弄走殘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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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 핏 언더 Six Feet Under, 2001

몇 년 전, 난생 처음 편두통을 경험한 후... 가끔씩 두통이라는 달갑지 않은 친구가 방문한다.
물리적 타격을 머리에 받은 건, 20대까진 꽤 흔했고 30대에는 드물었으며 요 근래에는 2년 전 자전거 전복 사고가 끝인데... 동일한 부위가 아파오니 고개가 갸웃거린다.
꿰맸던 곳은 분명 아닌데, 다쳤던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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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권해 요즘 본 드라마 중에 ☞<식스 핏 언더>가 있다.
장의사 집안을 다룬 독특한 드라마인데, <덱스터>로 익숙한 배우인 마이클 홀의 젊은 모습도 볼 수 있다. (이 친구, 연쇄살인마 연기뿐 아니라 게이 연기도 참 잘했더라. 남자들의 키스씬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이라면 안 보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키스가 다이긴 하지만, 상당히 리얼하니까)
미국의 장례 문화를 외형부터 내면까지 자세히 살필 수 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일 듯 싶다.



각 에피소드의 시작은 항상 누군가의 '죽음'이다.
블랙코미디를 지향한 드라마답게, 그 죽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으나 어딘가 항상 희극적이다.
홀로 사는 독신 여성이 식사를 하다 목이 막혀 질식사한다든가,
고층 건물 건설노동자가 맛없는 샌드위치를 도시락통에 던졌는데, 철제 도시락통이 아래로 떨어져 지나가던 행인이 머리에 맞아 죽는다든가.
목을 조르는 자위를 즐기다(숨이 막히면 통증과 함께 쾌감도 증가한다. 고통이나 공포와 쾌락은 인간의 몸에 비슷한 반응을 일으킨다), 멈추지 못해 그대로 죽는다든가.

일본 영화 <라쇼몽>에도 실감 나게 나온 바 있듯, 현실의 죽음 또한 비장한 드라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나 가족과 친지들에게는 비극이겠지만, 생판 남인 사람에게는 몰래 '쿡' 웃을 수 있을 정도의 죽음이나 사고는 꽤 흔하다.
나 또한 어어하다 헛웃음 나올 만큼 어이없이 다친 적이 더 많으니.

그러나... 희극적이든 비극적이든, 죽음의 결과는 항상 동일하다.
누군가의 오열과 슬픔, 분노가 잇따르고 그 뒤엔 상실의 절망과 시간의 치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다지 큰 갈등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드라마틱한 굴곡이 수놓아지지도 않았지만, <식스 핏 언더>는 아끼는 이의 죽음에 직면한 다양한 반응들을 담담히 그렸기에,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다.
관이 놓이는 공간, '땅속 6피트'. 제목 센스 또한 훌륭하고.

아마도... 해체되어 가는 우리네 가족만큼이나 미국의 가족은 조각조각 부서져 있나 보다. 미스터리 드라마가 대세인 시대에도 이 드라마가 미국에서 성공한 것을 보면.
슬픔과 비탄에 잠기면, 누구나 기댈 어깨가 필요해진다.
그조차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은 대개 어쩔 수 없이 고독해진 사람들이다.
이 드라마는 그런 이들에게 기이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준다.

뜨거운 여름에 어울리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요즘 같이 답답한 시절엔 강추하고 싶어진다.

by 신독 | 2009/06/19 14:04 | 잡설 | 트랙백 | 덧글(8)


진보는 강하고 멋져야 한다

미국 영화를 보다 보면, 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Respect.

