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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글보다는 사실 그림이 더 좋은, 《별, by 알퐁스 도데》



《별》 알퐁스 도데(1840.5.13~1897.12.16)| 최복현 역| 인디북| 2008.03.10 | 271p


알퐁스 도데의 단편 중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별'을 표제로 한 단편집이다. 23편의 단편들이 정중하고도 다감한 문체로 번역되었다. (화자가 독자를 향해 '-습니다' 같은 존칭 어미를 구사하는 번역이다. 동화스러운 서정성을 강조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도데의 글에 담긴 풍자성이 약화되는 단점이 있더라)

아름다운 아가씨 스테파네트를 향한 순수한(혹은 좀 멍청한 -_-a) 사랑 이야기, '별'만 생각한다면, 알퐁스 도데가 문예사조상 ‘자연주의’ 계열에 속하는 작가라는 건 꽤나 의외였다.

‘낭만주의’에 반하여 일어난 19세기의 문예사조 ‘자연주의’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한다.
에밀 졸라를 필두로 한 이 사조의 작가들은 인간의 성격을 '유전'과 '사회적 환경'이 결정한다고 믿었다.
비슷한, 혹은 더 포괄적이라 할 사조인 '사실주의'가 주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데 반해, '자연주의'는 사실적인 묘사뿐 아니라 주체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환경이나 유전 등의 숨은 힘들을 ‘과학적으로’ 서술하려 시도했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둘러싼 사회 환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것이 인물에 끼치는 영향을 과학도와 같은 태도로 관찰하며 창작을 했달까?
알퐁스 도데의 단편들은 서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지만, 그 또한 ‘자연주의’ 계열의 작가라는 건 이 책에 실린 여러 단편들에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 작가인 김동인과 염상섭, 현진건의 몇몇 단편도 이 자연주의 계열로 분류되는데, 이 당시 작가들의 단편들이 요새 소설들보다 훨 재미있다)

창작의 배후에 존재하는 '문예사조 - 한 시대를 통하여 문예를 창작하는 데에 근원이 되는 사상의 흐름'를 의식하며, 그에 대해 격론을 벌이는 창작자들을 상상하면 왠지 흥겹다. (모든 창작자가 이런 토론을 즐기지는 않았겠지만)
알퐁스 도데는 '자연주의' 사조에 동의하기는 했겠지만, 그것에 착목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씩 보이는 자연주의적 단편보다는,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나 '별'처럼, 자신의 고향 프로방스를 떠올리며 만든 이야기들이 훨씬 더 매력적이니까.
아마도 그는 창작이론을 토론하는 격론의 와중, 몰래 와인을 홀짝이며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아니었을까나.

표지에 쓰인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이 참 멋진 책.
(나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들보다 사실... 고흐의 이 그림이 더 좋더라. 미안해요, 알퐁스. =.=)

1.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
2. 아를의 여인
3. 마지막 수업
4. 스갱 씨의 염소
5. 별
6. 상기네르의 등대
7. 산문으로 쓴 환상시
8. 어머니
9. 프랑스의 선녀
10. 어린 자고새의 놀람
11. 바닷가의 추수
12. 팔 집
13. 조그만 파이
14. 겨울
15. 초연의 저녁
16. 8호 막사의 콘서트
17. 페르-라셰즈 묘지의 전쟁
18. 아르튀르
19. 당구
20. 교황님이 돌아가셨다
21. 크리스마스 이야기
22. 마지막 책
23. 세 번의 경고

by 신독 | 2009/10/31 15:42 | 궤적 | 트랙백 | 덧글(0)


[감상] 미국 독립의 변주,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Moon is a harsh mistress》 로버트 A.하인라인| 안정희 역| 황금가지| 2009.04.10 (1966) | 582p

하인라인은 SF의 지평을 일반 독자에게까지 넓혔다 평가받는 작가이지만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말할 수 있는 컴퓨터’라는 아이디어 하나로(1966년 당시엔 무척이나 참신했을) 달의 '독립'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이끌어냈다.
읽기 전, 지구의 식민지인 달의 '혁명'을 다룬 글이라 들어 무지 기대했지만... '혁명'이라기보다는 '독립'이라 봐야 하겠더라.
주인공 마누엘 가르시아의 멘토라고 할 무정부주의자 라파즈 교수의 입을 빌린, 혁명에 대한 하인라인의 단상은 혁명의 외부에서 바라보는 단편적 시각을 넘지 않는다.
달의 독립 전쟁 또한 러시아혁명의 몇몇 요소만 슬쩍 빌린 미국 독립의 변주 정도라 조금 실망했고.

혁명을 제재로 한 소설들을 볼 때 무언가 불만을 느끼는 제일 큰 이유는 혁명의 내면에 담지된 ‘신념’의 구체적 형상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하인라인의 이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혁명가의 신념이란, ‘사회과학’에 기반하기 때문에 '도그마'나 '전복을 위한 기술’ 이상의 것이다.
자연과학의 발전과 유기적으로 호흡하며 성립하는 사회과학의 이론은 ‘진리’라기보다는 ‘명제의 집합’이며, 불변하는 전략이 아니라 한 사회의 패러다임에 따라 상시 변화가 가능한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과학에 기반했으나 종종 도그마로 착각되어 맹신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엄정한 과학적 이론화에 기반한 신념이기에 ‘냉소’보다는 ‘열정’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글에는 그게 없더라.

