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탐구란 운영자가 된 후, 어깨에 상당히 힘이 들어갔을 때 쓴 글.
지금 보면 취향이나 주관적 감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부분까지 개연성 부족이라 지적하며 엄청 잘난 척을 해댔다. -_-a
이 당시 좌백 님과 백야 님께서 집탐란이 엇나가는 듯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섭섭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지적이나 비판이 모두 작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때라서. ㅎ
그때는 두 분의 말씀에 끝내 승복하지 못했다.
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작가만의 고뇌가 있다는 말씀에 반발해 무협을 직접 쓰기도 했고, 신춘무협 공모에 응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내 글에 대한 비판을 당해 보니 알겠더라.
뻔히 알면서도 못 고치는 단점이 분명히 있다. 제대로 깨닫기 전에는 절대 극복 못하는 무형의 벽이랄까?
그걸 지적당하는 순간, 작가는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ㅎ
더구나 독자가 지적하는 어긋난 개연성의 상당 부분은 그 독자만의 취향이나 주관일 때가 많다.
그런 것들을 객관화시켜야 비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는 그런 걸 전혀 몰랐다.
나중에 호형호제했던 정환이에게 미안해 뺐던 글.
다시 봐도 부끄럽다. -_-
지금 보면 취향이나 주관적 감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부분까지 개연성 부족이라 지적하며 엄청 잘난 척을 해댔다. -_-a
이 당시 좌백 님과 백야 님께서 집탐란이 엇나가는 듯하다는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섭섭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 모든 지적이나 비판이 모두 작가에게 득이 되는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던 때라서. ㅎ
그때는 두 분의 말씀에 끝내 승복하지 못했다.
독자로서는 알 수 없는 작가만의 고뇌가 있다는 말씀에 반발해 무협을 직접 쓰기도 했고, 신춘무협 공모에 응모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내 글에 대한 비판을 당해 보니 알겠더라.
뻔히 알면서도 못 고치는 단점이 분명히 있다. 제대로 깨닫기 전에는 절대 극복 못하는 무형의 벽이랄까?
그걸 지적당하는 순간, 작가는 돌아버릴 지경이 된다. ㅎ
더구나 독자가 지적하는 어긋난 개연성의 상당 부분은 그 독자만의 취향이나 주관일 때가 많다.
그런 것들을 객관화시켜야 비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때는 그런 걸 전혀 몰랐다.
나중에 호형호제했던 정환이에게 미안해 뺐던 글.
다시 봐도 부끄럽다. -_-
[천년지로 전 5권 ㅣ홍정환| 청어람| 2003.02.28-2004.01.05]1. 1권 중 개연성에 관한 의문 네 가지
몸도 안 좋은데 이벤트까지 겹치다니…….
무리를 하고는 있지만……, 집탐이 너무 한산해서 1권까지 본 감상을 우선 올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집탐 참가자들이 홍염에서 연진우로 주인공이 바뀐 듯한 느낌들을 받으신 듯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1장의 비무편에서 너무나 멋지게 그려지는 유무용과 백리탄의 대화하며 그의 제자 홍염의 어리지만 진중한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이 넘이 쥔공이다!'고 찍게 만들지요.
1권에서 보이는 천년지로의 스토리라인은 독자의 흥미를 끌 요소가 충분합니다.
정통무협에 가까운 설정들이 눈에 띄지요.
요즘 같은 퓨전의 시대에는 오히려 신선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각 개별 사건들을 연결하거나 설명하는 가운데 개연성(蓋然性)이 떨어지는 곳이 자꾸 눈에 걸립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김병욱 님의 글을 보고 겨우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더군요.
김병욱 님의 글을 보면 <천년지로>는 대대적인 수정을 거친 듯합니다.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씹어보았을 것이고 이 잡듯이 뒤져서 고칠 부분을 철저히 고치려고 한 듯합니다.