존중, 존경, 주의, 관계 등으로 번역될 이 단어가 내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은 미국의 교도소를 다룬 어느 다큐멘터리 시청 이후였다.
죄수들 간의 인종 다툼과 폭력을 다룬 그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를 하는 제작자에게 죄수들이 털어 놓는 말 중에는, 저 ‘respect'라는 단어가 꽤 많이 섞여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respect'의 의미는 우리말의 ‘존중’쯤 되겠다.
벤치프레스와 덤벨로 자신의 몸을 단련하고, 문신으로 몸을 얼룩덜룩 치장한다. 시비는 절대 피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속한 그룹의 결정에는 두 말 없이 따른다.
이 모든 것이 죄수들 사이에서 ‘respect'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상대의 존중을 획득하지 못하면, 언제든 칼을 맞아 죽거나 세력 간 다툼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그 세계이니.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 보여야 할 것.
딱 이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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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진보정당은 죽산 조봉암(1898 - 1959)의 ‘진보당’에서 출발해 4·19 이후 몇몇 혁신 정당이 반짝했다가 맥이 끊겼으나 1987년을 기점으로 다시 쟁점화 되었다.
그리하여 1988년에 ‘민중의 당’이 창당되었다.
그러나 ‘민중의 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고, 해산 이후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을 모색하던 중, 통합파가 분리되어 이탈해 버렸다.
그래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1990년 ‘민중당’으로 몸을 세웠다.
그 후, ‘국민승리21’을 거쳐 2004년 ‘민주노동당’으로 첫 원내 진출을 이루었으나, 2008년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87년 이후 새롭게 시작된 대한민국 진보정당 역사의 이면에는 이탈과 재회, 배신과 재결합 등의 화려한 드라마가 숨 쉬고 있다.
이는 진보정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죽산 조봉암의 좌․우파를 넘나들었던 사상적 궤적과도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데, 기득권 세력에 비해 언제나 수적 열세에 처해 있던 이들에게는 숙명처럼 따르는 ‘연대’라는 화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대를 통한 제휴에는 언제나 ‘배신’이라는 꼬리표가 뒤따랐으며, 이는 함께 싸웠던 이들에게 ‘허탈감’과 ‘불신감’을 안겨 주곤 했다. 때로는 맹렬한 '적개심'까지.
어제의 동지가 그때까지 ‘보수 야당’이라 불렀던 이들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무엇을 느꼈겠는가.

때문에, 한때 어깨를 걸고 함께 행진했던 과거를 공유하면서도 ‘비판적 지지’라는 말에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생겨났다.
게다가 그 '비판적 지지자'들 중 일부는 '보수 야당'을 거쳐 반민주 세력의 표상이었던 '집권 여당'의 후신에까지 진출했고, 자리를 옮기자 옛 둥지였던 '보수 야당'을 향해 총을 쏘는 추태를 연출했다.
한때의 ‘동지’였던 이들이 ‘저격수’가 되어 자신의 심장에 총알을 박았던 것을 잊을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 중 일부가 아직도 저 한나라당에 있음에야.
한나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와 과거를 모두 씻은 자처럼 당당히 고개를 들고 다니는 것을 뻔히 본 데에야.

그래서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에 인색한 것을 나는 이해한다. 그 시절을 겪지 않았더라도 '비판적 지지'에 뒤이은 '배신'은 이후에도 똑같이 되풀이되었으니까. 그들은 노무현 정부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그에 못지 않은 실망을 경험했다.
더구나 그 시절을 겪었던 이들은 함께 깃발 들었던 동지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으로 배를 갈아타는 것을 보며 이 갈고 버텨 온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슴이 메말라 버렸다고 어찌 그들만을 탓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또 기억한다.
‘비판적 지지론’이 위세를 떨치고 이부영의 이탈로 휘청대면서도 ‘민중당’ 창당을 위해 온몸으로 뛰었던 1990년의 그들을.
그들은 그때 진정 외로웠다.
대국민선전이 목적이 아니라 ‘수권정당’이 당의 목표라 했을 때, ‘혁명의 배신자’라 비판하며 광고지마저 돌려 주기를 거부했던 학생들을 뒤로 하고 그들은 쓸쓸히 교문을 나서야 했다.
그렇게 세운 민중당이 씨앗이 되어 이제 민노당 5석, 진보신당 1석의 원내 진출을 이룬 것을 생각하면 그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수권정당’을 목표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좋겠다.
그때의 그들은 되풀이되는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미래를 설계하고자 했다.
선언적인 비판에 직면하고도 ‘운동권’이 아니라 의회에 진출하여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는 ‘정당’을 만들고자 했다.
‘수권’이란,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는 행위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대들의 눈은 ‘배신자’를 향하지 않고, ‘국민’을 향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수권정당'을 지향한다면, ‘비판적 지지’를 했던 ‘배신자’의 치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국민의 정서와 감정을 읽어 그들을 대변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노빠>라는 경멸적 어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의 가슴을 더는 헤집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이 비판하는 이들은 <노빠>일 뿐, 노무현의 죽음을 통해 각성된 국민 의식을 모욕함이 아니라고 비판적 미사여구로 치장하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 중에는 그대들의 이성적 비판을 비판으로 듣지 않을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그대들의 비판에 귀 기울일 냉철한 이성을 가진 노무현 정권의 비판자들보다는,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명박 정권과 함께 ‘최소한의 예의도 모르는’ 자들이라 그대들에게 혀를 찰 이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대들이 지지하는 진보정당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민의 슬픔에 동참해 함께 슬퍼하고 국민대회에 참가해 그 비통함을 온몸으로 공감하겠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뒤편에서는 계속, 때 이른 노무현 정권 평가와 함께 때 이른 노무현 전 대통령 비판이 속출하고 있다.
'수권정당'이 목표라면 그 비판이 대다수 국민의 정서와 함께가고 있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아야 옳지 않을까?
냉철한 비판이 애도의 촛불에 재를 뿌리는 행위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혹여 네거티브 전략에 따른 노무현 정권 비판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을 계도하려 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라 불러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뼈 아프게 비판한 바 있다.
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몰라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슬퍼하는 것이다.

