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마왕/이사카 코타로, 김소영, 2006(2005), (주)웅진씽크빅 by 신독

“마왕”은 두 형제가 한 챕터씩 이야기를 이끄는 옵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형 안도의 이야기인 ‘마왕’과 동생 준야의 이야기인 ‘호흡’.

첫 편인 ‘마왕’을 보다 곧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토다 유키히로의 만화 “키마이라”를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인 심정이어서.

‘파시즘의 도래 - 젊은 정치가를 통한’는 내가 시놉시스 작업을 하던 글의 제재다. 2년 전엔가 윤곽을 떠올렸고,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다 만화 “키마이라”를 보고 한숨을 쉬었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한 이야기와 너무 닮은 스토리라서.

‘한숨 돌리고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구상해야겠다’며 밀쳐두고 있었는데, “마왕”이 바로 그 제재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풀어낸 이야기였다. 한숨이 터지는 걸 어쩔 수 없더라.

책장을 덮고 있는 동안, 소설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더라.
내 글은 ‘정직하다’는 말을 듣는다.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에둘러 말하는 것에 나는 익숙하지 않다. 그냥 대놓고 말한다. 너 싫어, 밥맛이야.

소설가는 이래서는 안 된다. 능수능란해야 하고, 자유자재해야 한다. 그래야 감동도 줄 수 있고, 뒤통수도 칠 수 있으며, 자신이 말하고픈 바를 진정 강력하게 전달할 수 있다.

‘파시즘의 도래’라는 제재는 충분히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것이지만, 내 구상은 너무 정직했다. (만화“키마이라”도 그렇다. 뒤로 갈수록 이야기가 비틀댄다.)

이사카 코타로는 안도와 준야라는 평범하지만 약간의 초능력을 갖고 있는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장르적이면서도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펼쳤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은 소설가로서 이야기를 꾸밀 줄 아는구나라고.

토다 유키히로는 토다의 식으로, 이사카 코타로는 이사카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럼 나는 내 식대로 하면 그뿐이다.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고 다시 책장을 펼쳤다.

안도와 준야는 독자의 공감이 쉬운 평범한 사람들이다.
어느 날 문득 하찮다고도 말할 수 있는 초능력 하나를 얻게 되고, 이누카이라는 인물로 형상화된 파시즘의 도래에 경각심을 품게 된다.
그리고 둘 다 소시민으로서 이누카이에게 대항한다.
거대한 권력에 대항하는 소시민의 용기.

‘엉터리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슬로건은 바로 이것이다.
거대 담론이 사라진 세상에서 이만큼 파괴력 있는 외침이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조직 사회로 특화되었음에도 실제로는 개인화되어버린 일본적 슬로건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일본보다는 역동적이다. 사실은 그래서 더 위험하지만.
나의 슬로건은 아마도 여기에서 출발해야겠지.

같은 제재를 비슷한 시기에 고민했던 사람들이 바다 건너에 산다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가적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장르적 요소와 순문학적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하였더라.

“사신 치바”의 주인공 치바가 ‘마왕’편에 슬쩍 등장한다. 치바를 모르는 독자라면 ‘좀 이상한 캐릭터네’ 했을 법하게. 여전히 ‘사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더라. 반가웠다.

또 다른 소설에서 만날 수 있으니 캐릭터를 메모한다.

ㅇ 안도 : 맥가이버의 대사, ‘생각해, 생각해’를 입버릇처럼 내뱉는 남자. 30보 안에서 얼굴을 마주보면 상대에게 원하는 말을 내뱉게 할 수 있다.

ㅇ 준야 : 안도의 동생. 1/10의 확률을 1/1의 확률로 만들 수 있는 예지력의 소유자.

ㅇ 시오리 : 준야의 아내. 두 번째 이야기,‘호흡’을 이끄는 화자.

ㅇ 이누카이 : 일본의 총리대신. 파시스트.

ㅇ 앤더슨 : 귀화한 미국인. 일본인 아내는 죽었음.

ㅇ 두체 : 카페 두체의 지배인. 뇌일혈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자.

ㅇ 미츠요 : 시오리의 직장 동료. 묘하게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 다른 글에서 만날 것 같은 인물.

ㅇ 오오마에다 : 시오리의 직장 과장. 정의감 있는 모범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