각 개별 장면의 묘사들은 더할 수 없이 깨끗하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주인공이 홍염인지 하는 착각도 그 수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홍정환 님은 연진우의 불같고 열정적인 성격에 크게 애착을 갖고 주인공의 캐릭터로 만든 듯합니다. 그러나 도입부가 너무 괜찮았죠. 포기하기엔 아깝지 않았을까요?
제가 보기엔 이 도입부를 차라리 연진우에게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아버지와의 사냥 장면이라던가, 성격을 드러낼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랬다면 독자가 홍염과 연진우 사이에서 방황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홍염을 선택했던 독자가 떨어져나가는 일도 없었지 않을까 싶더군요. (물론, 이는 저의 짐작과 저의 판단일 뿐입니다. ^^;)
제가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본 몇 장면을 짚어보죠.
가) 연진우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
아버지 연도중과 호환을 맞는 장면이죠. 아주 박진감 넘치게 잘 구성된 장면입니다. 호랑이가 연도중을 죽일 때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지요.
아버지가 죽고 위기에 처한 연진우가 호랑이의 혀를 잡고 버티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위대한 왕>이라는 유명한 수렵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호랑이와 그를 쫓는 사냥꾼의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호랑이의 시선으로, 가끔 사냥꾼의 시선으로 그려지지요. 제가 아는 호랑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이 책에서 얻은 것입니다. 호랑이의 혀는 사포와 같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혀로 한 번 핥으면 먹이의 3킬로그램 정도를 혀만으로 도려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길고 튼튼하며 거칠다는 거지요.
호랑이의 이빨은 육식 동물 중 가장 발달된 형태랄까요?
길고 튼튼한데다 자를 수도 있지요. (악어의 경우는 먹이를 자를 수 없기 때문에 몸을 돌려서 먹이를 뜯어내지요.)
다른 고양이 과 동물에 비해 머리도 크기 때문에 턱의 힘도 굉장합니다.
인간의 머리 정도는 한 번 물면 구멍이 뻥 뚫리면서 부서집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이 장면에서 아버지가 죽은 것(호랑이 앞발에 머리가 날아가지요.)을 본 연진우가 분김에 호랑이의 입에 팔을 집어넣어 호랑이의 혀를 잡고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장면은 대단히 중요한 장면입니다. 연진우의 캐릭터를 독자의 뇌리에 콱 박아주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지요. 그런데,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전술했다시피, 호랑이의 혀는 열네 살의 소년(비록 어른만 한 덩치고 산에 단련되었다지만)이 손으로 잡고 버티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힘이 세지요.
거기다 혀를 잡은 연진우의 팔을 호랑이가 물고 둘이 싸웁니다.
이 호랑이는 단 일 격에 아버지의 머리를 박살낼 정도의 힘과 체구를 가진 대호입니다.
이 정도의 대호가 팔을 물고 끊어버리지 못할까요?
끊지 않더라도 공중으로 던져버릴 수는 없을까요?
(실제로 호랑이는 먹이를 강한 목을 이용하여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논답니다. 고양이들도 가끔 그러지요.)
팔을 문 채 땅바닥에 패대기칠 수는 없을까요?
앞발로 연진우의 몸을 후려칠 수는 없을까요?
비록 소년에게 혀를 잡혔다지만, 호랑이가 힘을 못 쓰고 일개 소년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제게는 그렇다는 말씀이지요. ^^;)
이어지는 장면에서 지나가던 한상욱이 호랑이를 때려잡고 연진우를 구해주자, 순박한 연진우는 산신령인줄 알고 경복하죠. (이것이 이어지는 두 번째 부분과 상관이 있습니다.)
나) 연진우의 성격 (초반 설명 부분에 대해)
연진우가 아직 주인공임을 모르는 독자들은 연진우의 성격을 어디에서 짐작할까요? 대부분 1의 상황 아닐까요? 용기 있지만 어른에게 예의바른 흔히 볼 수 있는 소년입니다.
그런데, 3장의 입문 편에서 한상욱에게 무공을 배우던 홍염과 연진우의 싸움 장면이 나옵니다. 연진우는 여기서 무척 독한 녀석으로 나옵니다.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홍염에게 이상할 정도로 적대감을 보이죠.