그대들이 ‘수권정당’을 목표로 하는 정당의 지지자들이며 당원들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이 <노빠>를 비판할 때, <노빠>가 아니면서도 모욕감을 느낄 국민이 더 많을 수도 있음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respect'를 얻기 위해, 단단히 무장하고 억세게 단련하는 자는 사실은 아직 약한 자이다.
생존의 단계를 뛰어넘어 강자를 꿈꾸는 자들은 섣불리 칼을 들이대거나 이를 드러내 위협하지 않는다.
존중을 얻기 위해 존중함이야말로 강자를 꿈꾸는 자가 가져야 할 미덕이 아닐까?
국민에게 강자로 인식되어 진정한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존중의 미덕을 발휘해 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강자가 갖추어야 할 품격과 멋 아닐까?
비판의 칼이 향할 곳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아니라 현 정권이다.

나는 진정으로, 진보정당이 수권의 강자로 서는 것을 보고 싶다.


by 신독 | 2009/06/08 09:07 | 잡설 | 트랙백 | 덧글(14)


저작권법으로 <아고라> 폐쇄? 민주당과 민노당은 반성해야 한다

이글루스 뉴스비평 밸리에 이런 글이 떴다.
마음에 안드는 인터넷 커뮤니티 문닫게 하는 법

이 글을 쓰신 분에겐 하등의 유감도 없다.
대표적인 인터넷 토론 공간인 다음 <아고라>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순수한 걱정에서 하신 말씀이니.
하지만, 이 담론의 유포를 시작한 이 사람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



지난 3월 10일, 이종걸 의원은 아고라에 이런 글을 올렸다.
다음의 ‘아고라’도 폐쇄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작권법개정안(강승규 의원안) 133조의 2의 4항(일명‘삼진아웃제’)에 의해 게시판중 불법 복제물 등의 삭제 또는 전송 중단의 명령을 3회 이상 받은 게시판은 문화부 장관의 명령으로 정지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저작권 보호의 강화로 인한 일반인의 표현의 자유 위축 뿐 아니라 사업자의 영업의 자유 및 재산권도 제한하게 되었다. 또한 합법적인 게시판 이용자의 권리도 침해되고 게시판이 일정기간 정지됨으로 인해 일반인의 정보 접근권도 제한되게 되어 한마디로 비례 원칙에 위반되는 과잉 규제인 것입니다.

게시판에 불법 복제물이 몇 건 올라왔다고 해서 특정 게시판을 불법 복제물의 온상이라고 볼 근거도 없을 뿐더러, 더더욱 이를 빌미로 게시판을 정지하게 된다면 불법 복제물과 관련 없는 수많은 이용자들의 소통 공간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문제 삼은 저작권법개정안 133조 2의 4항 원문은 이렇다.

제133조의2(정보통신망을 통한 불법복제물의 삭제명령 등)
④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정보통신망에 개설된 게시판(「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9호의 게시판을 말한다. 이하 같다)중 제1항제2호의 명령이 3회 이상 내려진 게시판으로서 해당 게시판의 형태, 게시되는 복제물의 양이나 성격 등에 비추어 해당 게시판이 저작권 등의 이용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해당 게시판 서비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


이 중, 제1항제2호의 명령이란 이것을 말한다.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를 침해하는 복제물(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전송되는 복제물은 제외한다) 또는 저작물등의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하게 하기 위하여 제작된 기기·장치 및 프로그램을 발견한 때에는 대통령령이 정한 절차 및 방법에 따라 관계 공무원으로 하여금 이를 수거하여 폐기하게 할 수 있다.
②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제1항의 규정에 따른 업무를 대통령령이 정한 단체에 위탁할 수 있다. 이 경우 이에 종사하는 자는 공무원으로 본다.


