 세부적으로, 중요하게 묘사된 인물은 제강산 정도가 아닐까 한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무영이 이화태양종 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다.  
아직 발단에 불과한 전개 상태다.  
 
앞으로 남은 분량이 너무 많으니 조연들의 조명이 부족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들 각각의 삶과 얽힘이 충분히 나올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있으니 오히려 발단 부분에서 조연들이 너무 튄다면 어색하지 않을까?  
 
문제는 천마군림이 안고 있는 세계관의 모호함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한 장편 소설 - 10권이 넘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그래, 그 정도 분량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이야기였어 하고 고개 끄덕여지는 - 은 서로 다른 인생관, 서로 다른 세계관이 충돌할 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가치관이 주욱 보여진다면, 그리 길게 쓸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것은 다만 복잡한 사건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3권 정도로 탁탁 끊으면서 시리즈물로 나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초류향 시리즈처럼.  
 
요즘 장편화되고 있는 소설에 끌리지 않는 지점이 바로 이 때문이다. 작가야 원래 설정이 그랬다고 하겠지만 독자의 경우 왜 그리 길게 써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사건이 복잡하게 꼬이고 있더라도 전달하는 주제가 일면적이라면, 지루할 뿐이다.
 
현재 천마군림에는 몇 가지 세계관의 단편들이 보이고 있다.  
마도천하의 세계관. 31장의 천마도의 모습에서 압축적으로 드러났지만, 적자생존 그 이상이 아니다. 힘 있는 놈 장땡! 이거다. 그 이면의 깊이는 아직 알 수 없다. 여기까지만으로 설정되었을 수도 있으니.  
 
그리고 제강산의 세계관. 패도를 추구하더라도 밑에 사람들의 안정된 삶은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 제강산의 방식이다. 패도정치라 할까?  
이화태양궁의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정치관을 대표하는 듯 보인다. 다분히 현실적인 설정이다. 우리 삶에 가깝다고나 할까?
 
나머지는 아직 그야말로 단편의 편린이라고 생각한다.  
손지백이나 남궁운해에게서 간혹 엿보이는 정파의식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그려지고 있지 못하다. 패배자의 파편만이 보일 뿐이다.
 
무저갱에서 무영을 돕고자 하는 홍진보나 종리매의 세계관도 사실은 제강산과 다르지 않다.  
그저 제강산이 아니라 무영을 돕고자 한다는 면이 틀리다고 할까?
 
그렇다면 무영은 어떨까? 무영은 이제 17 내지 18세로 보인다. 고딩의 나이. 무림에서 험하게 컸다고는 하지만 아직 자신의 세상을 보는 사회관이나 정치관이 확고해질 나이는 아니다. 진행형이라 보인다. 이 나이에 세상을 뒤흔들 세계관을 가진 천재 같지는 않으니까.
 
무영은 스토리의 진행상 제강산의 현 통치체계에도 동의하고 있지 않다. 천마도는 물론이고.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관의 전달자가 등장해야 하지 않을까? 마도나 패도가 아닌 세계관.  
이 세계관은 도가식의 무위철학이 될 수도 있다. 무영은 무당의 적자니까.
다만, 노자의 소국과민(小國寡民)으로 협소하게 해석하는 정치사상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소국과민을 작은 나라에 적은 국민식으로 해석하면 참 현실도피적이고 스케일 작은 비현실적 정치사상으로 보인다. 사실은 간섭을 최대한 적게 하고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정치관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작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리라고 생각한다.  
무영의 세계관이 곧 작가의 세계관을 대변하리라 예상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건, 근거하지 않건 간에 10권이 넘는 장편 소설의 생명은 바로 이 다양한 세계관의 충돌과 조화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적어도 그 중 하나의 세계관은 현실에 적실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는 이안의 "와호장룡"과 장예묘의 "영웅"을 대비시킬 때 확연히 드러난다.  
둘 다 영상미는 끝내 줬다. 그러나 와호장룡에는 있었고 영웅에는 없었던 것이 있다.  
바로 현실에 적실성을 둔 세계관이다.  
와호장룡의 세계관의 충돌은 역사성이 없었다. 그러나 공감할 수 있었다.  
영웅의 세계관은 역사적 전거에 충실했다. 그러나 공감할 수 없었다.  
영웅의 자객들이 왜 쓰러져 가는 나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지, 적들인 무사들이 왜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서로 예의를 차리는지, 천하라는 한 마디에 왜 자객들이 죽음을 택하는지…… 시대적 사회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영웅에 공감할 수 없다. 익숙해도 공감이 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그런 사회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장편이라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역사 무협이건, 기정 무협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10권이 넘는 장편다운 방대한 스케일의 구성과 그 복잡한 구도를 하나로 관통하고 있는 작가의 세계관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설득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천마군림엔 아직 그런 세계관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가 보는 세계관인가, 이것이 작가가 바라는 세계인가 하는 일관된 흐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것은 무영을 통해 드러나야 된다고 믿고 있다.  
 
이제 천마군림은 전체의 구도로 볼 때, 막 전개로 돌입하는 시점에 있다.  
작가 좌백의 불혹을 앞둔 세계관이 보고 싶다.  
15권이 넘고 22권이 넘어도 몽땅 사고 싶을 정도의 명작을 보고 싶다.  
진정 장편 소설다운 장편 무협 소설을 보고 싶다.  