마이크라 이름 붙인 말하는 컴퓨터의 매력이 제일 컸고, 달의 중력과 그것에 적응된 사람들의 이야기 등 디테일한 설정들이 과연 하인라인다웠다.
하지만, 이제 한동안은 하인라인의 글을 안 볼 듯하다. 하인라인의 스토리텔링에 이제 약간은 물렸달까.
유쾌하고도 냉소적인 장광설을 즐기는 캐릭터를 통해 지적 현학을 담보하고, 깔끔한 SF 설정을 통해 재미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추구한다. 놀라운 조합이기는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ㅎ

그래도, 혁명을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관조할 수 있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힌 것은 잊지 말아야겠다.
풍자가 대중적인 이야기가 되려면, 독자가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공감이 가능한 캐릭터를 주인공 내지 화자로 삼아야 한다.

by 신독 | 2009/10/31 13:00 | 궤적 | 트랙백 | 덧글(0)


[감상] 무협 안의 판타지, 《창천마혼 1,2》



《창천마혼 1,2》 류희윤| 파피루스| 2009.09.23

<제로니스(2004)>로 데뷔해 <FEEL 파라얀전기>, <선무>를 쓴 작가 초 류희윤.
그의 성장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데뷔 때부터 그는 '이야기꾼'이었다.
남도 사내 특유의 입담에, 적당히 능글맞고 적당히 의뭉을 떨면서도 부드러운 정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펼쳤는데, 독자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능한 작가다.

<창천마혼>은 주인공 제갈류가 군문에서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 떠나는 장까지(1권의 8장)가 여러 번의 '파격'을 담은 채 펼쳐진다.
독자에게 의외성을 선사해 '기대감'을 느끼게 하는 <도발적 장면>이 거의 300쪽에 가깝게 계속해서 펼쳐진달까.
무협과 판타지의 장르적 장면들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낯선 장면을 연달아 만들어 내 무척이나 감탄하며 보았다.
영지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배경은 무협이고, 무협의 장면을 연이어 붙이면서도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어딘가 낯설다.
알맹이는 2세대 판타지(묵향 이후의 연재 기반 판타지)의 전개를 떠올리게 하는데 포장은 무협이니, 독자로서는 계속 '낯선 이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이 1권의 8장까지가 실질적인 '서(序)'라 볼 수 있는데, 여간한 '감'이 아니고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펼칠 수 없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로만 보면 가히 현 장르판의 톱 클래스라 할 수 있겠다.
<선무>를 쓸 때는 무협적 설정을 너무 의식한 감이 없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자신의 이야기를 무협의 틀에 담는 데 주저도 보이지 않는다.

글 초반엔 조연의 시점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이야기를 분산시키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곧 자연스럽게 덮히더라.
작가의 이야기 방식에 독자가 적응하는 것이라 하겠는데, 나처럼 입맛 까다로운 독자의 저항력을 포용할 정도면 작가 특유의 '유들유들'이 경지에 도달했다 봐야겠지. ㅎ

1권의 멋진 출발에 이어, 1권 말미부터 2권까지는 무공을 얻고 마도천하의 무림으로 돌아온 제갈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마도 작가는 주인공 제갈류의 상황을 요모조모 짠 초반 설정과, 이후 군문에서 무공을 익혀 믿음직한 수하 몇 명과 무림맹으로 귀환한다 정도까지만 시놉을 짜놓았던 것 같다. 무림맹에 돌아오고나서의 이야기가 왠지 스피드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그래도 2권을 덮고 다음 이야기(담운과 종리예의 썸딩)가 너무나 궁금하니 시장에서의 성공은 보장된 글이라 하겠다.
이미 네 질이나 초장편을 완결한 작가이니, 이야기가 정체될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음 권을 붙이는 '속도'가 관건일 뿐.

@

<창천마혼> 2권은 1권만큼 톡톡 튀는 이야기가 되지는 못했다 해야겠다. (작가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그러나 1권에서 유발시킨 기대감만 안고서도 2권은 누구나 보리라 생각한다. 2권 말미의 종리예 납치 때문에라도 3권은 모두 볼 것이고.
하지만, 이야기로써의 '낯선 힘'을 3권에서는 만회해야 할 테니, 머리깨나 아플 것 같더라.

1권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무협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2권은 기존 무협에 좀 더 가까웠다.
3권 이후를 어찌 구상했는지 모르겠지만, 마도천하를 뒤짚으며 천하제일인으로 성장해가는 일종의 성장물이라면, 영지물의 느낌을 좀더 강하게 주었으면 싶더라.

이 글의 장점은 2세대 판타지의 이야기를 무협에 대입하여 생긴 낯선 느낌이기 때문에, '보다 무협스러운 이야기'보다는, '보다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로 이후가 전개될 때, 더 재미가 있으리라 본다.
3권은 아마도 다음 달에나 출판되겠지만(아직 3권의 초반을 작업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을 이들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by 신독 | 2009/10/18 13:18 | 궤적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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