->인용이 잘못되어 있다는 빈칸 님의 지적에 찾아보니, 잘못 인용한 것이 맞더군요. 수정합니다.

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를 침해하는 복제물 또는 정보,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하게 하는 프로그램 또는 정보(이하 “불법복제물등”이라 한다)가 전송되는 경우에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다음 각 호의 조치를 할 것을 명할 수 있다.
2. 불법복제물등의 삭제 또는 전송 중단

현재의 저작권법은 인터넷 환경에서 무차별적으로 불법복제되는 저작물 때문에 창작 의지마저 꺾이게 된 만화계의 청원으로 시작되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끝에 2006년 '전부개정'을 한 것이 모태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그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아, 각종 인터넷 방송국과 거대 포털 사이트, 웹하드업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저작물들이 불법복제되어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제일 큰 문제는, 저작권법을 교묘하게 피하는 <온라인서비스업체>들이었다.
장사가 되니 웹하드업체들은 계속 생긴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구할 수 있는 불법 복제물은 지금도 상당한 수다. 영화쪽 2차 시장인 DVD시장은 DVD불법복제와 인터넷 방송국 때문에 시장 자체가 붕괴되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저작권법으로는 온라인서비스업체들을 제재할 수 없으니, 저작권자들이 직접 나서 법무법인과 계약을 맺어 개별 저작권법 위반자를 무더기 고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7년에 저작권법 위반자의 자살이 있은 후, 이 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했다.

현재의 저작권법은 다시 후퇴 개정하여, 개별 위반자에게 민방위 교육 같은 '저작권법 교육'을 실시 중이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 정권이 바뀌기 전의 문화관광부는 각계의 저작권자들과 씨름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그들이 저작권자들에게 언제나 선언적으로 권했던 것은, <온라인서비스업체>들과 손잡고 이윤을 공유하는 방향이었다.

저작권은 '저작인격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엄연히 '저작재산권'이 포함되어 있다.
저작권자들은 자신의 '재산권'을 타의에 의해 자본과 공유하라는 압박을 받아 왔던 것이다.
자신의 '재산권'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자들과. 그것이 가능하도록 방조하며 부당이득의 일부를 가져가고 있는 <온라인서비스업체>들과 말이다.
대한민국의 저작권자들은 '도둑'과 그들의 활동처인 '도둑 길드'와 손을 잡으라는 점잖은 권고를 귀가 아프게 들어왔던 것이다.

이종걸 의원이 호들갑스럽게 비판한 강승규 의원 등의 저작권법 개정안은, 2007년 이후 각계의 저작권자들과 문체부, 대검찰청 등이 오랜 기간 협의를 거쳤던 '일종의 타협안'이다.
현재 시행 중인, 저작권법 위반자들에게 세 번의 기회를 주는 방안은, 저작권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권을 도둑질한 이를 세 번이나 용서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강승규 의원 등의 그 개정안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저작권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온라인서비스업체>에 대한 제재가 약간이나마 보장된 것이다.
이렇듯, 이 개정안은 정치 논리와는 무관하게 저작권자와 주무부서의 줄다리기 협의를 통해 나온 의안이다.

그런데 이종걸 의원이 아고라에 저런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오늘 뉴스 밸리에 뜬 글의 논리는 그동안 이 개정안을 반대했던 이들이 퍼뜨린 정치적 논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이는 음모론에 기반한 저열한 논리다.
여기에는 그동안 저작권자들의 불법 복제 저작물 삭제 요구에 늘상 느슨히 방관해 왔던 <온라인서비스업체>의 천편일률적 답변까지 그대로 첨가되어 있다.

갑자기 저작권법은 <새로운 인터넷 통제법>으로 둔갑되어 정치 논리로 재단되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이에 머물지 않았다.
언론과 아고라 논객들의 지지에 힘입어 최문순․홍재형․송민순․이미경․박은수․이종걸․ 최철국․김재윤․김영진 등 9인의 국회의원이 민노당의 권영길 의원과 함께 2009년 4월 2일 저작권법 일부개정안까지 국회에 접수시켰다.