4. 드뎌 찾았다. 천마군림 허점! (이게 맞을라나. T_T)

천마군림의 허점! 제목은 거창하군요. 이게 제대로 되려나. 쩝.
아래 모데라토 님과 댓글을 나누다가 퍼뜩 든 생각입니다.  
 
먼저 작은 부분 하나를 생각해 보죠.
현재 무영은 애꾸입니다. 아름답고 나름 효과 무궁할 듯한 의안을 끼었지만 어쨌건 한 눈이 안보이죠. 무영의 무공에 대해 풍검 님과 댓글 나누다 제가 이 독안 얘길 꺼냈습니다. 제가 무영의 무공에서 의문을 갖고 있는 부분이지요.
 
독안은 시야에 사각이 존재합니다. 치명적이죠. 설혹 약간 떨어지는 무공이라도 이 약점을 이용하면,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제 기억으로 이런 결투장면이 제시된 무협은 용대운 님의 유성검이 있습니다.
구중천의 두 세력 간의 공개 비무 장면이었는데, 무공이 좀 더 강한 쪽이 독안이었습니다. 무공이 좀 약한 사람은 척을 무기로 쓰는 수사였지요.
비무에서 계속 밀리던 수사는 어느 순간, 독안의 이목을 흩트리고 척을 공중으로 띄우죠. 비검 중 회륜술만 익혀도 충분할 겁니다.
그리고 독안에게 몸을 던져 돌진하지요.
잠시 시야가 흐트러졌던 독안이 눈앞의 상대를 맞이하여 치열한 공수공방이 있을 무렵, 회륜술로 날아온 척에 관자놀이를 격타당합니다. 시야가 가린 사각이라서 피하지 못하지요. 더구나, 비무의 절정기에 던져진 척에 미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수사가 용의주도한 방법을 썼던 걸로 기억납니다.
독안은 죽었습니다.
 
독안이란 무인에게 있어 대단한 콤플렉스죠.
모데라토님이 댓글로 초 절정에 들어간 무인은 감각을 초월하니 그 정도가 왜 문제가 되냐고 하셨습니다. 음……, 저는 무영이 독안이라는 사실이 좌백 님께 큰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무영이 독안이 된 시기를 보면, 환골탈태를 한 직후죠. 매소봉의 아비 운중룡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제강산이 무영의 용모를 숨기기 위한 설정으로 나옵니다.
 
그 후에 무영이 독안이 된 이후 운중룡과 함께 혈영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무공을 연구하는 장면이 있지요.
저는 이 장면에 반드시 독안이 된 이후의 대처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독안이 되었으니 사물의 초점도 틀려질 것이고 거리 감각이 완전히 다를 겁니다.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지요.
지금 장면대로라면, 무영은 자신의 한 눈이 사라진 것에 거의 육체적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혈영과 싸우기 전에 이 점이 보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무영은 깜깜한 동굴에서 15년을 살았으니, 어둠도 잘 보겠지요.
하지만, 어둠에 익숙한 것과 눈이 하나 없는 것은 다르지 않을 까요?
모데라토 님이 말씀하신 그런 경지에 무영이 도달해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거든요.
혈영과의 결투장면을 보면 무영의 싸움 방식은 야수적인 거친 조합에 불과했다고 봅니다.
 
무영의 무공은 앞으로 점점 업그레이드되겠지요. 그러나 독안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은요?
만일 천마군림의 무공 설정이 모데라토 님 말씀대로 시각을 초월한 초감각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면 상관이 없지만, 천마군림의 무공들은 제가 보기엔 다분히 실전적이던데요. 아예 장님이었던 야광충의 화영과 무영의 상황은 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무영의 치명적 약점이 아닐까요?
아니면 그게 약점이 아니란 것을 독자들에게 납득을 시키든가, 아니면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무공을 주던가 하는 겁니다.
무영에겐 점점 더 강한 적이 등장할 텐데 독안이란 약점이 점점 거대해질 듯하군요.  
시급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마군림은 박스무협의 자극적인 소재들을 다수 차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이상한 소재들 다~다뤄보겠어!"
라고 결심하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그 자극적인 소재의 차용들이 천마군림의 개연성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게 제가 생각하는 천마군림의 허점입니다.
이 소재들의 차용은 이미 독자의 몰입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뿐 아니라 개연성도 위협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하는 거구요.
 
어쩌면, 제가 했던 말을 벌써 어느 분이 댓글로 말씀하셔서 이미 좌백 님이 수정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
 
이것이 천마군림의 제일 큰 장점인데 아직 아무도 이야기 해주지 않는군요.
천마군림의 댓글맨들이 천마군림의 개연성을 지키고 있지요. 작가와 함께 고민하면서 말입니다. 인터넷의 장점이 최대한 발휘되고 있는 정말 바람직한 모범입니다.
 
댓글을 다는 독자들이 절제를 알고, 서로 토론도 하고, 작가와 함께 작품을 생각하는 그런 작품이 천마군림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허점이 연재 중에도 많이 보완될 것이라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재 중간 중간 출판사로 넘길 때 작가가 다시 한 번 교정하겠지요.
 
이제 제가 발견한 허점의 예에 대한 동도들의 말씀을 듣고 싶군요.
 
사실,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있는데 왠지 불길합니다. 영 자신이 붙질 않는군요. T_T

by 신독 | 2009/01/18 16:45 | 궤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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