(물론, 작가는 연진우의 성격을 형상화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썼습니다. 홍염이 연진우보다 키가 작았다. 더 어려 보였다. 얌전하게 생겨서 연진우가 만만하게 보았다 등등)
문제는, 작가의 이런 장치들이 홍염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혀 안 먹힌다는 것이죠. 이 장면을 보는 독자들은 연진우의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합니다.
한상욱을 처음 보고 넙죽 절하며 산신령님 하던 순박한 녀석이 지보다 키 좀 작고 순하게 생겼다고 저한테 잘해 준 형한테 막 대합니다.
아이들의 치기로 이해하자라고 생각해도 왠지 몰입이 안 됩니다. 연진우가 맘에 안 듭니다.
독자는 홍염이 좋기 때문입니다. (1장의 그 단아한 홍염을 안 좋아할 사람 누구입니까?)
이러니, 연진우의 성격에서 개연성을 느낄 수 있을까요?
왜 이렇게 행동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싸움 장면에서 이미 작가는 연진우가 주인공임을 선언합니다.
홍염이 연진우에게 너무 심하게 했다고 미안함을 느끼지 않습니까? 바로 거기죠.
홍염은 반성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심하게 했지? 무공도 모르는 애한테.
그러다 문득 떠올리지요. 그 눈 때문이야 라고요.
눈(目)이라. 연진우의 눈에 대한 이야기는 이 장면 후에야 처음 나옵니다.
이후에도 연진우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중요한 장치로 나오지요. 살기 가득하고 늑대 같은 증오와 야성의 눈으로 묘사됩니다.
아……, 왜 이 눈의 묘사는 1의 부분에서는 없을까요? 그 곳에서 이미 있었다면, 연진우의 성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이 눈의 묘사와 함께 홍염고의 싸움장면에서 돌출한 연진우의 성격은 작품의 내내 이어집니다. 그런데, 처음 연진우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그런 연진우의 성격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성격이 바뀌고 갑자기 홍염에게 대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진우의 성격에서 왠지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다) 초목수호신군의 등장.
나중에 2권에서 초목수호신군에게서 연진우가 무공을 익히나 보더군요. 요약 줄거리를 보았습니다. 이를 위한 복선으로 4장에서 초목수호신군과 홍염, 연진우가 한 판 합니다.
아주 중요한 복선입니다. 그런데, 신군과의 만남과 그 다툼의 과정이 왠지 어색합니다.
어느 날, 한상욱이 아기 곰을 잡아옵니다. 그리고 나무를 당장 해오라고 두 아이를 산으로 보내지요. 산에서 어미 곰을 만납니다. 어미 곰을 죽입니다.
여기까지는 끄덕끄덕 했지요.
그런데 난데없이 벌거벗은 신군이 등장합니다. 홍염과 연진우는 신군과 대화하고 싸움을 하
며 신군이 미친놈이라 계속 말합니다. 별로 미친 사람 같지가 않더군요. 작가의 설명이 제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전국의 산하에는 홀로 사는 기인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저도 북한산과 도봉산에서 꽤 많이 그런 사람들을 만났지만 미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더군요. 그들이 키우던 짐승을 제가 죽였다면 그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싸우게 되더라도 미쳤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미안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홍염과 연진우는 신군의 광기를 너무나 쉽게 미친놈이라 보고 한 올의 죄책감이나 망설임 없이 덤벼들어 싸우더군요.
연지우 좀 팼다고 그리 자책하던 홍염까지도요.
그리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않던데…….
라) 전륜궁 소녀와의 격투 장면
이 장면을 읽으며 많은 독자들이 소녀를 욕했습니다. 저도 좀 그랬지요.
하지만 소녀 개인에 대한 감정만이 이 장면의 짜증을 유발하지는 않습니다.
한상욱은 1권 초반에서 연진우에게 "너를 천하제일고수로 만들어주겠다"고 할 만큼 강한 무공을 지닌 인물로 나옵니다.
