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소설이란 본래 그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제목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드보일드 장르에 ‘안녕, 내 사랑’이라는 제목이 어울린다고 생각할 출판사는 지금도 없을 것이다. 그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이에 대한 챈들러의 말이 상당히 재미있다.
“나는 제목을 대차대조표의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제목을 부채라고 생각한다. 우리 중 어느 한 쪽이 틀렸겠지. 경영을 하는 건 그들이니까 내 쪽이 틀렸겠지만. 사실 나는 편집자, 출판업자, 연극ㆍ영화 제작자들이 가진, 대중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능력에 대해 어떤 경의의 마음도 갖고 있지 않다. 기록은 그들 생각과 정반대로 나온다. 나는 언제나 궁극적인 소비자, 즉 독자에게 나를 맞추고 중개인은 무시해 왔다. 이 나라에는 어느 정도는 좋은 교육을 받았고 또 어느 정도는 생활에서 배운 사람들이 아주 많고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제목에 관한 에피소드는 국내 장르 출판계에도 많이 있다. 한글 제목으로 무협 제목을 붙였다가 지인들이나 출판사의 만류로 제목을 바꾼 작가들이 몇이었던가.
챈들러의 표현, ‘대중이 원하는 바를 파악하는 능력’은 대중문화의 판매자들이라면 누구나 몇 시간은 떠들 수 있는 주제다. (대부분의 생산자들도 그렇다.)
이 소설, 《안녕, 내 사랑》은 초판 7,500부 가운데 2,900부만 팔렸다는데……, 챈들러는 판매 부진에 대해 출판사에 미안해하면서도 제목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 말했단다.
과연 챈들러다운 고집이랄까.
애초에 주인공 필립 말로가 애끓는 사랑을 하다 ‘안녕, 내 사랑’이라는 멘트를 날리는 결말은 생각하지도 않고 보았기 때문에, 결말이 주는 아련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안녕, 내 사랑》은 레이먼드 챈들러가 하드보일드의 음유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걸작이다.
무정한 살인지만 마음속 순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랑.
신분 상승을 위해 범죄도 불사하지만, 그래도 한 가닥 순수는 남겨둔 사랑.
진창에 빠진 자신과 가까이하기엔 너무 맑은 사람이라 생각하여 다가오기를 아예 거부하는 사랑.
사람은 참 여러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결코 사랑을 꿈꾸지 않을 거라 생각되는 사람조차도.
챈들러의 대표작으로 《안녕, 내 사랑》과 《기나긴 이별》 중 하나를 꼽는 사람이 많단다. 어떤 소설을 먼저 대했나, 취향이 어떠냐에 따라 갈린다는데 나로선 경중을 논하기 힘들더라.
여타의 장르 소설을 읽었을 때와 레이먼드 챈들러의 그것을 읽은 후에는 '울림'과 '여운'의 진폭이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는 인간을 깊이 아는 작가였고, 인간에 대한 냉소와 애정을 복합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아쉬워라.
이제 챈들러의 장편소설 중 읽지 않은 것이 셋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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