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사나운 새벽 (전 7권)》 윤석진(이수영), 2004, 청어람 by 신독

작가명은 윤석진으로 되어 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수영 님의 작품이다.
몇 년 전에도 읽은 글을 우연찮게 다시 보게 되었는데, 몇 년 전에도 한 감탄을 또다시 하며 보았다.


<귀환병 이야기>와 <쿠베린> 등을 읽으며 감탄했던 것은, 남자가 아닌데도 남자를 너무 잘 그리기 때문이었다.
<사나운 새벽> 역시 마찬가지.
물론 여성 취향이 드러나는 살짝 ‘야오이’맛이 담긴 건 여전하지만, 어차피 이쪽에는 별 거부감 없는 편이고.

남자나 여자나 사람인 건 똑같지만, 보는 것과 쓰는 것은 다른 편이라... 이성異性의 인물을 그려 이성 독자에게 공감을 주는 것은 꽤 어렵다. 순정만화나 로맨스 남주 중 남자 같다 생각되는 넘을 만나기 힘든 것처럼.

물론, 이수영 님 글의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1인칭의 화자이기 때문에 공감을 주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약간만 삐딱선을 타면 완전히 외면하게 되는 게 또 1인칭 시점 아니던가.
내가 아는 한, 남자를 가장 남자답게 그리는 여성 작가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밀어붙여 마지막 권을 덮었을 때 ‘감동의 쓰나미’를 안겨 주는 ‘본좌급’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나 <사나운 새벽>의 경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독서폭을 가진 독자라면 전율을 느낄 정도가 아닐까.
장편을 쓰며 완결까지 이 정도의 힘을 갖고 밀어붙일 수 있는 소설가는 정말 보기 힘들다. (장르 불문, 남녀 불문, 순문학까지 본다 해도)

아들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그렇게 알고 있다), 연결권 시장이 아니었다면(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성이 출간 기간 때문에 토막 난달까), 연결권 출간의 텀이 길지 않았다면... 작품성뿐 아니라 상업성에서도 판타지의 전설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사후 평가야 사실 가정일 뿐이니, 팬으로서 느끼는 아쉬움이다)

<귀환병 이야기>의 이안이나 <쿠베린>의 주인공처럼, <사나운 새벽>의 록베더도 고독한 사람이다.
이안이 잊힌 자의 고독을 안고 산다면, 쿠베린은 남겨진 자의 고독을 안고 산다.
록베더의 고독은 ‘죽고 싶은 자’의 그것이다.

흑마법사가 되기 위해 마왕을 불러냈지만, 소중한 사람을 모두 잃은 록베더는 계약의 대가로 바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바친다.
죽은 자와 계약을 하게 된 마왕은 자신의 심장을 나누어 록베더를 살린다. 그래서 청염과 고독의 마왕 시스테이어스는 록베더와 운명 공동체로 묶여 버린다. 마왕이 죽으면 록베더도 죽고, 록베더가 죽으면 마왕도 죽는.
가히 판타지가 아니면 쓸 수 없고, 판타지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방식의 이야기랄까.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생명마저 포기한 사람.
마지막으로 남은 일이었던 복수마저 끝낸 사람.
그리하여 더는 살 이유가 없는 사람.
죽고 싶지만 죽지 않는, 마왕이 살아있는 한 영원히 살 수밖에 없는 사람.

그가 바로 흑마법사 록베더다.

5, 6권까지는 읽어야 밝혀지는 구성이지만, 마왕 시스테이어스는 자신과 생명을 나누어 가진 록베더를 시공을 초월하여 여러 번 되살린다. 흑마법사에 검의 마스터라지만, 인간은 결국 죽기 때문에.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사는 마왕의 심장을 가진 록베더는 불교의 윤회처럼 여러 번의 삶을 겪는다.

시스테이어스는 록베더를 되살릴 때마다 그의 기억을 지워 버린다. 그가 계속 살 수 있도록. 죽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러나 록베더는 계속 죽고 싶어한다.

기억을 잃은 자신의 정체를 계속하여 탐구하고, 마침내 자신의 모든 것을 깨닫고, 살 이유가 하나도 없음을 절감하며, 계속 죽은 자의 삶을 되풀이한다.
죽은 자의 윤회, 죽고 싶은 자의 윤회, 살 이유가 없는 자의 윤회이니... 지옥의 되풀이다.

가능하지 않은 현실을 구축하여, 그 속에서 인간을 말한달까.
현실이 아닌 판타지로 현실이 감춘 인간 진실을 파헤친달까.