이 개정안에는 저작권자에 대한 일고의 배려도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들어간 <온라인서비스업체>에 대한 규정을 무참히도 짓밟은 격이니.

이 개정안은 기존의 102조 1항을 수정했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저작물 등의 복제·전송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물 등의 복제·전송으로 인하여 그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가 침해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해 복제·전송을 방지하거나 중단시킨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 의한 저작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에 관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이 중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를 '면제한다'로 바꾸었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는 오직 법무법인과 계약해 개별적으로 위반자를 고소하지 않으면, 자신의 저작권을 지킬 방법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102조에 3항을 신설해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제1항과 제2항에 따른 책임의 면제를 위하여 이 법이 정한 기술적 보호조치 이외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권리침해 행위와 관련이 되거나 권리침해 행위의 의심이 있는지를 관찰 또는 조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로 인해,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자신의 사이트에서 저작권에 대한 권리 침해 행위가 있는지를 관찰 또는 조사할 의무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작권자에는 무척이나 중요한 104조를 아예 삭제해 버린 개정안이라니.

다른 사람들 상호 간에 컴퓨터 등을 이용하여 저작물 등을 전송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이하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라 한다)는 권리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당해 저작물 등의 불법적인 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인 조치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권리자의 요청 및 필요한 조치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현재, 많은 저작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조 내지 단독으로 온라인서비스업체들에게 보호해야 할 저작물 목록을 보낸다.
미온적이거나 비협조적이긴 하지만, 현행법상 온라인서비스업체들은 이 요구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다. 바로 이 104조 덕분이다.
그런데 이 104조를 삭제하는 것이 민주당과 민노당이 손잡고 내놓은 저작권법개정안인 것이다.

아고라가 저작권법 때문에 폐쇄될 것 같은가?
아고라 같은 토론 게시판에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불법 복제 만화, 소설, 영화, 음악 등을 올린단 말인가?
설사 웹에 떠도는 저 음모론처럼 아고라 폐쇄를 간절히 원하는 이명박 정권의 알바가 불법 복제 저작물을 은밀히 올린다고 해 보자.
아고라처럼 트래픽 수를 엄청나게 높여 주는 게시판을 다음 같은 거대 온라인서비스업체가 3번 경고 먹을 때까지 방치한다고?
이게 말이 되는 논리인가?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기 위한 여러 악법을 MB 정부가 준비 중인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저작권법'은 아니다. 어째서 이 법이 <인터넷 통제법>으로 비약되었는지 나로서는 오리무중일 뿐이다. 이종걸 의원이 도대체 어떤 사고 과정을 통해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인지도.

민주당은 반성해야 한다.
저작자의 정당한 권리 보호는 외면한 채, 민주와 자유를 외치겠다는 것인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민노당은 더욱 반성해야 한다.
얄팍한 자본의 술책에 넘어가 그들의 편에 붙어 버린 격이다. 몰랐다고 변명하지 마라. 몰랐다면 그건 더 쪽팔린 거다.

다음 아고라에 이종걸 의원이 해당글을 올리고 이 개정안을 넣기까지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당신들은 대한민국 저작자들의 고충을 알아보기라도 한 것인가?
2006년에 왜 저작권법이 '전부개정'되었는지 그 배경을 관계자들에게 들어본 적은 있는가?
정치 논리로 이따위 졸속 개정안을 내놓고는, 온라인서비스업체들의 일방적 비호 세력이 되겠다는 말인가?

진지하게 묻는다. 민주당과 민노당은 대한민국 저작자들의 공공의 적이 될 생각인지.
부디, 심각하게 반성하고 저 졸속 개정안을 철회하기 바란다.
정치논리로 저작권법을 난도질하려 하는가?

* 이런 시국, 이런 정국에 이런 글을 쓰게 되어 말할 수 없이 유감스럽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 아래 동영상은 장르소설 연재 사이트 《문피아》의 작가 신연우 님이 만든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 이 저작권법 개정안의 문제점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미디어 악법' 통과는 저도 반대합니다만, 이 개정안으로 반대하는 것에는 결단코 반대입니다.





by 신독 | 2009/06/04 23:15 | 잡설 | 트랙백(2) | 핑백(1) | 덧글(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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