그런데, 7장의 연진우는 너무나 무력합니다. 판판히 깨지지요.
한상욱은 그런 제자에게 전혀 개입하지 않습니다.
한상욱의 캐릭터는 참 묘하지요. 무뚝뚝하면서 정감 있는 인물이면서 강호의 정세를 똑똑히 파악하고 있는 지략가, 공동삼협과의 6장에서의 충돌도 말로 해결할 정도로 경험 많은 생강, 모든 음모를 알고 있는 듯한 여유. 그런 것들이 복합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한상욱의 이런 성격이 종종 모순을 일으킨다는 거지요.
한상욱과 연진우의 무공 수준도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10장에서 열쇠를 둘러싸고 격투가 벌어졌을 때, 한상욱의 모습은 천하제일고수를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절정고수의 면모입니다.
이전의 설명에서 독자가 갖고 있는 기대치를 무참히 꺾어 버리지요.
이 소녀와의 격투 이전, 연진우는 싸울 때마다 좌절을 겪다가 소녀에게 놀림을 받으며 억지로 전륜궁의 무공을 익히고 그것 때문에 나중에 사부의 고난을 자초하게 됩니다.
왜 소녀는 연진우에게 접근했을까요?
왜 전륜궁의 무공을 가르쳤을까요?
왜 연진우에게 호감을 보였을까요?
그러한 것들이 하나도 복선으로도 설명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주인공이 확실한 연진우가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바보같이 당하고 사부까지 곤란하게 만듭니다. 독자로선 참 답답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중국의 전통 무협의 방식입니다.
답답해서 미쳐버리게 하지요.
그 와중을 끌고 나가는 것은 전체 스토리의 유장함인데, <천년지로>는 전체 스토리가 또 급박하기 그지없습니다.
독자로선, 마음 둘 곳이 드물다 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제가 개연성에서 문제를 느낀 부분을 네 곳 말씀드렸습니다.
개인적으론, 지금 입천장에 구멍이 나서 목과 머리가 몹시 아픈 상태입니다.
혹시 그 아픔이 제 글에 영향을 미쳐 글이 좀 격하지는 않나 걱정도 해봅니다.
웬만하면 3권까지 다 읽고 글을 쓰려 했지만, 글도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다 몇 가지 사건과 이벤트 때문에 그나마도 읽지 못했군요.
오늘 집탐 글이 하나 밖에 올라오지 않아 속상해서 우선 한 편 올립니다.
다음번엔 보다 정제된 글로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2. 2권 중 개연성에 관한 의문 네 가지
천년지로의 2권은 11장 '우연은 기연을 낳고'부터 20장 '검에는 눈이 없고 매에는 장사 없다'까지입니다. 1권 분량의 연재 후, 작가가 요약해 놓은 줄거리대로 2권에서는 초목수호신군에게서 무공을 수습한 연진우가 소림사를 방문하고 의문의 세력에 쫓기다 무림맹으로 압송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역시 <천년지로>가 갖고 있는 '정통'의 향내가 물씬 배어있는 부분입니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지명의 유래나 각 파의 무공초식, 박투 장면의 세밀한 묘사 등이 근래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하지만, 역시 개연성에서 문제가 있는 부분이 눈에 띄는 군요.
몇 군데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나중에 설화라는 이름으로 밝혀지는 1권에서 등장한 소녀는 13장에서 다시 출현합니다.
이 설화라는 캐릭터는 중국무협에서 많이 차용되었던 세상을 조롱하는 약삭빠르고 영민한 천재소녀로 그려집니다. 세상을 희롱하는 재미로 자신의 재능을 사용하는 인물이죠. 연진우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그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단지 '유희'를 위해서임이 서술자에 의해
밝혀집니다. 설화를 대하는 연진우의 태도는 여자를 모르는 풋내기들이 그러하듯 서툴고 자신의 분기를 감당 못하는 우직함으로 그려집니다. 소녀에게 희롱당하는 소년의 이미지입니다.