5권에서 록베더는 스와디라는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구원의 여성상이라 분류하기엔, 성스럽지도 고결하지도 않은 여자.
일방의 구원이 아니라 기댈 수 있는 소통자와의 만남이다.
스와디로 인해 록베더는 긴긴 윤회의 삶 중 처음으로 살고 싶어진다.
아이도 낳고 행복을 만끽하며 백오십의 삶을 산다.
죽을 때가 되어 새로운 삶을 준비하여 찾아온 시스테이어스에게 청한다.
이 삶은 행복한 삶이니, 이 삶의 기억은 갖고 가게 해 달라고.
그는 드디어 행복한 추억을 갖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삶에서 록베더는 더는 자신의 정체를 찾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는 죽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 삶이 또 다른 고통을 줄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죽음의 이유를 줄 수도 있지만.
처음으로 시작의 기쁨을 즐길 수 있게 된 것.

배드 엔딩으로 끝났다면 어떤 소설이 되었을까 살짝 궁금하다.
만약 피할 수 없는 인과의 결과로 스와디가 죽었다면.
아마도 지옥의 윤회를 다룬 진정한 지옥의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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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둔저 2008/08/27 23:33 # 답글

    주인공보다 스와디가 더 마음에 들기도 하더군요. 사실 사나운 새벽은 2권인가 3권까지 보다가 끊고(이유는 기억 안 나네요) 거의 한 3~4년만에 4권부터 봤는데 아, 재밌더라구요. 한번에 쭈욱 달렸습니다. 앞 내용이 기억 안 나서 끙끙거리면서도 강렬한 매력이..
  • 신독 2008/08/28 00:37 #

    스와디는 아마, 이수영 님 소설의 남주 짝들 중에는 가장 비중이 높은 여주였지 않나 싶습니다. 남주에게 워낙 대단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기에 어울리는 여주를 만드는 게 쉽지 않지요. 현실에서는 브레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쯤? ㅎ
  • 흐르는 물 2008/08/28 02:07 # 답글

    판소 통틀어 최고의 여자 캐릭 중 하나로 꼽는 스와디 입니다.

    이수영씨가 책을 잘 쓰긴 하지만 그동안 산건 거의 없었는데
    이 '사나운 새벽'은 적당한 권수에 빠방한 내용이라
    지금가지 거진 10번은 읽은거 같네요.
  • 신독 2008/08/28 02:55 #

    저도 마음에 드는 글은 여러 번 읽는 편입니다만... 10번이라니 대단하시네요. @@
  • 다라나 2008/08/28 07:54 # 답글

    나는 처음에 쿠베린의 BL성에 질려서 그런지 이 작가 별로 느낌이 안 좋아. 그래서인지 사나운 새벽도 별로였어. 글이야 잘 쓰지만... ㅡ.ㅡ;;
  • 신독 2008/08/28 12:14 #

    전에 가인 님도 그런 말 하더군.
    아쉬운 일이야. 함께 즐길 수 없다니.

    * 형수님만 사랑하지 말고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해 봐. 그 정도 장벽은 가뿐히 넘을 수 있엄. ㅎㅎ
  • 쿠브 2008/12/11 08:02 # 삭제 답글

    학창시절 너무나 좋아했던 소설가인 이수영 문득 갑자기 생각이나 검색하다 오게 되었네요...

    중고시절 정말 좋아하던 작가 였는데

    아마 대학새내기때인가 쿠베린이 완결되고 어찌어찌 군입제대 후 소설과도 책방과도 많이 멀어져 살아왔는데 몇몇 작품이 계속 나오고 있었네요...정말 애독자신게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전 이수영님의 모든것을 좋아했지만 언급하셨다시피 역시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참 기막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쿠베린과 이안스터커 말고 제가 굉장히 좋아했던 인물이 있는데 짧게 단편으로 쓰셨던 "싸우는 사람"인가 하는 제목의 주인공 이름이 리스본 체그? 체크? 용병출신인물을 주인공으로 했었던 소설이었던걸로 아는데...그건 다 집필되셨는지도 궁금하네요...출판까진 힘들었을 작품같고...걍 갑자기 님글에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주저리주저리 두서없이 떠드네요 ^ㅡ^;;
    좋은글 잘봤어요...사나운새벽이라 한번 대여점이라도 한번 둘러봐야겠네요
  • 신독 2008/12/11 11:50 #

    세 아이의 어머니이시면서도 왕성한 집필을 하고 계시죠. 존경스러운 집중력을 가지셨다는... ^^;
    사나운 새벽 이후로도 책을 내셨답니다.
    계속 좋은 글을 써주시길 바랄 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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