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황기록, 《적월》 2004/5/26 by 신독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묵은 서향 속에서 노는 것은 꽤 오래된 취미다.
서울에 있는 유명하다는 헌책방은 거의 돌아보았고 사는 곳을 주변으로 단골들도 생겨났다.

그제쯤 자전거를 타고 고대 앞의 새한서점을 찾았다.
동네 헌책방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었고 서울 시내에서도 규모만 따진다면 제일 크다 할 수 있는 곳…….
황황하여라.
건물 두 개를 쓰던 그 헌책방은 음식점으로 바뀐 뒤였다.
익숙한 시간이 사라지고 새로운 시간이 들어서는 것일까?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 페달을 밟는 발을 쓸쓸하게 했다.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가 동네에 있는 모르던 헌책방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 보았다.
그곳은 유감스럽게도 살아있는 헌책방이 아니었다.
폐기처분이 될 뻔한 것을 상계동의 헌책방 주인이 인수한 곳이었다.
깔끔하긴 했으나 쓸 만한 책은 거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알아볼 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 없었다. 내가 가치를 모르는 책이야 있어도 장님 코끼리인 법.
허전하게 가게를 둘러보는데 익숙한 제목의 책이 나를 불렀다.

야설록·황기록 공저/1999. 8. 17/뫼/『적월』

겉표지의 속지를 보니 익히 아는 얼굴이 보인다.
증명사진에 흑백 명암을 준 모양이다. 주름살 하나 없는 그 얼굴은 내가 '형님'이라 부르는 그 사람의 얼굴이다. 무척 젊다. 99년이면 지금 내 나이랑 비슷한 시절. 그때의 사진일까, 아니면 그 전의?
대충 걸친 와이셔츠의 풀어진 단추가 그답다.
프로필이 재미있다.

황기록

맹독성 독사띠!
실제로 시선 속에
치명적인 독기를 품고 있다.

"일종의 구원이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그만의 독특한 정의다.
세상을 대신해, 사람을 대신해 그는 원고지 위에다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독기를 풀어놓는다. 그래도 가끔씩은, 아주 노골적으로 어금니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 평 남짓한 어두운 방 안,
오늘도 그는 매캐한 독향을 뿜으며 자판을 두드린다.
구원을 희구하는 처절한 몸짓이다.

누가 썼을까?
'구원'이라는 단어가 눈을 찌른다.

세 권짜리 『적월』을 챙겨 들었다.
이 몰락의 기운이 물씬한 헌책방에서 그래도 이걸 발견했으니 소득이 없진 않았다.
집에 와서 읽기 시작했다.

연참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지만 잠시 젖혔다.
어차피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서 글쟁이 하겠다고 선언한 바.
읽고 싶으면 읽는다.

『적월』은 두 번째 읽는 것이다.
두 번째 읽는 『적월』은 처음 읽을 때와 전혀 다른 독법으로 읽어갔다.

거의 매일 채팅방에서 만나며, 기록 형님과는 상당히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었다.
그 중에는 얼굴 마주 대하고 이야기한다면 어지간히 술 취하지 않은 이상 꺼내지 않았을 낯간지러운 과거사도 상당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갖고 있는 그에 대한 정감은 상당히 끈끈한 편이다.

그의 과거를 세세하게는 모른다.
그도 내 과거를 세세하게는 모른다.
전혀 다른 과거 속에 비슷한 냄새가 나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상실감과 분노. 깊숙이 정제된, 그래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분노. 나는 그에게서 그런 냄새를 맡았다.
그래서 그를 좋아했다.

초기에 쓰인 글에는 그야말로 자신의 진짜 모습이 담긴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더라도 제대로 피로 쓴 글이라면 당연히 그렇다.
『적월』은 과연 그러했다.
프로필에 나온 그대로 '구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인 '적월'은 명초의 대거유였던 실존인물 방효유의 자제로 설정되어 있다. 누구의 아들이냐는 이 글에서 사실 중요하지 않을 것이지만.
주인공 '적월'은 내가 보기엔 기록 형님의 화신, 그 자체였다.
나는 99년 서른다섯의 기록 형과 병나발 불며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발가벗긴 그의 속내를 그대로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적월은 원해서 싸우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 아니었다.
첫 기억은 양젖을 먹는 것이었고 그의 삶은 시작부터가 전쟁이었다.
천 번의 임무를 마치면 자유를 찾게 되는 운명.
마침내 자유를 찾았으나 그는 세상이 두려웠다.
싸움이 친근한 삶.
일상은 오히려 두려운 공포.
그는 자유를 얻어 초원을 떠났으나 붉은 달이 뜨는 광풍의 초원을 그리워한다. 그곳이 그에겐 고향이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기로 하며 내세운 조건은 고향인 초원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돌아가는 것. 그것이 적월에겐 '구원'이었을까?
영락을 죽이는 대가로 동료의 안전을 보장받는다.
친구의 안전을 지키는 것. 그것이 적월에게 '구원'이었을까?
영락을 죽이러 떠나는 그 밤, 동료로 여겼던 하영과 몸을 섞는다. 적월을 연모했던 하영은 그의 아이를 갖고 싶다 말한다. 하영이 적월에게 '구원'이었을까?

영락을 죽인 적월은 동료들이 있는 허주로 돌아온다.
동료들에게 돌아온 것일까. 하영에게 돌아온 것일까.
초원에 돌아가도 '구원'은 없다는 것을 안 것일까.
돌아온 그는 과연 '구원'받았을까.

기록 형님은 요즘 힘들어 보인다.
글도 힘들어 보이고 사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나는……,
나이로 봐도 한참 동생.
글쟁이 경력으로도 한참 후배.
내가 뭐라 말할 여지는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고도 나는 별 말을 못했다.
간단한 안부만 전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어젯밤부터 방금 전까지 서른다섯 때의 기록형과 술을 마셨다.
지금 나는 서른네 살이다.
한 살 차이면 개겨 볼 만한 나이다.

그 때의 기록 형한테 묻는다.
"그래, 구원은 받았수?"

적월은 단지 돌아왔을 뿐이다.
구원은 그에게 아직 먼 얘기다.

나는 적월이 구원받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게 여자건, 가족이건, 칼바람 속에 죽는 것이건 간에.

이 글은 그저 쓰고 싶어서 쓴 것이다.
이 글 보면, 기록 형님은 내게 대가리 박아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난 물론 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