1권에서 언뜻 풍겼던 음모 가득한 소녀의 태도는 13장에서 단순한 장난임이 밝혀지고 설화는 철모르는 천재소녀로 그려집니다. 1권에서 소림승려를 몇 마디로 쫓아내던 묘한 카리스마와 너무 대조되지요. 독자는 맥이 빠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1권에서 제시된 듯 보였던 복선은 다시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중국식 정통무협을 작가가 구사하고자 하였다면 캐릭터의 설정이 원래 그럴 수도 있으니까요. 단지 1권의 등장에 비해 좀 어색함이 느껴진달까요?
나) 17장에서 연진우는 형량보의 스승이었던 현각에게 금강경을 독송하는 법을 배우며 깨달음을 얻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말미에 연진우의 모습을 본 공손찬의 눈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표현되지요.
문제는 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입니다.
작가가 본문에서 언급했듯이 금강경은 32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 금강경의 32분은 같은 내용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지요. 금강경을 독송하라는 이유도 그 변주의 되새김 속에서 마음의 평정과 깨달음을 얻으라는 유명한 가르침이니까요.
현각은 연진우의 지나친 혈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금강경을 제대로 독송할 수 있게끔 가르치는 것으로 나옵니다. 불가에선 지금도 금강경을 암송하게 하지요. 이 금강경을 암송하고 현각과의 대화를 통해 연진우가 '반야'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듯 보입니다.
작가는 서술자로 등장해 반야의 뜻과 금강경의 이치를 요약해서 말해줍니다. 다분히 사전적 정리였죠.
현각은 연진우에게 제자인 형량보를 용서하지 못한 것을 오열하며 고백합니다. 집착을 버린다는 것은 인연을 끊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끊는 것이라 말하죠.
이 장면을 보고 연진우가 반야를 엿보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무협에서 불가나 유가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요. 이 장면이 잘 되어 있는 무협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사춘기 때 운 좋게 이러한 무협을 만난 사람은 불교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되지요.
선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다분히 시(詩)적입니다. 본래 인도의 불교는 원시불교를 넘어서는 논리적인 사변의 나열로 진행되었죠. 이것이 중국으로 넘어오며 중국의 도가사상과 만납니다. 중국인은 본래 산문보단 시적인 민족이라 할 수 있지요. 이렇게 탄생한 것이 선불교입니다. 선불교의 공안(화두)들은 대개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하지요. 그것은 시심(詩心)입니다.
추론이 아닌 직관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이지요. 이것에 가장 가까운 초기 경전 중의 하나가 금강경입니다.
그런데, <천년지로>의 이 장면은 시심을 전달하는데 실패하고 있지요. 서술자의 설명과 현각의 고백만으로 깨달음을 연진우가 얻었을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깨달음을 묘사했을 때는 그 장면을 읽은 독자가 정수리에서부터 자르르 떨리는 금강의 철퇴를 맞아야 합니다. 금강이란 뜻이 '다이아몬드'가 아닌 '불벼락'에 가깝기도 하지요. 물론 깨달음을 얻는 인물도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해줘야 합니다.
금강 님의 무협 중에 유명한 장면이 있지요. 주인공이 개봉성의 탑에 우연히 올랐다가 계단을 오르며 탑 내부에 새겨진 그림들을 통해 새로운 무공을 깨닫는 장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여태까지 읽어본 무협들 중 '깨달음'이란 것을 가장 잘 형상화해낸 장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장면은 서술자의 사전적 정의도 없고 주인공의 고백도 없습니다. 득도를 하기 일보 직전 계단이 끊겨 무아의 경지에서 벗어나며 한숨을 쉬는 것이 끝이지요. 그러나 그 장면을 읽는 독자는 전율합니다. 아……, 무공이란 저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요.
이 17장의 장면은 그러한 상황의 감동적인 묘사와 깨달음을 얻을 만한 시적인 장면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부분이죠.
