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는 담 쌓고 살았지만, 물리학만큼은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고 좋아하기도 했다.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어릴 때 읽은 위인전, <아인슈타인> 때문.
어쩌면 그의 학창 시절 별명이 ‘고독한 늑대’라서 좋아한지도. ㅎ
진행 중인 내 글, <파워 리턴>은 처음 마법 설정을 구상할 때부터 SF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 초기 구상 중 읽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단편, ‘이해’에서 힌트를 얻어 마법관을 구상했다.
시작이 이랬던지라 소립자 운운하며 꽤나 물리학 지식들을 끌어다 설정에 녹였는데, 4권을 진행하다 보니 벽에 부딪쳤다.
4권 중에 최신 이론이라 할 ‘끈 이론’을 등장시켰는데, 인터넷 검색 정도로는 끈 이론에 대한 정확한 감이 오지 않는 거라.
책들을 뒤지다 발견한 게 이 책 <우주의 구조>였는데, 700쪽이 넘는 분량에 한숨부터 쉬었다. 이걸 언제 읽고 설정에 녹여?
그러나...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질질 끈 원고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꾸역꾸역 다 읽고 말았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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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아는 것을 전달하는 능력’은 엄연히 다르다. 좋은 학자라 해서 꼭 좋은 교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브라이언 그린은 이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대개의 물리학 책들은 이론을 설명할 때, 수식과 도표가 빠지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쉬운 비유나 차분한 설명을 필요로 하는데, 물리학자들의 사고 구조는 수학적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
그런데 놀랍게도 이 책에는 도표가 하나도 없다. 수식조차 관심 있는 사람만 참조하라며 후주로 돌렸을 정도. 이해를 돕는 여러 그림들은 물리학을 모르는 사람도 직관적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론서에 거부감이 없는 독자라면 물리학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어도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을 듯.
어느 과학이나 마찬가지지만, 과학적 이론화의 과정은 결국 연역적 사고를 거치기 때문에 당사자의 세계관이나 그가 속한 세계의 자연관, 철학, 사회사상 등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뉴턴의 시대에도 기독교적 세계관이 물리학을 좌우했고, 플라톤의 끈질긴 영향은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에게서도 발견된다.
양자물리학이 기존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했을 때는, 흥미롭게도 동양 사상이 많은 각광을 받았다. 양자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불교나 도교 철학은 일찍이 직관으로 갈파했으니까. 카프라의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도 이런 실정을 반영했던 책이다.
<두 문을 동시에 투과한다>는 선문답처럼 들리지만, 불교 서적의 제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장이야말로 양자물리학의 핵심을 가리킨다. 실제 하나의 양자는 두 개의 경로를 통과할 수 있다. 하나의 현실이 둘의 과거를 갖는 일이 양자의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이 책은 뉴턴부터 시작해 아인슈타인을 거쳐 현대의 끈 이론들이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을 통사적으로 풀어내면서도, 독자의 관심을 잡아챌 수 있도록 하나의 문제의식을 출발기점으로 삼아 퍼즐을 풀 듯 글을 전개했다.
저자의 화려한 입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시간과 공간에 대해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 세계의 통합을 추구하는 끈 이론과 대면하게 된다.
이처럼 미시적 세계관과 거시적 세계관의 통합을 꿈꾸는 것은 사회과학도 마찬가지라 무척 흥미 있었다. 양자의 세계와 실제 세계를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학 이론이 없었던 것처럼, 인간 개인과 거대 사회의 구조를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회과학 이론이 부재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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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 이론’은 참으로 많은 장르에서 써 먹은 장르의 보고이기도 하다.
공포 영화의 거장들이 모여 만든 <마스터즈 오브 호러> 의 한 에피소드에도 쓰였고,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2000년에 나온 영화 <프리퀀시>에도 주된 설정으로 쓰인 바 있다.
국내 장르 소설 중에는 <싸이키델리아>가 생각난다.
내가 알고 있던 끈 이론은 ‘M 이론’이 나오기 전의 초창기 버전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최신 물리학이 과학적으로 검증 중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많은 지식을 새롭게 얻을 수 있었다.
(아쉽게도... 1,2,3권에 쓴 시간관이 엉망이었다는 것 또한 깨달았지만. 이미 출판까지 된 글이라 이젠 어쩔 수가 없다. -_-)
차원 이동에 과학적 설명을 부여하고 싶은 판타지 작가라면 이 책을 보면 좋을 듯.
최신의 끈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4차원(3차원+시간) 대신, 11차원(10차원+시간)의 다차원 우주를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차원의 수가 이렇게 많냐 하면... 수학적 계산의 결과 우주가 저렇게 많은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고 끈 이론은 보고 있다. 끈 이론은 숨겨진 6개의 차원을 미시적 크기의 차원으로 보지만, 아예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상정하는 이론도 있다. 뭐, 이것이야말로 판타지 작가들이 예전부터 써먹은 설정이긴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미드 <넘버스>에 등장하는 물리학자 래리 박사가 생각나더라. 중년의 독신남 래리는 집도 없이 살 정도로 일상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우주를 탐구할 때만은 꿈꾸는 소년처럼 눈을 빛내는 맑은 사람이다.
카뮈를 인용하며 시작된 이 책은 래리 박사의 열정과 순수함, 철학적 몽상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 물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히려 19세기의 종합적 지식인인 철학자들과 닮았달까.
여태 본 순수과학 해설서들 중 손에 꼽을 만한 명작이다.
그의 또 다른 역작, <엘러건트 유니버스>도 꼭 읽어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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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물망아 2008/11/20 09:12 # 삭제 답글
원고, 넘기신 모양이네요.초끈이론, 제 지력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기에...
신독 2008/11/20 10:44 #
넘겼지요. 아주 긴 터널을 통과한 기분입니다. ㅎ
최진형 2008/11/26 21:04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저도 지금 우주의구조 처음부분 읽고있는데 정말 기대됩니다 ㅎㅎ엘러건트유니버스는 읽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우주의구조에서는 상대성이론을 간단히 언급만했지만(제가읽은쪽까지;)
엘러건트에서는 상대성이론을 기차그림과 광자그림을들어 매우자세히설명해서 정말 재미있고 이해도 잘됩니다 ㅎㅎ정말신기합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끈이론에대해서 아주자세히 설명하고있는데요 거기서 좀 어렵네요 ㅎㅎ 꼭 읽어보시기바랍니다
신독 2008/11/27 09:38 #
반갑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 분과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지요.
먼저 나온 <엘레건트 유니버스>를 먼저 읽었어야 했는데, 제 경우엔 순서가 바뀌었달까요. ㅎ
mj 2009/01/31 22:12 # 삭제 답글
저도 지금 우주의 구조 읽고 있는데 정말 감동받았어요 부분부분 알고있었던 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팽창하는것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도 엘레건트 유니버스를 먼저 읽었어야 했나 .. 이거 읽고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정말 좋은 책인것 같아요! 저도 넘버스 좋아하는데 ㅎㅎ 래리교수 귀여워요
신독 2009/02/01 00:14 #
어떤 느낌인지 이해합니다. 마치 저자의 통찰을 나눠 받는 느낌이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