다) 이어지는 18장에서 연진우는 첫 살인으로 인해 이성을 잃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장면의 문제점은 연진우가 이성을 잃는 이 중요한 장면이 공손찬의 1인칭 시점으로 연진우를 관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회상 장면으로요.
독자는 어리둥절합니다. 음……, 작가가 그렇다니 그런가 보군 하고 넘어가게 되지요.
이 장면은 세부적으로 묘사한다면 아주 극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왜 이런 식으로 처리했는지 의문입니다.
막 깨달음을 얻고 명경지수같이 가라앉은 연진우의 마음이 크게 흔들려 정신을 놓게 되는 거지요. 살인으로 인한 강렬한 충격과 그로 인해 이성을 잃어 폭주하고 실어증과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게 되는 장면입니다.
이 부분이 몇 문단의 공손찬의 회상으로 처리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아울러 개연성이 크게 손상 받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것도 그럴 법하지 않고 정신을 놓는 것도 그럴 법하지 않습니다.
작가가 그렇다고 하니 따라가는 거지요. 이래서는 독자를 몰입시킨 채로 끌고 갈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라) 20장에서 연진우는 제정신을 차립니다.
설화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핍박하던 노산을 죽이면서 제정신을 차리죠.
그리고는 처음 꺼내는 말이 "다시는 도망가지 않는다."입니다.
스토리만으로 본다면 적절한 말입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었고 공동삼협에게 몰릴 때도 도망쳤지요. 그러나 연진우는 도망으로 인해 자신이 비겁하다고 자기모멸에 빠진 장면이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이 대사는 도망갔기 때문에 정신을 잃은 것으로 보이지요.
독자는 공손찬의 회상으로 정신을 놓는 부분을 보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살인을 하면서 잃었던 정신이 다시 살인을 하며 되찾아진다는 설정도 의문스럽더군요.
사람이 정신을 놓는 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강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야겠지요.
연진우는 아버지가 눈앞에서 머리가 날아가며 죽어도 정신을 놓지 않았던 강인한 사내입니다. 성격도 굴강하고 혈기가 넘쳐 탈인 성격이지요.
이런 인물이 첫 살인이라고 해도 정신을 놓을 정도로 폭주할까요? 그가 익힌 내공이 마공이었으면 모르겠지만요.
정신을 놓는 장면도 다시 정신을 차리는 장면도 개연성이 떨어진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3. 3권 중 네 가지 의문
천년지로의 3권은 21장 '가는 자는 잡지 않는다'에서부터 26장 '밤은 깊어가고'까지 연재되어 있습니다. 3권의 절반이 넘는 연재분량이더군요. (작가가 10장을 1권으로 짜왔으니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3권 들어 1,2권보다 이야기 전개가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신변을 정리하시면서 힘을 축적하신 듯하더군요.
이왕지사, 8곳이나 칼을 대며 악역을 자청했으니, 오늘도 약간 칼을 대어 볼까요? (__)
가) 21장에서부터 이야기 전개는 안정된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상하게 작가의 개입이 많아졌더군요. 전지적 작가의 시점이니, 때로 작가가 직접 상황설명을 하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습니다. 무협의 특성상 어느 정도 필요하기도 하지요.
(첨보는 무공이 나올 때 설명을 해 줘야 하지요.)
문제는 그 상황설명이 너무 장황해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3권 들어 보이기 시작하는 특징 같더군요.
천년지로는 전지적 작가시점을 택하곤 있었지만 가끔 1인칭의 시점을 섞어가며 세련된 서술을 보여 주었는데, 돌연 작가의 개입이 너무 많아지는 듯합니다.
변사조의 설명이 너무 길어지면 사족처럼 느껴지지요. 특히, 21장에서 연진우가 설화의 사형
과 박투를 벌일 때 심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는 창강자(초목수호신군)가 설화에게 섭혼술을 거는 장면에서도 동일하다 하겠습니다. 부연설명이 너무 장황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 개연성에도 약간 문제가 있는 장면이 보입니다. 21장에서 연진우가 정신이 돌아와 노산을 죽일 때, 형량보의 진전을 거의 이은 발경술을 선보였었는데 설화의 사형과 박투를 벌일 땐 근골이 굳어 제대로 무공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납득이 잘 가지 않더군요.
거의 화경에 다른 것으로 묘사되어 나오다가 돌연 근골이 굳어 있다고 하니 이해가 가질 않는 것이죠.
다) 공손찬의 회상장면에서 창강자가 공손찬에게 연진우가 폭주를 했던 그 날 연진우에 대해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연진우를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 공손찬은 연진우를 알고 있었다'고 설명되더군요. 그런데, 창강자는 정의맹에서 연진우를 구하고 설화에게 섭혼술을 걸 때까지도 연진우의 이름을 모릅니다. 늑대새끼라고 부르지요. 과연 공손찬에게 어떻게 물어 보았을까요? 일케 일케 생긴 넘 봤냐구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창강자는 굉장히 화급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라) 22장 '다 나와!'에는 개방방주 고전이 등장하지요. 신창문 개파식을 마치고 한상욱과 귀환하던 연진우를 막아서 한상욱과 비무를 했습니다. 굉장히 적대적인 상황이었죠. 둘 다 내상을 입고 피를 머금은 채 헤어집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는 한상욱과 싸우다 서로 존경심을 느꼈다고 되어 있더군요.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언제 그들이 서로 존경하게 되었단 말인가…….
이상으로 또 (왜 각 권마다 네 가지 지적을 하게 되는 걸까? ㅡㅡㅋ) 네 가지 부분에 대해 말씀을 올렸습니다.
이제 각 권에 대한 이야기는 끝으로 하고 전체적으로 보도록 하지요.
4. 단암 님 글에 덧붙여
아아……, 호접 님에 이어서 단암 님이…… 흑.
구상 중이던 일초를 하나씩. 큭! (가슴이 맵소. ㅠㅠ)
단암 님 오래 기다렸습니다. ^_^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맞습니다. 정통무협으로서의 천년지로는 1권을 넘어서야 맛을 느낄 수 있는 게 사실이지요. 1권에서 손상 받은 개연성으로 인해 2권으로 진입하길 꺼리는 독자가 많다는 것이 이 글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홍염 때문입니다. 도입부의 단아함이 너무 크거든요. 저도 앞글에서 말씀드린 바 있지만, 1장의 대결장면을 뒤로 옮기든가 삭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연진우가 호랑이와 만나는 시간이 1장의 시간보다 3년 후라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문제죠.
3년 전이면 연진우는 아홉 살입니다. 동일한 시간대로 홍염의 1장을 살리면서 연진우의 아홉 살을 설정하는 것은 너무 큰 무리이죠.
이 장면이 좀 아깝더라도 다음 작품으로 미루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작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1장만 없고 3년 후 아버지와 연진우의 사냥 일상만 삽입해도 독자가 연진우에게 몰입하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겁니다.
어머니의 부재로 인해 연진우의 성격이 폭급한 면이 있다는 걸 강조한다면 동정심도 얻을 수 있지 않을 까요?
그리고 '천년지로'의 정체가 모호하다는데 동감을 표합니다.
이 글의 결정적인 갈등의 고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이 천년지로인데 3권이 다 되도록 아직 그 정체가 너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천년지로를 둘러싼 정의맹과 유무용, 전륜궁의 움직임이 너무 미약하거나 이해가 안가지요.
1권의 10장에서 천년지로가 처음 출현하는데 열쇠에 얽힌 비밀이라고만 나옵니다. 이 장에서 천년지로의 비밀을 좀 더 풀어놓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따로 그것의 쟁취를 위한 정의맹주와 구양군사의 장면도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극의 긴장을 이끌어 내는데 모자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천년지로 전체의 정통적인 흐름을 이끌어 유장함을 창출할 수 있는 기재가 없는 것이 천년지로의 가장 큰 단점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통을 표방하고 정통의 향기가 남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융회 관통하는 그 하나가 없다는 겁니다.
저는 그 하나가 바로 천년지로의 비밀을 둘러싼 각 조직의 암투와 그에 휩쓸린 연진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년지로는 개인의 성장을 위주로 하는 성장무협으로 남기에도 어정쩡하고 깨달음을 추구하는 달자의 무협으로도 어정쩡합니다.
천산에 비장된 보물의 단초, 열쇠 천년지로의 비밀이야말로 천년지로의 극적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열쇠가 아닐까요?
이를 위해 각 권의 몇 개의 장에 분산해서 천년지로에 대한 암시와 이를 노리는 정의맹과 전륜궁, 특히 유무용의 의도를 드러내고 이 와중에 휩쓸린 형노사와 한상욱의 비극을 드러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천년지로 3권을 모두 본 사람으로서, 감히 홍정환 님께 드리는 해법입니다.
5. 남녀 주인공에 대하여
흠……, 주로 캐릭터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셨군요.
무공의 설정에 대한 부분은 호접 님과 백면서생 님이 잘 말씀에 주셨으니 별로 덧붙일 게 없습니다. ^^
저는 연진우와 설화의 캐릭터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둘은 남녀 주인공입니다.
무협 소설은 대중문학이고 흥미를 줄 수 있는 요소가 있어야 요.
설화는 영웅문의 황용과 비슷한 캐릭터로 초반에 설정되어 있습니다.
연진우와 설화와의 관계에서 연진우의 다소 둔함은 곽정을 연상시킨달까요?
영웅문의 이 두 캐릭터는 굉장히 성공한 인물 형성입니다.
이후에 이 두 전형을 따른 많은 인물의 변형이 있었지요.
그런데, 천년지로의 남녀 주인공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독자를 강하게 흡입할 수 있는 매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가장 크게 그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첫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연진우와 설화의 첫인상은 둘 다 별로 호감이 가질 않습니다.
연진우의 경우는 처음에 주인공이라 찍고 있었던 홍염에게 대드느라고 짜증을 불러일으키지요.
저는 '싸가지 없는 놈이네…….'했습니다.
좀 읽다보니, 연진우가 주인공이더군요.
몰입도가 확 떨어졌지요.
설화의 경우는 그나마 정을 붙인 연진우를 이유 없이 괴롭히는 역할로 첫 등장을 합니다.
처음 보는 남자애를 단지 '유희-2권에서 연진우를 괴롭힌 이유가 이걸로 나오지요.'를 위해 치욕을 주고 어깨에 문신까지 합니다.
이 와중에서 그래도 나름대로 이해해 줄 수 있는 발랄함이라던가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깜찍함을 느끼지 못했지요.
'나한테 걸렸으면 그냥.‘이랬습니다.
저의 이 두 감정이 작가의 의도일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독자들의 반감을 산 다음 캐릭터의 매력을 점증시키는 방법도 있겠지요.
(설화의 경우엔 아직도 호감이 안갑니다. ㅡㅡ)
하지만, 첫인상이 중요합니다.
독자에게 어필하는 이 두 장면이 모두 부정적인 인식을 주기 때문에 천년지로를 쉽게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부분이 있습니다.
적어도 1권내에서 이들의 첫인상을 완전히 바꿀만한 호감을 줄 수 있는 사건이 있거나, 성격이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는 부연설명이나 상황설정이 있다던가, 아니면 아예 첫인상 자체를 바꾸는 게 어떨까도 싶더군요.
작품의 스토리 라인에 대해 함부로 충고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제가 꼭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력 주장하는 것도 아니구요.
다만 주인공들의 성격을 정통무협에 가깝게 설정하더라도 최소한 독자가 그들에게 지속적인 호감을 가질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답답함을 주는 장무기도 나름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게 했으니까요.(그래도 영웅문 3부는 제게 좀 지겹습니다. ㅡㅡ)
덧) 백면서생 님 글에 댓글 달다가 좀 길어지기도 하고 독립된 글로 올리는 게 더 좋다 싶어 답글로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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